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이 시끄럽다. 이럴 때면 조용한 방에서 책 한 권 붙들고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싶지만 요즘은 ‘책 세상’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반일 종족주의』 탓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그 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논평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영훈이 직접 조정래의 『아리랑』의 몇몇 장면이 ‘조작’되었다고 저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조정래의 『아리랑』 4권에서 총독부 토지조사사업을 방해한 차갑수를 총살형에 처하는 장면과 일본에 의한 대량 학살을 그린 장면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일본을 악마화하기 위해 작가가 조작한 내용이라고 공격한다. 이에 대해 조정래는 『아리랑』은 “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의 역사를 올곧게 알게 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면서 『아리랑』이 사료와 취재에 철저하게 기반해 쓴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조정래 작가는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역사조작 논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한편 이영훈 교수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아리랑』의 경우에는 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를 그 토대로 합니다. 두 번째는 거기에서 필요 없다고 삭제했거나 탈락된 사실들을 소설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현장 조사를 취재합니다. 그 2차 취재에서 이러한 사실들이 현장 취재하면서 밝혀져 있습니다.
- 조정래 인터뷰 중
최근의 한일 갈등과 『반일 종족주의』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역사의식’은 단순한 ‘역사 지식’과는 다르다. 지식은 파편적이고 분절된 형태로 나열되어 있지만 그것을 맥락에 맞게 구성해서 이해하는 것은 의식의 문제다.
이영훈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그에게 제국-식민지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그에게 한일합방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식민지 조선과 당시 일본은 하나의 나라에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서 젊은이들을 ‘징병’하는 것이 문제가 없듯, 당시 일본이 조선의 젊은이들을 ‘징용’해간 것 역시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위안부에 관한 이영훈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임이 분명한데도 그는 유독 ‘한국인 업자’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물타기를 하려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역사소설을 집필해 왔던 조정래로서는 이와 같은 왜곡되고 뒤틀린 역사의식의 문제점을 굳이 짚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탄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영훈 류의 인식을 그저 돌출적인 별종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일베’와 자유한국당은 광주항쟁에 대한 부정에서 나타나듯, 뒤틀린 역사의식은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단지 지나간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바 ‘팩트’에 관해서라면 이영훈이나 ‘일베’들도 자신들이 팩트로 무장했음을 강변하지 않던가.
2.
역사의식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 대한 첨예한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과 평가가 훗날 역사를 구성하는 일차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뒤틀린 역사의식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를 어떤 사회로 바라보는가? 지금 사회가 후대에 어떻게 ‘역사화’ 되기를 바라는가? 최근 조정래가 펴낸 『천년의 질문』은 조정래가 지닌 ‘현재적 역사의식’의 핵심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천년의 질문』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을 직시하려는 실천적인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조정래가 그 모순과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하는 것은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재벌이다. 『천년의 질문』에 등장하는 성화그룹은 삼성을 비롯해 여러 재벌가의 모습을 섞어 만들어 놓은 가상의 그룹이다. 성화그룹은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이지만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가적 윤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가 매일 신문과 뉴스를 통해 보는 그 재벌 기업들을 닮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재벌 기업은 결코 외롭지 않다. 법조, 언론, 대학 등의 ‘엘리트’들이 기꺼이 그들의 돈에 매수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화그룹은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 기관과 언론인, 교육자들의 조력에 기대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고발하려는 시도를 제압한다.
하지만 재벌의 음험한 승리에만 주목한다면 이 시대는 너무나 무기력한 시대로 남을 것이다. 재벌의 금권에 의해 모두가 휘둘린 ‘자낳괴’(자본이 낳은 괴물)들의 전성시대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조정래는 이와 같은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 ‘기레기’가 아니라 올곧은 기자 정신으로 무장한 장우진, 그리고 참여연대 소속의 활동가들과 민변 소속 변호사들…
조정래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에 한국 사회가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열 명의 은인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3.
“이러다가 나라 망하는 것 아니에요?”
“이미 많이 망해 있어.”
“이미 많이요?”
“뭘 그리 놀래? 유능한 사회학자께선 OECD에서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매년 여러 분야에 걸쳐서 실시하고 있는 통계조사 잘 아시잖아. 이혼율 1위부터 시작하는 거.”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비정규직 비율 1위, 출산율 꼴찌, 청소년 학습 만족도 꼴찌, 국민 행복지수 꼴찌… 그러고 보니 지옥이 따로 없군요. 침몰 직전의 배 꼴이에요.”
- 조정래, 『천년의 질문』 1권, 52–53쪽
한국 사람들은 나라 망한다는 말에 유독 민감하다. 우리에겐 그게 단순한 과장의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은 일본에 의해 망했고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 민족은 나라가 “이미 많이 망해 있”다는 얘기를 결코 흘려듣기 어렵다.
하지만 조정래가 소개하듯 한국 사회는 이미 적지 않게 무너져 내린 상태다. 그건 비단 재벌과 같은 1%의 전횡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실망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이미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은 공고해졌으며 그들은 그 공고한 성채를 이제 무탈하게 자식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1% 재벌들은 돈을 통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치부에 여념이 없고 이른바 ‘중산층’들은 그 재벌에게서 흘러나온 돈으로 자신들만의 성채를 짓느라 바쁘다. 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겠다고 당차게 나서는 정치인은 거의 없고 저마다 자신의 정략적 판단에 의해 국민을 어떻게 동원할까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조정래는 『천년의 질문』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과 문제들을 치열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 모순과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것과 싸워야 함을 강조한다. 그 몫이 많이 배우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촛불 광장을 환하게 밝혔던 평범한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물론 소설에는 장우진 같은 훌륭한 기자와 민변 소속의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들, 그리고 헌신적인 활동가의 존재가 도드라지지만 그들의 활동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을 떠나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들이 물고기라면 그들을 품은 우리는 드넓은 바다인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지만 현재의 모순과 문제점에 눈감은 민족에게는 ‘역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역사가 될 오늘을 지켜나가는 일은 이영훈이나 ‘일베’의 역사 왜곡과 싸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은 우리에게 그 교훈을 거듭 일깨운다.
※ 해당 기사는 해냄출판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