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런 농담이 돌았다. 세계 위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키가 작아 장가도 못가고 특정 지역 출신으로 출세는 꿈도 못꾸었을 것이고, 퀴리부인은 여자라서 박사 학위에서 밀려 나이든 조교로 빌빌 매고 있을 것이고 운운의 농담인데, 여기에 헬렌 켈러를 추가해 보자. 헬렌 켈러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평생 장애인 시설에 갇혀 살거나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어요. 나 아니면 저 아이가 어떻게 살겠어요.”라고 울먹이는 … [Read more...] about 희망의 아이콘 헬렌 켈러의 숨겨진 역사
역사
조선시대 쿠데타 성공에는 몇 명이 필요했을까?
● 쿠데타의 역사 우리 역사에서 '쿠데타'라는 단어는 매우 친숙하다. 건국 후 60여 년 동안 2번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3명의 군인출신 대통령을 두었으며, 이들에 의해 30년간의 통치를 경험해야 했던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과거에는 이런 쿠데타를 흔히 '정변'이나 '반정'이라고 했다. 물론 성공한 쿠데타에 한해서다. 실패하면 흔히 '난' 혹은 '반란'으로 치부되었다. 쿠데타나 반정을 미화하기 위해 흔히 '혁명'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 [Read more...] about 조선시대 쿠데타 성공에는 몇 명이 필요했을까?
테세우스의 배
일관성, 얼마나 지킬 수 있으십니까? 1. 옛날 옛날, 그리스 남쪽 크레타 섬에는 미노타우르스라는 괴물이 살았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이 괴물은 미궁 속에 갇혀 있었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식성도 괴이하여 사람의 고기만을 먹었다. 그래서 크레타 사람들은 바다 건너 아테나이 왕국에 해마다 선남선녀 열두 명을 식사거리로 바치도록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일이 계속될 수는 없는 법, 결국 아테나이의 왕자 테세우스는 산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미궁으로 … [Read more...] about 테세우스의 배
1950년 6월 한강다리 폭파 “가만히 있으라”
서울의 명물 한강대교 한강철교가 선 것은 20세기가 시작되기기도 전이었지만 한강인도교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16년이었다. 인도교 공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였다. 황제 폐하나 타는 것으로 알았던 자동차는 1911년 단 2대에 불과했지만 1915년 경에는 70대로 늘었고 1917년에는 마침내 100대를 돌파하여 114대에 이르고 있었다. (CN뉴스 2011.3.14 이덕수의 길따라 기록따라) 또 서울시 인구도 늘었고 강남북을 잇는 교통로 확보가 절실해진 것이다. 이 … [Read more...] about 1950년 6월 한강다리 폭파 “가만히 있으라”
일본인마저 울린 도쿄의 ‘안중근’ 추도식
지난 3월 안중근 '장군'의 104주기 추도식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개적으로 열렸다. 나는 엉겁결에 안중근 추도식 홍보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책임이 막중해졌다. 우선 많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무서웠다.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는 지난 8년 동안 매년 8월 15일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생생하게 경험해왔다. '도쿄에서 처음 열리는 안중근 추도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폭력이 난무하는 충돌을 먼저 떠올렸다.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에서 … [Read more...] about 일본인마저 울린 도쿄의 ‘안중근’ 추도식
문창극의 역사관, 실드가 불가능한 이유
한 15년 전 쯤 난 문창극의 팬이었다. 당시엔 우파였던 내 정치적 스탠스에 맞게 “시원스럽구로” 잘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일간지 주필 중엔 그와 강병태 정도가 제일 나았고 조선일보 김대중은 이름값을 못하는 느낌이었음). 신문을 끊은 지난 10여년 동안 뭐하고 사는지 전혀 몰랐는데, 그 추억의 문창극이 갑자기 총리 후보가 되어 나타나 처음엔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역사관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창극이 내세우는 논리 사실 … [Read more...] about 문창극의 역사관, 실드가 불가능한 이유
박유하와 발전적 반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위안부 피해자 일각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창극 지명 사태와 함께 '친일파'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년 중 가장 커진 상태다. 사실 박유하의 저작이 1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박유하는 이를테면 재수없는 상황에 화제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박유하의 각론 중에서는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것도 적지 않다. '용서를 원하는 위안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평균적 한국인에게 매우 낯선 사실이며, 위안부 문제가 사실상 국내정치를 … [Read more...] about 박유하와 발전적 반일
푸스카스, 한국, 그리고 프리츠 발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열렸다. 2차대전 후로는 유럽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었다. 그런데 6월 16일 녹초가 된 채 취리히 공항에 내리는 일군의 동양인들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었다. 월드컵 극동 예선에는 한국 대만 일본이 편성됐는데 대만, 즉 당시 중국은 불참했고 한국이 월드컵에 나가려면 일본을 꺾어야 했다. 그런데 "강력한 반일감정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팀의 입국을 강력히 반대하여 어웨이 경기로만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 뒤에 질문 퍼붓는 … [Read more...] about 푸스카스, 한국, 그리고 프리츠 발터
“망가진 한일 관계, 한국의 과오도 함께 돌아봐야”
흔한 역사 덕후가 박유하 교수가 이슈화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차가운 커피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꼬인 한일관계 청산,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리: 안냐세요. 박유하 교수 논문은 보셨나요? 덕: 봤지요. 리: 어떻던가요? 덕: 별로더라고요. 리: 뭐가 별로에요? 덕: 근거가 빈약하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는 모두 생략하고, 우리가 용서해야 발전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 [Read more...] about “망가진 한일 관계, 한국의 과오도 함께 돌아봐야”
아시아 여성기금과 양국 학계, 그리고 박유하
1. 나눔의 집과 위안부 할머니가 박유하 교수가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신청 및 명예훼손 소송을 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1심까지는 가겠지만, 서로 간에 조정하고 끝내기를 기대합니다. 2. 저는 조선인 위안부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닙니다. 박유하 교수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저는 국문학을 박교수는 일문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은 계기는 제 전공인 근대문학 연구에서 왔습니다. 3. 애초에 제 관심사는 일제말기 문학의 … [Read more...] about 아시아 여성기금과 양국 학계, 그리고 박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