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운 정치의 단어는 굉장히 중립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다. 네이버 사전에 ‘정치’란 단어를 검색하면 이렇게 등장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런 본래의 뜻을 떠나, 내가 직장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인간’이란 단어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속된 것이기까지 하다.
무엇이 ‘정치’란 단어를 이렇게 변질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명료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의 기준에서 말하는 ‘정치적인 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어떤 선배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단 퍼주고, 생색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만인이 인정했다. 누군가는 그녀를 단지 한 회사의 브랜드전략팀, 그리고 그 안에 소속된 ‘일개 디자이너’로 평가할 따름이지만, 그 일개 디자이너에게 매일 같이 일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알맹이를 뽑아가는 것 역시 또한 그들이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철저한 실무자형 관리자인 그녀는 이런 일상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매일 같이 은행 창구처럼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사람들을 친절히 맞아주고, 자기 업무 외에도, 그들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정작 대외적으로 ‘그녀가 도와준 일’은 없다. 주간업무든, 월간업무든 그녀의 조언과, 그녀가 만들어 준 PPT로 ‘또 한 번 제대로 해낸’ 창구 손님들이 그녀의 노력을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노력을 바탕으로는 하되, 그 역량을 그냥 자기 것으로 겟 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입이 무거워서, 자존심이 세서, “이것은 내가 한 일이다”라고 생색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창구의 손님은 늘 차고 넘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굽실대며 일을 부탁하던 그들은 어느 순간 그녀보다 높은 상급자가 되어 도도하게 일을 맡긴다. 한 마디로, 스틸 제대로 한다.
그녀는 술을 먹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술 못 먹는 유전자’를 이어받았기에, 술을 입에 대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물론이요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 풀이하면 ‘술을 마심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도 물이나 사이다를 홀짝댈 뿐이다.
이렇게 맨정신으로 그녀가 회식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동안, 그녀를 평소 경쟁자 내지 눈엣가시로 질투했던 이들은 술술 술을 잘도 넘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그녀의 창구 손님들이었기 때문에, 한번 더 ‘자신은 단지 창구 손님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올해도 이런 건을 했다’며 상급자에게 생색을 내고 술을 권한다.
기분이 좋아진 상급자는 그들과 눈을 맞추며, 그 노력이 얼마나 가상했고 또 실질적 결과로 이루어졌는가를 치하한다. 상급자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이건 독심술이 없으면 절대 간파할 수 없는 실무적 이야기니까. 그리고 창구직원들에겐 이런 눈속임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술자리는 잘도 간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녀가 얼마나 애썼는지를 밝히며 분위기를 띄워보려 하지만, 아서라! 창구직원들의 눈짓이 오간다. 일개 대리 따위가 ‘혼자 애쓰고 있네’의 분위기다. 이것이 생쑈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그녀의 술잔을 대신하는 흑장미를 자처하며 상급자의 눈을 맞추려 하지만, 아뿔싸! 텄다. 상급자는 이미 취하셨다.
상급자는 일단 일어설 테니 좋은 자리 더 즐기라며, 댄디하게 떠나가 버리신다. 남은 자들의 눈빛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부 창구직원들은 나를 비아냥거린다. “어이, 줄을 새로 만들려고 그러시나 봐” 정작 아무 말도 않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러게요. 이 줄이 그렇게 금줄도 아닌데.
금줄이 아닌 그 줄을 오히려 추종하게 되는 이유
뭔가 쿨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이다. 그녀는 승진을 구걸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이렇다는 거다. 나쁘게 말하면, 그녀는 자신의 승진을 스스로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목표 대비 성과(management by objectives, MBO)를 깨알같이 챙겨 준 덕분에 모두가 무차별하게 된 상황 속에서, 그저 덤덤한 얼굴을 유지한다.
그녀의 역량을 훔친 누군가가 ‘궁둥이 연차가 그녀보다 높다’며 자신의 승진을 안팎으로 세일즈하고 다닐 때조차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참 절제력이 강하다. 가끔은 내가 짜증이 나서 “제발, 쫌!”이라고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을 때가 있으나, 나는 그녀의 엄마는 아니니 역시 “어떻게든 자기 PR을 하라”며 간곡히 권유할 뿐이다.
이럴 때면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오른다. 너무 짧게 지나가서 친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그 미소. 희미하면서도 한쪽으로만 미세하게 올라가는 미소. 억제된 썩소다. 이럴 때 그녀를 자극해 뭔가 추진력을 키워주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단호한 정리다.
그래서, 그렇게 올라가면 뭐하게.
나는 순간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다. 승진을 위한 마지막 면담, 창구 직원들이 분주하게 승진을 구걸하러 다니는 한편, 그녀는 빌트인(built-in)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속상한 마음에 애꿎게 내 면담 자리에서 그녀 이야기를 언급했다. 한순간 달라진 상사의 표정이 말해준다.
이거, 좀 생뚱맞네?
그놈의 DNA가 문제라서
자, 이제 회사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는 법’에 대한 모든 것을 풀어놓았다. 실제 그녀를 밟고 올라간 한 차장은, 그녀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언급했다.
그녀는 정치를 안 하잖아. 그래서 늘 결정적일 땐 열외야.
어떻게 그렇게 뻔뻔한 말을 언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역시 열외로 하자. 중요한 것은, 어떤 회사에서 말하는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는 법은 이렇게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친구, 그리고 또 내 친구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이 비단 우리 회사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모든 회사의 일이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나는 무섭다. 그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방식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공공연한 말이 너무도 불편하다. 누군가 한 명 정도는 예외가 되어서, 그 방식이 옳았음을 멋지게 입증하길 응원하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방식은 말했듯 ‘성공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나만의 라인’을 대는 내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괜히 부처 같은 그녀를 자극해서 스트레스받게 하지 말고,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결심도 가끔 한다. 오지랖이 넓으면 오해만 쌓여간다고, 실제 나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도 요즘 왕왕 느낀다. 나도 정치적인 인간이 되려면 이런 눈치는 빨리 흡수하고, 교정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할 텐데, 그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놈의 DNA가 문제라서. 생겨먹은 대로 살지 않는 고통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녀는 얼마 전 병가에 들어갔다
평소 예의 주시해 온 몸의 일부분에 이상 징후가 생겼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정치적 인간의 입문’에 들려던 나는, 그 말에 뭔가 맘이 이상해졌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놈의 정이 문제지만, 앞으로도 그녀를 위한 마지막 추종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가이자 정치 풍자가인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허구는 가능성에 매달려야 한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돌아오면, 마당쇠를 자처해 그놈의 창구 열부터 죄다 정리해 볼 생각이다. 콩고물 하나라도 얻어먹을까 기웃거리는 거짓의 그분들에게 더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지 않다. 그래, 언젠가는 세월이 입증해주지 않을까. 진실은 변함없다는 걸. 비정치적 인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원문: 이승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