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도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든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1942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치면 77세다. 적지 않은 나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209분짜리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만드는 것은 오죽했을까?
선물 같은 연기
〈아이리시맨〉의 주조연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 영화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종합선물세트에도 메인이 되는 선물이 있듯 〈아이리시맨〉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명품 배우진의 대체 불가한 연기다. 특히 극의 중심에 선 로버트 드 니로는 숲 한가운데 우뚝 자리 잡은 고목처럼 든든하고 굳건하다.
로버트 드 니로가 뻗어내는 가지는 관객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그만큼이나 촘촘하게 짜인 뿌리는 관객들의 마음이 흔들릴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의 기승전결에 따라 계절이 바뀌듯 변화하는 감정선은 황홀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더불어 그 주변에 선 알 파치노와 조 페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처럼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어울려 숲을 이룬다.
선물 같은 이야기
〈아이리시맨〉은 미국의 유명 노동 운동가였던 지미 호파의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실화 바탕의 영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보더라도 관객들은 영화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제 몫을 넘치게 해주는 캐릭터들과 미국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장대한 스토리는 그야말로 한편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등장하는 인물도, 발생하는 사건도 너무나 많은 나머지 영화가 100분여를 지나기 전까지는 배역들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기 바쁜데도 영화는 마라톤을 달리는 선수처럼 목표 지점이 명확하다. 그 많은 인물과 사건은 모두 마라토너의 주변을 지나가는 풍경과 또 다른 선수일 뿐 〈아이리시맨〉의 발걸음은 한순간도 갈지자를 걷지 않는다.
선물 같은 연출
축구도 영화도 감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코세이지의 위대함을 이 자리에서 굳이 메마른 몇 가지 형용사로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리시맨〉의 연출, 음악, 미술은 하나씩 떼어놓고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그저 관객들에게 던진 선물이다.
스코세이지의 전매특허인 진지함과 웃음을 넘나드는 화면 전환, 위트 있는 편집은 물론 미술팀이 재창조해낸 미국의 1900년대 중반은 왜 영화가 상업과 예술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지 증명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1,855억의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아낌없이, 정확히는 아름답게 쏟아부었다.
〈아이리시맨〉의 배경과 소품들은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내가 사는 지금 이 시대가 거대한 세트장이고 지금 저 영화가 현실인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또한 배우들의 얼굴을 수십 년 전으로 돌려보낸 디에이징 CG 기술은 영화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종합선물세트
결론적으로 〈아이리시맨〉은 평균 나이 77세의 영감님들이 모여 만들어낸 종합선물세트다. 209분이라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소위 말하는 ‘킬링타임’용 영화들에 비하면 〈아이리시맨〉이 선사하는 209분은 관객들의 영화 인생에 길이 남을 209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제작비 회수가 쉽지 않음을 알고도 과감히 투자한 넷플릭스와 영화를 연출한 스코세이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선사해준 이 선물 같은 영화를 받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원문: 맑은구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