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이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에 참여했다가 다른 엄마들의 출신대학과 전공을 알게 되는 장면. 김지영은 그 자리에 있는 엄마들이 누구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고, 누구는 연기를 전공했고, 누구는 공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한때는 모두 꿈이 있고, 직업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결국 여성이라면 어떤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든, 얼마큼 열심히 공부했든, 대부분 … [Read more...] about 왜 ‘82년생 김지영’에게만 보편의 서사를 요구하는가
영화
평범한 여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일어난 변화들 ‘여자 공부하는 여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 씨의 미래는 표면적으로는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사정도 나쁘지 않고, 육아에도 비교적 충실한 남편이 있고, 경력 단절이 일어났지만 재취업할 일자리도 있다. 그렇다면 김지영 씨의 인생은 다시 날개를 달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여성들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전히 주 양육자를 여성으로 가정하는 현실에서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경력단절이 된 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남자 동료들보다 훨씬 더 많이 … [Read more...] about 평범한 여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일어난 변화들 ‘여자 공부하는 여자’
‘섹스 앤 더 시티’가 퍼뜨린 완경 혐오
※ 이 글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강조하고자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완경과 관련된 정보는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단연 많은 여성들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TV 시리즈다. 보는 눈이 즐거워지는 화려한 패션, 뉴욕에서 주도적으로 일과 사랑을 쟁취하는 네 명의 뉴요커들. 사랑과 섹스를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화려한 도시에서 … [Read more...] about ‘섹스 앤 더 시티’가 퍼뜨린 완경 혐오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보면 승혜 님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정말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요?”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본 적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들으면서 조금 놀랐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다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아픈 데 없고, 사지 멀쩡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편입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그것도 아들딸 골고루 있어서 아들만 있으면 '딸을 낳아야지' 딸만 … [Read more...] about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옵션 투자 대박의 비밀: 영화 〈빅 쇼트〉 속 두 젊은이 이야기
2015년도에 개봉한 〈빅 쇼트(The Big Short)〉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때 미국 주택시장 대폭락에 베팅해서 큰돈을 번 사람들에 관한, 반쯤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반쯤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유는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실명이 아니라 가명을 쓰고, 또 일부 사실은 적절히 각색했기 때문입니다. 큰돈 버는 이야기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저처럼 돈 없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죠. 저는 크리스천 베일이나 라이언 고슬링 … [Read more...] about 옵션 투자 대박의 비밀: 영화 〈빅 쇼트〉 속 두 젊은이 이야기
〈벌새〉: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1994년에서 날아온 답변
전 세계 영화제 25관왕, 독립영화 〈벌새〉 김일성 주석 사망, 성수대교 붕괴, 사상 최고 더위. 1994년은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뉴스들이 많이 쏟아진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고도성장과 민주화 정착에 몰두해온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 주로 집중해왔다. 1994년 격동기를 배경으로, 여태껏 아무도 조명하지 않은 중2 소녀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나왔다. 〈벌새〉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를 통해 삶 … [Read more...] about 〈벌새〉: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1994년에서 날아온 답변
‘기생충’: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
수치심과 죄책감은 둘 다 '잘못했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에릭슨의 발달 심리학적 관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치심은 ‘내가 실패했다’ 혹은 ‘내가 실수했다’는 뜻의 잘못이다. 에릭슨의 이론에서 수치심의 반대편에는 자율성이 있다. 즉 수치심은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가장 근원적인 수치심은 우리가 어릴 적 배변훈련 과정에서 생겨난다.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을 때, 내 또래는 모두 기저귀를 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거나, 밤중에 잠자리에 … [Read more...] about ‘기생충’: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
종로에서 뺨 맞았을 때
엄마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 되는 일 참도 없다고 생각되던 시절. 걱정 서린 엄마의 얼굴에 대고 난데없는 짜증을 뱉었습니다. 집으로 막 들어서던 길이었어요. 취업과 연애 모두 연패 스코어를 쌓아가던, 당시의 여느 일상처럼 어두운 낯빛을 하고 말이죠. 사실 그날은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더 겪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진상 손님을 만나 전에 없던 치욕감을 맛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얼큰히 취한 아저씨의 과녁이 됐습니다. 소심한 저는 그 장면에선 아무 말도 … [Read more...] about 종로에서 뺨 맞았을 때
루저의 반란: 영화가 비현실성을 극복하는 3가지 사례
※ 이 글에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주먹이 운다〉(2005), 〈리틀 미스 선샤인〉(2006), 〈족구왕〉(201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류의 영화가 있습니다. '세상의 게임에서 패배한 루저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바탕을 공유하는 영화들이죠. 이런 영화들에선 남들보다 한참 모자란 '루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루저는 세상의 기준에 맞서 싸워요. 그리고 마침내 … [Read more...] about 루저의 반란: 영화가 비현실성을 극복하는 3가지 사례
실사판 〈라이온 킹〉 후기: 위대하신 혁명지도자 스카 장군님의 몰락
※ 이 글에는 1994년 원작을 안 본 분에 한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프라이드 랜드에서 심바의 탄생을 알리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골 때립니다. 사자의 먹잇감들이 와서 탄생을 기뻐하고 절을 합니다. 얘들 대체 뭔가요? 상식적으로 사자의 개체 수 증가 → 더 많은 먹잇감 필요 → 더 많이 잡아먹힘이므로 심바가 태어난 순간 ‘아 X펄 X됐네’를 외쳤어야 합니다. 착한 사자는 죽은 사자뿐이죠. 노예근성이 따로 없습니다. 아무튼 심바가 등장합니다. 혈통만 … [Read more...] about 실사판 〈라이온 킹〉 후기: 위대하신 혁명지도자 스카 장군님의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