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순히 대중들의 무관심과 몰이해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인문학 위기는 학계의 학위논문과 소논문들을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제도와 절차, 그리고 그러한 제도와 절차 속에서 양산되는 그 논문들 자체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나 자신의 연구 수준이 연구자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수준의 최저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양심이나 자신의 연구 수준과 연구 대상을 대하는 성실도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으며, 그러한 양심의 발언에 나는 깊이 공감하고 반성한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주변 선후배들과 동료 연구자들로부터 줄곧 후한 평가를 받아 왔지만, 아직 나는 그러한 평가에 부응할 만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고 여긴다. 거듭 말하자면, 나는 자신을 최저한도의 연구자라고 생각한다.
박사학위를 얻고 나서는 이런저런 소논문들의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종종 후배들 또는 선배들의 학위논문을 봐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위기의 징후가 인문학 밖에서보다 안에서 훨씬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글들이 곳곳에 창궐해 있다. 지금까지 심사한 소논문이 대략 100여 편 정도 될 테지만, 그중 학술지에 게재될 정도의 전문성과 연구 의의, 정확하고 명료한 문장과 형식을 지닌 글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 같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논문 작성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을 ‘글쓰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비문이 너무 많아 주장의 요지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장과 절 사이의 최소한의 논리적 흐름을 갖춘 글이 매우 드물다. 글쓴이의 성실성과 별개로, 논문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러한 요소를 어떻게 글 안에 반영시킬지에 대해 거의 훈련이 안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너무 모질게 굴 수 없어, 그런 것 중에서도 상당수는 적당한 평가를 부여하여 구제해주곤 한다. 부디 이러한 사정이 내가 몸담은 중어중문학계만의 사정이었으면 좋겠다.
절망적인 것은, 연구자의 전반적인 수준이 갈수록 하향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선배 학자들의 글들은 우리 세대 같지 않았다. 연구 대상의 성격을 떠나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진지했고, 자신의 연구를 현실 사회와 접합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학위과정을 밟던 시대의 풍토는 우리처럼 졸업을 위해, 취직을 위해 대충 논문을 써내던 풍토와는 달랐다. 물론 우리 세대 중에도 훌륭한 연구자는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며 그 수는 점점, 어쩌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어중문학계, 더 넓혀 인문학계 내부의 이러한 풍토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쉬이 추측 가능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더 말하지 않겠다. 어서 또 문제의 글을 손봐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