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도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든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1942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치면 77세다. 적지 않은 나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209분짜리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만드는 것은 오죽했을까? 선물 같은 연기 〈아이리시맨〉의 주조연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 영화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종합선물세트에도 메인이 되는 선물이 있듯 〈아이리시맨〉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명품 배우진의 … [Read more...] about 〈아이리시맨〉, 영감님들의 종합선물세트
영화
울면서 가출한 엄마, 바로 나였다
엄마 나빠! 엄마 싫어! 엄마 저리 가! 엄마 때릴 거야! 엄마 없어져 버려! 엄마 버릴 거야! 아이가 세 살 때였다. 아이는 두 돌이 지나자 갑자기 엄마 거부 증상을 보였다. 처음에는 “날날아 엄마한테 왜 그래, 엄마 그럼 속상해”하며 달래 봤다가 “날날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화도 내봤다. 그럼 아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 하며 안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도끼눈을 뜨고 또다시 엄마를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보통 애들은 엄마만 찾는데 얘는 아빠~ 아빠~ 아빠 보고 싶어~ 하고 … [Read more...] about 울면서 가출한 엄마, 바로 나였다
〈아이리시맨〉, 거장이 체화한 회화 전통을 영상으로 구현한 역작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를 리뷰하는 건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게 느껴진다. 뛰어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누구나 다 한마디씩 했고, 훌륭한 리뷰가 넘쳐나는데 나도 한마디… 해봤자 허접스러운 한 줄을 더하는 것 같은 기분. 그럼에도 〈아이리시맨(The Irishman)〉은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심이 나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거장 스코세이지 감독이, 최근에 다시 주목받는 지미 … [Read more...] about 〈아이리시맨〉, 거장이 체화한 회화 전통을 영상으로 구현한 역작
사랑이 필요할 땐, 리처드 커티스
리처드 커티스만큼 로맨틱 코미디 장르 그 자체인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 〈네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한 번쯤 봤거나 보지는 않았어도 들어는 봤을 영화들의 각본으로 큰 명성을 얻은 커티스는 유독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 감독이기도 하다. 사랑을 쓰다 11살부터 영국에 살았던 커티스는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블랙애더〉 〈미스터 빈〉 등 영국 코미디 드라마의 각본 작업에 참여하며 초기 커리어를 쌓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 [Read more...] about 사랑이 필요할 땐, 리처드 커티스
〈겨울왕국〉의 엘사가 관계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겨울왕국〉(2013)을 해석하는 방법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영화가 항상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의 속마음을 탁월하게 그려낸 영화로 비쳤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애착유형을 갖습니다. 애착유형이란 부모, 연인, 친구 등 타인과 정서를 교류하는 방식을 뜻해요. 대개 생후 12개월 안에 결정되며, 양육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죠. 애착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바로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입니다. 이 중 회피형은 연애할 때나 다른 친밀한 … [Read more...] about 〈겨울왕국〉의 엘사가 관계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겨울왕국 2’: 속편의 품격
2014년 개봉한 〈겨울왕국〉은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처음, 외화로는 당시 〈아바타〉의 뒤를 이어 두 번째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2019년 감독부터 주연 캐릭터까지 전편의 주역들이 다시 한번 뭉쳤다. 음악의 품격 전편의 성공에 다양한 요소들이 기여했지만 가장 주요했던 요소를 꼽으라면 역시 '렛 잇 고(Let it go)'로 대표되는 영화의 OST였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 … [Read more...] about ‘겨울왕국 2’: 속편의 품격
‘만세열전’: 3·1만세 운동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라서 데모 경험이 꽤 있는 편이다. 데모를 조직한다는 것, 탄압이 심하던 시절에 시위 참여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체로 무지한 편이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탄압이 극심하던 식민지 시대에 어떻게 전국적으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비폭력 만세운동’이 가능했는지 강력한 의문이 생겼다. 3·1절 연휴 기간 〈항거: 유관순 이야기〉라는 영화도 봤다. 유관순의 싸움은 ‘죽음을 … [Read more...] about ‘만세열전’: 3·1만세 운동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생충〉이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한 영화가 된 이유
※ The Guardian의 「How Parasite became the most talked about foreign language film of 2019」을 번역한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미국 개봉 5주 만에 매출 1,000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11월 13일 기준 1,130만 달러로, 상영관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매출 증가 폭도 오히려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영화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내세울 만한 매출액이 아닐지 몰라도 영어 아닌 언어로 … [Read more...] about 〈기생충〉이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한 영화가 된 이유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영화 〈건축학개론〉을 아주 싫어한다. 처음부터 싫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이해하고, 나 역시 영화가 내뿜는 감수성에는 공감하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공기, 그 시절의 음악, 그 시절의 감성.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다만 영화가 서연(수지와 한가인 분)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남성이 그 대목에서 분노는커녕 오히려 감명을 받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썸 타던 여자, 자기가 … [Read more...] about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82년생 김지영’: 어쩌면 우리의 삶은 문학보다 영화를 더 닮아 있기에
〈82년생 김지영〉 보고 왔다. 지난해엔 이 소설 흉도 좀 보고 그랬는데, 영화를 보고 와선 조남주 작가와 출판사에 새삼 고마운 감정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정도로 집약적인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던 건 그 자체로 굉장한 능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던 게 분명하니까. 그러니… 우리 관객들은 작품의 중간중간 노골적으로 깔려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결말부에서 화사한 클로즈업으로 김지영의 손에 들려있던 뜬금 《릿터》마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 [Read more...] about ‘82년생 김지영’: 어쩌면 우리의 삶은 문학보다 영화를 더 닮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