헐레벌떡 집에 들어온 엄마가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방바닥에 툭 던져놓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언니와 나는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기척에 귀를 쫑긋했다가 다시 드라마 보기에 집중한다. 힘차게 쌀 씻는 소리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기는 소리도 들린다. 엄마는 그제야 방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두 딸을 바라본다. 배고프지? 얼른 밥해줄게. 엄마를 말똥히 올려다본 언니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의 지폐와 동전이 든 전대는 한쪽으로 … [Read more...] about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먹는 김치찌개
문화
고무신과 의전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는 해방 후 보수적인 가정에 며느리로 들어간, 그 시절 나름 대학도 다닌 고학력 주인공이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 노릇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시어머니는 집에 놀러 온 이모님과 고모님들의 고무신을 보얗게 닦아놓으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몰래 귀띔을 한다. 주인공은 지푸라기 수세미로 고무신을 닦아 어른들로부터 입이 마른 칭찬을 받지만 며느리 생색을 내준 시어머니가 조금도 고맙지 않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의 생일로 식구들이 모였을 때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석에 이끌린 … [Read more...] about 고무신과 의전
“시댁에선 만날 나를 ‘너’라고 하던데, 왜 당신만 ‘김 서방’이지?”: 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하여
추석 명절을 쇠고 서울로 올라가는 자동차 안. 남편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이렇게 소소하고 편안하게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아. 당신도 그렇지 않아?” 순간 그 말에 확 짜증이 났다. 편한 건 당신만 편했지. 솔직히 명절 때 아무것도 안 했잖아. 잘 먹고 잘 쉬다 오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냐. 부인이 뼈 빠지게 같이 벌어서 울타리를 만들어주니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솔직히 남편도 당황했을 거다. 이런저런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 [Read more...] about “시댁에선 만날 나를 ‘너’라고 하던데, 왜 당신만 ‘김 서방’이지?”: 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하여
편집 당하지 않게 말하는 법 3가지
최근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참시에 출연하는 개그맨 이승윤 씨 또한 훈남 매니저와 함께 인기 덤에 올랐는데, 자연인에서 예능인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이승윤 씨의 필요 이상으로 길게 말하는 버릇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패널들이 '고구마 화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며 잔잔한 웃음을 주었으나, '고구마 화법'은 방송인으로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 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말 만난 친구는 직장 상사의 필요 이상으로 … [Read more...] about 편집 당하지 않게 말하는 법 3가지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삶을 낫게 만들까, 정말로
최근 트렌드 중 하나는 무엇이든 '내려놓기'인 듯하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 것, 노력에 목숨 걸지 말 것, 관계에 집착하지 말 것, 사랑이나 이성에 너무 몰입하지 말 것. 이런 말들이 에세이 시장이라든지 예능이나 연예인의 어록, 공감의 말 등에서 대세를 이룬다. 내려놓기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이자 위로 산업, 힐링의 문화를 이루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성행하면 성행할수록 과연 우리 삶이 더 나아지는지, 무언가 현실적으로 내려지는지는 의심스럽기도 하다. 한 사회에 고통이 … [Read more...] about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삶을 낫게 만들까, 정말로
내게 자존감은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돌고래 같아서
※ 이 글은 칸투칸 8F에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나에게 있어 자존감은 일정한 주기로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돌고래 같다. 온몸이 물 밖으로 나와 빛날 만큼 자존감이 넘치는 시기가 있고 나면 반드시 깊은 수심으로 가라앉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반복을 여러 번 겪으면서 오르내림의 주기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을 때도 곧 세상이 나를 등지는 순간이 오겠구나 하는 마음의 … [Read more...] about 내게 자존감은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돌고래 같아서
캪틴큐 VS 나폴레온, 전설의 양주는 어디로 사라졌나?
캪틴큐, 돈 없고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거 아니냐? 이런! 전설을 상대할 때는 무릇 예의를 갖춰야 한다. 캪틴큐(캡틴큐라고 부르면 멋이 나지 않는다). 곱게 마시고 걸어 돌아간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음주계의 시라소니. 만만하게 보고 마셨다가 안주 대신 술집 바닥을 핥았다는 근검절약형 양주. 주사가 없이 자는 사람도 악을 쓰게 만든다는 락스타 음료. 그럼에도 이걸 마시고 저승사자와 진로 상담해봤다는 소리는 없는 나름 지킬 건 지키는 양주가 아니던가. 지난 「국산 위스키 … [Read more...] about 캪틴큐 VS 나폴레온, 전설의 양주는 어디로 사라졌나?
오늘은 월요일, 정면 승부가 필요해
많은 직장인이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우울해진다. 월요일 출근을 코앞에 두고 밀려오는 스트레스가 분노의 생리적인 이름인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솟구치게 하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면 딱히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눈도 잘 안 떠지고 머리도 몸도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피곤하기만 하다. 우울함, 피곤함, 지겨움의 대명사로 표현되는 이른바 '월요병'이다. 인터넷에서 사직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요일이 월요일이고, 직장인이 두통약을 가장 많이 사는 요일도 월요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월요일은 직장인들에게 … [Read more...] about 오늘은 월요일, 정면 승부가 필요해
방콕 10년차 승무원이 알려주는 방콕 필수 쇼핑 리스트!
방콕의 쇼핑은 대략 이렇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화장품이나 약품: 왓슨스나 부츠 같은 드럭스토어 화장품과 약 쇼핑. 식품류: 백화점 지하에 입점되어 있는 고메마켓, 로컬 슈퍼마켓에 가까운 TOPS 슈퍼마켓, TESCO나 BIGC같은 조금 더 큰 마트에서 이루어지는 식품류 쇼핑. 시장이나 쇼핑몰: 주말 짝뚜짝 시장이나 엠콰티어, 센트럴 계열 쇼핑몰, 아이콘시암 등의 백화점 쇼핑. 화장품류 태국 드럭스토어의 특징은 다양하고 저렴한 뷰티템이 있다는 … [Read more...] about 방콕 10년차 승무원이 알려주는 방콕 필수 쇼핑 리스트!
15년,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뮤지컬 ‘빨래’
'파루레'를 아시나요 극장 찾아가기 어려운 편이었다. 평상시에 자주 다니던 혜화역이 아니었다. 이렇게 으슥한 데 있다고…? 카카오맵을 믿기 어려워지는 순간, 예상외로 아주 큰 극장이 등장했다. 〈빨래〉가 공연 중인 동양예술극장이다. 아무리 금요일 저녁이었다지만 사람도 많았다. 데이트하는 커플이 특히 많았다. 관객석은 중극장에 가까울 정도의 크기였는데, 거의 빈 자리 없이 꽉 채웠다. 내 주변에 있던 커플 중 한 명은 "나 대학로에서 공연 보는 제 처음이야!"라고 들뜬 목소리를 냈다. … [Read more...] about 15년,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뮤지컬 ‘빨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