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현상엔 늘 이면이 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코미디언 송은이, 김숙의 경우도 그렇다. 각각 데뷔 23년 차, 21년 차인 이들의 제2전성기는 ‘방송국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서’라는 아이러니에서 시작한다. JTBC ‘썰전’에 나온 PD들이 이야기하듯, “남자들만의 의리가 케미스트리로 발산되는 예능의 특성상” 중견 여성 코미디언이 설 자리는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 여성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OECD 국가 29개국 중,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25점으로 단연 꼴찌라고 한다. 단지 결혼, 육아 등의 문제 때문일까.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 역시 3%에 그친다는 사실은 어떤 똑똑한 여자들도 뚫어내지 못한 두꺼운 벽을 짐작게 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진아 씨가 쓴 칼럼엔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여자가 보이즈 클럽에 끼는 방식엔 4가지가 있다. 똑같이 남자처럼 행동하는 남자 전략, 별일 없어도 임원 방에 들어가 호소하는 여동생 전략, 모든 문제를 챙겨주는 엄마 전략, 독보적 존재감을 뿜는 미친년 전략까지.
이 글을 읽고 생각했다. 이 모든 전략의 여집합인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
그 집단의 대표인 나,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여성을 보면 ‘현실은 호구’인 것이 현재까지의 버전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로 비유하면 한마디로 수드라다. 권력층 남성이 브라만, 그 아래에 정치적 야심을 가진 여성 크샤트리아가 있고, 그냥 남자인 바이샤를 거쳐, 맨 밑바닥에 위치한 존재.
때문에 일을 못해도 손해, 잘해도 손해다. 일을 못 하면 정말 과감히 제쳐질 것이요, 일을 잘하면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거나 강한 견제를 받을 테니까. 만약 이 말에 아직도 고개를 갸웃댄다면, 당신은 순진하거나 참 행운아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앱을 만드는 팀에 파견되었을 때, 새로 만난 남자 팀장이 물었다.
“거기 팀장님은 누구 라인이죠?”
“라인…이요?”
해맑게 묻다가 멈칫했다. 그의 눈에서 “이 순진한 것아, 넌 아웃이야”하는 이상한 느낌을 읽어버려서. 이후 실무는 90% 도맡아 했으나 상부 보고에선 늘 뒷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밑에서 행정처리를 하던 남자 사원이(아버지가 모 계열사 사장이라던) 팀장에게 대단한 신임을 받았다. 모든 업무적인 공로도 그에게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하루는 존경하는 여자 과장에게 물었다. 실력과 인덕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과장님은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솔직히 좀 짜증 나긴 하지. 그렇다고 그 개판에 끼는 것도 싫다.”
지극히 쿨한 발언이다. 하지만 현실도 그렇게 쿨할 수 있을까. 야심이 있는 팀원은 그녀의 자리에 와서 “내 일 좀 봐주세요” 하며 번호표를 뽑고, 파트장은 무엇을 지시해야 할지 길을 잃을 때마다 그녀에게 상담을 청한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도움을 받은 그들이 정작 뒤에서 말하는 진심은 다르다.
“황 과장은 야심이 없어서 승진을 바라지 않아.”
“이번 승진은 남자가 하는 게 맞지!”
투명성과 효율성을 부르짖는 21C에도 쌍팔년도 논리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나온 말을 빌자면 이건 거의 ‘조폭의 의리’ 수준이다. 핵심 권력자인 노른자를 위시해 그와 친한 몇몇이 있고, 그 몇몇의 호가호위로 일이 진행되는 세상.
이렇듯 ‘누가 더 일을 잘하는가’보다 ‘누가 어제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가’가 중요시되는 구조에서 정당한 신분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위바위보나 땅따먹기를 해서 승진하는 게 더 공정한 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남자들은 적극적으로 뒷말도 한다. 누군가 ‘그 여자 과장, 일을 참 잘한다던데.’ 하고 칭찬의 운을 떼면 혹시나 그 이야기가 조직에 널리 퍼질까 봐 일부러 더 인상을 팍 쓰며 흉을 본다. ‘무슨 소리에요. 완전 독불장군이죠. 일은 좀 한다고 들었는데 성격이 그렇게 괴팍해서 도대체 누가 따르겠어?’
아무리 훌륭한 남자 상사도 이 부분에선 판단이 밝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괜찮은 여자 직원에 대한 평가를, 본인 스스로의 판단이 아닌 주변 남자들을 통해 확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적일 때마다 엉뚱한 결론이 나와 버린다.
일은 일단 둘째고, 조직과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최고지!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일 좀 한다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꽤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봤자, 승진하는 건 임원과 술자리를 함께한 귀여운 남동생이라고.
이것은 100% 내가 겪는 현실이다
물론 조직마다 편차가 있을 것이다. “요즘 시대에 이런 일이 가능해?”라며 질문을 가질 분도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도 당신과 같았다. 이 조직에 입성하기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싱글일 때는 ‘여초 조직’에서 꽤 존중받고 살았으니까. 그러니 이런 일들은 쌍팔년도에나 일어났을 법한, 아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100% 내가 겪는 현실이다. 21세기에 일어나서 더 놀랍고, 비교적 세련된 조직이라며 포장되는 곳에서 일어나 더 놀라운 현실.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는 아직도 암울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침묵을 하는 것도 싫다. ‘양성평등 직장 만들기’란 설문조사가 회사 메일로 날아들 때마다, 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답을 한다. 하나 마나 한 객관식 답변은 빠르게 패스하고 글자 수 제한 없는 주관식 문항을 일부러 꽉꽉 채우면서.
“왜 여자들만 빼놓고 회식을 가나요?”
“인사평가 시즌마다 일부 남직원들이 인사팀과 식사를 한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승진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합니다. 인사 기준표를 한번 공개해주시죠.”
이건 나도 당했지만 내 주변의 많은 여자가 실제 궁금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할 일을 다 하면서도 도약의 순간마다 ‘체념과 포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이젠 적극적인 답이 필요하다. ‘양성평등 설문조사를 실시했다’는 시행 자체에 만족하지 말고, 제발 ‘그 설문의 구체적인 결과’와 ‘실질적 개선안’을 공표해달라.
어쩐지 패스트 패션은 ZARA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양성, 평등’에 대한 회사의 인식 수준이란 것은 패스트 패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회적인 붐이 불 때는, ‘우어~’ 하고 달려가다가 숨이 좀 죽으면 빠르게 다른 이슈로 갈아타 버리니까.
원론이 튼튼해야 각론이 튼튼하다. 애자일 조직이든, 팀 조직이든 제발 각론에만 주목하지 말자. (조직원들에 대한 평등한 의식이 없이 어떻게 이런 조직을 꾸릴 수 있을까?) 나보다 똑똑하신 양반들이 이를 모를 리는 없고, 솔직히 알면서도 고의로 숨기는 것 같다.
“야, 이 정도 액션을 취했으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며 어디서 방해의 고사라도 지낼지 모르겠다. 남성 중심으로 지어 놓은 그들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기 싫어서. 그 성에 들어갈 멤버들에 똑똑한 여자들을 절대로 끼워주기 싫어서.
때문에 중요한 건, ‘화내는 것’의 끈기다. 내 주변의 이상한 놈들이 사라질 때까지, 치졸한 행동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을 때까지, 묵묵히 일관되게 화를 내 보는 것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 그냥 내 밥값 찾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요즘 조폭들도 개인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데 (수상한 이익 배분에 “형님! 내 밥값 내놓으쇼”를 외치며), 힘들게 챙긴 내 밥에 적어도 구린 똥물은 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낙수가 바위를 뚫듯, 우리에겐 그 견고한 성에 ‘끝없는 기스 내기’가 필요하다. 난 어차피 임원이 되긴 글렀으니, 이참에 더 적극적으로 기스를 내 보고자 한다. 자꾸 하다 보면 “웃기네”에서 “얘, 뭐지?” 정도는 될 수 있겠지. 피곤하고 성가셔서라도 신경 쓰이게 만드는 누군가 정도는 될 수 있겠지.
워킹만 하는 여자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끝까지 화를 낸 워킹녀와 그런 워킹녀들의 의리 있는 담합이 실천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