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딴에는 귀한 통찰을 얻은 바가 있어서 글로 정리해본다. 2월말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반 아이들의 명단을 건네받는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아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교사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떻게 인식해가는 것일까? 처음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있었던 아이들의 면모가 3월 첫째 주와 둘째 주를 지나면서 점점 잘 인식되어가는 원리가 무엇일까? 둘 사이에 놓인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 인식론적 용어로 ‘매개(mediation)’라는 것이다. … [Read more...] about 코로나19와 비고츠키
인문
“제가 생각하는 괴물 중 하나는 ‘망각’이란 괴물입니다. 잊어선 안 될 것을 잊는 것 말입니다.”
성공한 아이돌의 태업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 무대 하나가 간절했던 수십만 연습생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혜화의 오늘 무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혜화는 절대 태업을 할 만한 아이가 아닌데, 오늘은 왜 그랬을까? 만약 컨디션의 문제라면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잘못이겠지만, 무대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일은 내 기억에 없다. 난 사무실 내 방으로 혜화를 불러 질책했다. 김동식의 단편 「마주치면 안 되는 아이돌」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작품은 몬스터를 주제로 한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 [Read more...] about “제가 생각하는 괴물 중 하나는 ‘망각’이란 괴물입니다. 잊어선 안 될 것을 잊는 것 말입니다.”
폴 그레이엄: 천재에 관한 ‘버스표’ 이론
※ 「The Bus Ticket Theory of Genius」를 번역한 글입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과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특정한 주제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몇몇 사람에게 조금 실례를 해야겠네요. 바로 버스표를 모으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옛날에 버스를 탈 때 요금으로 내던 버스표를 수집합니다. 다른 많은 수집가와 마찬가지로, … [Read more...] about 폴 그레이엄: 천재에 관한 ‘버스표’ 이론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올)바름’은 우리 인간이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어떤 것이다. 사람들이 바름을 추구하는 까닭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름이 그르다거나 오류가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바름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바름을 추구하면 할수록 바름의 차이 때문에 다툼이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바른 마음』에서 다루는 문제가 이것이다. … [Read more...] about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근대주의의 늦은 오후에: 그레이엄 하먼 인터뷰
※ Bad at Sports의 「In The Late Afternoon of Modernism: An Interview with Graham Harman」을 번역한 글입니다. 2016년 『비유물론: 객체와 사회 이론(Immaterialism: Objects and Social Theory)』에서 사변적 실재론 철학자인 그레이엄 하먼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를 주요 사례로 삼고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 [Read more...] about 근대주의의 늦은 오후에: 그레이엄 하먼 인터뷰
‘인문 뉴딜’을 제안한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의 이 질문을 지금 제기하면 한가하고 물정 모르는 소리라며 타박받을 일이다. 고쳐 묻자. 서울 아파트는 얼마 정도의 가격이 적당한가. 나는 부동산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왜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는지 의문이다. 기준이 있어야 비싸다 아니다 말을 할 거 아닌가. 기준이 있어야 사실 이 정도 금액이 적정한데 지금은 너무 올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우문일지도 모른다. 시장에서 가격이 이미 모든 걸 말하지 않는가. 가격은 그 가격에 거래되었음을 … [Read more...] about ‘인문 뉴딜’을 제안한다
남성적인 작가, 여성적인 작가
얼마 전 소설 수업 시간에는 정용준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다 읽고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하는데, 그중에 한 수강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뭔가 굵직굵직하고, 이야기도 힘이 있고, 그래서 마음에 들어요. 여성 작가들하고 다르게. 여성 작가들은 너무 소심하다고 해야 하나, 작은 이야기만 다루고 그러잖아요. 전 여성 작가보다는 남성 작가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얼굴은 트럼프를 바라보는 툰베리처럼 구겨졌는데, 아마 맨 뒷자리에 앉아서 보이진 … [Read more...] about 남성적인 작가, 여성적인 작가
『반일 종족주의』와 『천년의 질문』: 우리는 언제까지 역사를 잊고 살 것인가
1. 세상이 시끄럽다. 이럴 때면 조용한 방에서 책 한 권 붙들고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싶지만 요즘은 ‘책 세상’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반일 종족주의』 탓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그 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논평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영훈이 직접 조정래의 『아리랑』의 몇몇 장면이 ‘조작’되었다고 저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이영훈은 『반일 … [Read more...] about 『반일 종족주의』와 『천년의 질문』: 우리는 언제까지 역사를 잊고 살 것인가
“왜 나를 낳았어요?”: 반출생주의 철학에 대하여
※ Quartz의 「Suing your parents for being born has philosophical support」를 번역한 글입니다. 인도 뭄바이에 사는 27살 남성 라파엘 사무엘 씨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신을 세상에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했다는 뉴스가 많은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태아의 동의를 얻을 방법이 사실상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는 사무엘 … [Read more...] about “왜 나를 낳았어요?”: 반출생주의 철학에 대하여
소설가의 일, 창업가의 일
솔직히 이건 반칙이다 세상천지에 소설가보다 자기가 하는 일을 글을 통해 멋들어지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하물며 그 소설가가 김연수(!)라니. 취미생활+배설 활동으로 글을 적는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감탄을 넘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화가라는 직업을 그림으로 그려봤어”라고 해맑게 웃는 미켈란젤로를 바라보는 미대 입시학원 2년 차 학생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나 할까. 혹은 “자, 방금 발레리나라는 직업을 발레 동작으로 표현해봤는데 어떤가요?”라고 … [Read more...] about 소설가의 일, 창업가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