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커티스만큼 로맨틱 코미디 장르 그 자체인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 〈네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한 번쯤 봤거나 보지는 않았어도 들어는 봤을 영화들의 각본으로 큰 명성을 얻은 커티스는 유독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 감독이기도 하다.
사랑을 쓰다
11살부터 영국에 살았던 커티스는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블랙애더〉 〈미스터 빈〉 등 영국 코미디 드라마의 각본 작업에 참여하며 초기 커리어를 쌓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달랐는지 이 두 드라마는 영국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특히 〈미스터 빈〉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로맨스보다는 코미디 작가로 성공적인 출발을 했던 커티스는 1994년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각본을 쓰며 비로소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 〈노팅힐〉과 20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메가 히트작의 각본을 연달아 써낸 커티스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표하는 로코물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 자신이 연출한 작품들의 각본 역시 손수 작성한 커티스는 그야말로 사랑을 쓰는 각본가다.
사랑을 찍다
각본가로 탄탄대로를 걷던 커티스는 2003년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통해 펜에서 그치지 않고 메가폰까지 직접 잡게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 다양한 커플들이 엮이며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옴니버스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내로라하는 영국 배우들이 총출동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객들의 눈호강, 아름답고 다채로운 OST로 귀호강까지 책임지는 한편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 장면과 휴 그랜트의 춤 장면 등 수많은 명장면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대표 로코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09년 락 음악을 주제로 한 코미디 영화 〈락앤롤 보트〉로 잠시 쉬어간 커티스는 2013년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모두 반영된 듯한 로맨스 코미디 영화 〈어바웃 타임〉까지 각본과 연출을 모두 소화해냈다.
시간 여행자를 소재로 한 로코물인 〈어바웃 타임〉은 악역이 없고 따뜻한 감성을 짙게 풍기는 커티스 특유의 각본에 연인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까지 깊게 녹여내 큰 사랑을 받았다. 커티스는 단 3 작품만을 직접 연출했지만 그가 펜을 들었을 때뿐 아니라 메가폰을 들었을 때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 같다.
사랑을 받다
드라마와 영화, 각본과 연출을 종횡무진 누빈 커티스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사랑도 넘치게 받았다. 영화계로 입성하기 전 옥스퍼드 동문인 로완 앳킨슨과 함께 만들어낸 드라마 〈미스터 빈〉은 당시 영국에서 6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며 90년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군림했다.
이후 영화계로 넘어와 각본가로 참여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고작 500만 달러로 촬영되어 월드와이드 2억 4500만 달러에 이르는 흥행을 올려 당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영국 영화로 기록되었다. 이후 각본가로 참여한 〈노팅힐〉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전 세계 매출 신기록을 수립하는가 하면 다시 한번 가장 많은 흥행성적을 올린 영국 영화로 기록되는 기염을 토했다. 연이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또한 월드와이드 2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커티스가 로맨스 코미디 각본가로 참여했던 영화들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 액츄얼리〉 역시 제작비의 6배가 넘는 흥행에 성공했으니, 이쯤 되면 흥행 감독이라 부르기에도 손색없는 듯하다. 무엇보다 커티스의 마지막 연출 작품이었던 〈어바웃 타임〉은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렸을 만큼 한국 관객들의 커티스 사랑은 특별하다.
사랑이 필요할 땐
이처럼 사랑을 쓰고, 찍고, 받기까지 한 커티스는 명실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사랑꾼인 것 같다. 〈어바웃 타임〉이후에도 〈맘마미아!2〉 〈예스터데이〉등 자신의 장기를 살려 꾸준히 음악이 곁들여진 로맨스 코미디의 각본을 쓰는 커티스는 아쉽게도 〈어바웃 타임〉이후 더 이상 연출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하지만 그의 손으로 쓰인 작품이 계속해서 태어나고 그의 손길이 닿았던 작품들이 풍성하게 남아 있다. 그만큼 전 세계 관객이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커티스의 작품들은 항상 가장 좋은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원문: 맑은구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