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에 개봉한 〈빅 쇼트(The Big Short)〉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때 미국 주택시장 대폭락에 베팅해서 큰돈을 번 사람들에 관한, 반쯤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반쯤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유는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실명이 아니라 가명을 쓰고, 또 일부 사실은 적절히 각색했기 때문입니다. 큰돈 버는 이야기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저처럼 돈 없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죠. 저는 크리스천 베일이나 라이언 고슬링 … [Read more...] about 옵션 투자 대박의 비밀: 영화 〈빅 쇼트〉 속 두 젊은이 이야기
영화
〈벌새〉: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1994년에서 날아온 답변
전 세계 영화제 25관왕, 독립영화 〈벌새〉 김일성 주석 사망, 성수대교 붕괴, 사상 최고 더위. 1994년은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뉴스들이 많이 쏟아진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고도성장과 민주화 정착에 몰두해온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 주로 집중해왔다. 1994년 격동기를 배경으로, 여태껏 아무도 조명하지 않은 중2 소녀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나왔다. 〈벌새〉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를 통해 삶 … [Read more...] about 〈벌새〉: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1994년에서 날아온 답변
‘기생충’: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
수치심과 죄책감은 둘 다 '잘못했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에릭슨의 발달 심리학적 관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치심은 ‘내가 실패했다’ 혹은 ‘내가 실수했다’는 뜻의 잘못이다. 에릭슨의 이론에서 수치심의 반대편에는 자율성이 있다. 즉 수치심은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가장 근원적인 수치심은 우리가 어릴 적 배변훈련 과정에서 생겨난다.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을 때, 내 또래는 모두 기저귀를 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거나, 밤중에 잠자리에 … [Read more...] about ‘기생충’: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
종로에서 뺨 맞았을 때
엄마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 되는 일 참도 없다고 생각되던 시절. 걱정 서린 엄마의 얼굴에 대고 난데없는 짜증을 뱉었습니다. 집으로 막 들어서던 길이었어요. 취업과 연애 모두 연패 스코어를 쌓아가던, 당시의 여느 일상처럼 어두운 낯빛을 하고 말이죠. 사실 그날은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더 겪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진상 손님을 만나 전에 없던 치욕감을 맛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얼큰히 취한 아저씨의 과녁이 됐습니다. 소심한 저는 그 장면에선 아무 말도 … [Read more...] about 종로에서 뺨 맞았을 때
루저의 반란: 영화가 비현실성을 극복하는 3가지 사례
※ 이 글에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주먹이 운다〉(2005), 〈리틀 미스 선샤인〉(2006), 〈족구왕〉(201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류의 영화가 있습니다. '세상의 게임에서 패배한 루저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바탕을 공유하는 영화들이죠. 이런 영화들에선 남들보다 한참 모자란 '루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루저는 세상의 기준에 맞서 싸워요. 그리고 마침내 … [Read more...] about 루저의 반란: 영화가 비현실성을 극복하는 3가지 사례
실사판 〈라이온 킹〉 후기: 위대하신 혁명지도자 스카 장군님의 몰락
※ 이 글에는 1994년 원작을 안 본 분에 한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프라이드 랜드에서 심바의 탄생을 알리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골 때립니다. 사자의 먹잇감들이 와서 탄생을 기뻐하고 절을 합니다. 얘들 대체 뭔가요? 상식적으로 사자의 개체 수 증가 → 더 많은 먹잇감 필요 → 더 많이 잡아먹힘이므로 심바가 태어난 순간 ‘아 X펄 X됐네’를 외쳤어야 합니다. 착한 사자는 죽은 사자뿐이죠. 노예근성이 따로 없습니다. 아무튼 심바가 등장합니다. 혈통만 … [Read more...] about 실사판 〈라이온 킹〉 후기: 위대하신 혁명지도자 스카 장군님의 몰락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에게 선사한 선물, 그리고 증강현실
※ 이 글에는 많든 적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2019년 4월 24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국내 박스오피스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이후 영화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의 누적 관객 수(2019년 7월 기준 약 1,121만 명)를 뛰어넘었으며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마저도 침몰시키며 엄청난 기록을 써 내려갔다. 〈엔드게임〉의 누적 관객 수는 2019년 7월 5일 기준으로 약 … [Read more...] about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에게 선사한 선물, 그리고 증강현실
‘러브리스’, 불안이라는 감옥
꿉꿉한 날씨를 뚫고 충무로에 도착해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Loveless)〉를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느낀 거지만 이날 날씨와 장소, 그리고 영화가 참 잘 들어맞았다는 것. 사랑이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할 만한 사랑이 이 영화에서 애초에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 나무에 올라가 보는 아이. 누군가 집을 보러 온 것이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아이의 퉁명스러운 태도. 냉장고 위의 작은 텔레비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전파되는 시대상. 질 스타인, 버락 오바마, 미트 … [Read more...] about ‘러브리스’, 불안이라는 감옥
‘파리의 딜릴리’, 색채의 마법 속 묵직한 메시지
인간 동물원, 인간 전시의 장(場) 이 영화의 첫 장면에는 인간 동물원이 나온다. 인간 동물원. 발화하는 순간부터 오싹한 느낌이 든다. '인간'과 '동물원'의 괴이쩍은 결합. 아름다운 보랏빛 애니메이션을 잘 봐놓고, 어떻게 이런 끔찍한 단어를 초반부터 쓰는가! 그것도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 '파리'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작품을 보고… 라고 혹자는 성낼 수도 있겠다. 주인공 딜릴리의 깜찍한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다. 원시부족 생활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처음부터 의아한 생각을 갖게 … [Read more...] about ‘파리의 딜릴리’, 색채의 마법 속 묵직한 메시지
“저 진짜 하나만 물어볼게요, 도대체 왜 스포일러를 하시는 거예요?”
“당신의 침묵을 부탁합니다” 프랑스 칸에 도착한 각국의 기자들에게 봉준호 감독의 편지가 도착했다. 여러분께서 영화 〈기생충〉에 대한 기사를 쓰실 때,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저희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 영화감독 봉준호 그렇다. 그 편지는 이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기사 내에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부탁하고자 보낸 것이었다. 아마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1999년 최고의 … [Read more...] about “저 진짜 하나만 물어볼게요, 도대체 왜 스포일러를 하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