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인상은 참 다정했다. 무슨 일이 있음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이미 한 번의 이직 경험이 있었던 나는 그의 친절에 감동했다. 이직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회사를 옮긴다는 것은 마치 10단계 왕국 건설이 1단계 황무지 개척 수준으로 초기화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보통 이 시기엔 타인의 관심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니 그녀, 아니 K과장의 한 마디는 내 호감을 사고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쭉 그는 종종 내 자리로 와 안부를 묻고 업무를 살피고 가곤 했다. 아! … [Read more...] about 친하다면서 왜 뒤통수를 칠까
질문하는 여자의 이혼확률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 중엔 「책 좋아하는 여자의 이혼율」이 있다.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문학상의 특징을 구별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여자, 다른 이는 가끔 잡지를 들추어 보는 것 외엔 책에 딱히 관심이 없는 초절정 미녀다. 작가는 말한다. 전자는 어느 순간 남편과 이혼을 했고, 후자는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산다고. 그것이 본인 주변의 현실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분명 심정적 공감은 간다. 내 주변의 일부 남자들이 하는 얘기는 이것이다. … [Read more...] about 질문하는 여자의 이혼확률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
우리가 보는 현상엔 늘 이면이 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코미디언 송은이, 김숙의 경우도 그렇다. 각각 데뷔 23년 차, 21년 차인 이들의 제2전성기는 ‘방송국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서’라는 아이러니에서 시작한다. JTBC ‘썰전’에 나온 PD들이 이야기하듯, “남자들만의 의리가 케미스트리로 발산되는 예능의 특성상” 중견 여성 코미디언이 설 자리는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 여성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OECD 국가 29개국 중,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25점으로 단연 … [Read more...] about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
불행해도 점은 꼭 보고 싶어
이혼의 위기가 있었다 첫 아이 육아 문제로 남편과 충돌했고 (친정에 아이를 맡기기 싫다 VS 당분간 도움을 받자), 그 사이에 시댁이 끼어들며 (친정이 왜 육아 간섭이냐) 나와 더 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부모에 대한 미안함, 남편에 대한 괘씸함에 이혼을 결심하기 이르렀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고, 남편과 연락을 끊었다. 이혼 전문 변호사도 여럿 만났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료한 상태는 아니었다. 진짜 이혼을 해야 하나. 이혼하면 아이와 어떻게 살지? 당장 아이가 어린이집 … [Read more...] about 불행해도 점은 꼭 보고 싶어
“시댁에선 만날 나를 ‘너’라고 하던데, 왜 당신만 ‘김 서방’이지?”: 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하여
추석 명절을 쇠고 서울로 올라가는 자동차 안. 남편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이렇게 소소하고 편안하게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아. 당신도 그렇지 않아?” 순간 그 말에 확 짜증이 났다. 편한 건 당신만 편했지. 솔직히 명절 때 아무것도 안 했잖아. 잘 먹고 잘 쉬다 오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냐. 부인이 뼈 빠지게 같이 벌어서 울타리를 만들어주니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솔직히 남편도 당황했을 거다. 이런저런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 [Read more...] about “시댁에선 만날 나를 ‘너’라고 하던데, 왜 당신만 ‘김 서방’이지?”: 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하여
그놈의 영어가 뭐라고
윤한이는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도 한다더라. 아리는 어떻게 ABC도 몰라. 엄마가 살짝 눈물을 보였다. 여기서 윤한이는 내 조카고, 아리는 내 딸이다. 둘 다 다섯 살이다. 오해할까 싶어 말하는데, 이거 코미디 아니다. ‘두 딸 뼈 빠지게 뒷바라지해 서울에 입성시켰다’고 자부하는 우리 엄마, 성 여사의 진심이다. 나는 웃으려다가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았다. 도대체 그놈의 영어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인 건지. 고작 어린이집을 다닐 뿐인데 … [Read more...] about 그놈의 영어가 뭐라고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
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운 정치의 단어는 굉장히 중립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다. 네이버 사전에 ‘정치’란 단어를 검색하면 이렇게 등장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런 본래의 뜻을 떠나, 내가 직장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인간’이란 단어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속된 것이기까지 하다. 무엇이 ‘정치’란 단어를 이렇게 변질되게 … [Read more...] about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
얘들아, 욕은 이렇게 하렴
초등학생 서너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말 야구를 하고 온 친구 무리인 듯한데, 말끝마다 욕을 섞어 쓴다. 그러니까 조금 일찍 만나자고 했잖아, X벌. 야 X탱아, 내가 그걸 알았냐. 이하 기타 등등. 욕의 사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나는 “어머, 욕은 절대 안 돼!”라고 비판하는 고상한 존재는 아니다. 고3 시절, 숨도 못 쉴 것 같은 스케줄을 “이런 C”라는 추임새 한 방으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사람으로서, 오히려 간헐적 배설을 실현하고 있다. … [Read more...] about 얘들아, 욕은 이렇게 하렴
‘할마·할빠’의 노동의 대가는 얼마일까
할마. 할빠. 누군가에게 최근 알게 된 신조어일 뿐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단어이기도 하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맞벌이 가구의 가정 내 보육 보고서」에 따르면 조부모 육아참여율은 2012년 50%에서 2016년 63.8%로 무려 13.8%p나 증가했다고 한다. 비단 문서 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햇살 좋은 날, 손주를 업고 나온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놀이터에서 할머니와 옥신각신 하고 있는 아이들의 투샷은 우리가 주변에서 목격하는 황혼육아의 명확한 … [Read more...] about ‘할마·할빠’의 노동의 대가는 얼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