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위안부 피해자 일각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창극 지명 사태와 함께 '친일파'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년 중 가장 커진 상태다. 사실 박유하의 저작이 1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박유하는 이를테면 재수없는 상황에 화제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박유하의 각론 중에서는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것도 적지 않다. '용서를 원하는 위안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평균적 한국인에게 매우 낯선 사실이며, 위안부 문제가 사실상 국내정치를 … [Read more...] about 박유하와 발전적 반일
역사
푸스카스, 한국, 그리고 프리츠 발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열렸다. 2차대전 후로는 유럽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었다. 그런데 6월 16일 녹초가 된 채 취리히 공항에 내리는 일군의 동양인들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었다. 월드컵 극동 예선에는 한국 대만 일본이 편성됐는데 대만, 즉 당시 중국은 불참했고 한국이 월드컵에 나가려면 일본을 꺾어야 했다. 그런데 "강력한 반일감정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팀의 입국을 강력히 반대하여 어웨이 경기로만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 뒤에 질문 퍼붓는 … [Read more...] about 푸스카스, 한국, 그리고 프리츠 발터
“망가진 한일 관계, 한국의 과오도 함께 돌아봐야”
흔한 역사 덕후가 박유하 교수가 이슈화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차가운 커피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꼬인 한일관계 청산,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리: 안냐세요. 박유하 교수 논문은 보셨나요? 덕: 봤지요. 리: 어떻던가요? 덕: 별로더라고요. 리: 뭐가 별로에요? 덕: 근거가 빈약하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는 모두 생략하고, 우리가 용서해야 발전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 [Read more...] about “망가진 한일 관계, 한국의 과오도 함께 돌아봐야”
아시아 여성기금과 양국 학계, 그리고 박유하
1. 나눔의 집과 위안부 할머니가 박유하 교수가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신청 및 명예훼손 소송을 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1심까지는 가겠지만, 서로 간에 조정하고 끝내기를 기대합니다. 2. 저는 조선인 위안부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닙니다. 박유하 교수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저는 국문학을 박교수는 일문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은 계기는 제 전공인 근대문학 연구에서 왔습니다. 3. 애초에 제 관심사는 일제말기 문학의 … [Read more...] about 아시아 여성기금과 양국 학계, 그리고 박유하
3분만에 빡치게 해 드립니다: 쿨시크녀 박유하 교수의 논문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책을 잘못 이해하셨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할머니들은 “저자는 책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이나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한일 역사 갈등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기술했다”고 지적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이에 대한 구체적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박유하 교수의 2006년 논문 "한국과 일본 과거 극복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통해 대략적인 그녀의 입장을 … [Read more...] about 3분만에 빡치게 해 드립니다: 쿨시크녀 박유하 교수의 논문
문창극 교회 강연 역사적 팩트 검증 보고서
본 보고서는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토대로 그의 국가관과 가치관을 본 검증관 주관적으로 검증하며 총리 후보의 적격 여부를 개인적으로 판단하고자 하기 위해 작성되었음. 이 감정서는 대외비(飛)인바 얼마든지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읽은 뒤 자동폭파되는 기능을 갖추지 않았음. 전제 총리 후보자는 교회 신도들을 상대로 ‘간증’이나 ‘설교’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역사관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바, “일반인이 아닌” 특별한 신도들만을 위한 종교적 행사에서의 … [Read more...] about 문창극 교회 강연 역사적 팩트 검증 보고서
이완용의 현신 문창극
문창극이라는 이름을 들은 건 오래 되었다. 중앙일보에 종종 등장하던 머리숱 없는 남자의 캐리커처로 그 얼굴도 익히 안다. 그의 우익적 성향이야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고 그에 따라 자신의 필력으로 드러내는 것이야 표현의 자유일 터, 세상을 ‘개조’하겠다는 대통령의 총리로서는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그가 쓴 글을 놓고 전직 대통령을 모욕했네 어쩌네 하는 건 낙마 사유에 걸맞지 않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KBS의 단독 보도 (우리 KBS가 달라졌어요?) 를 보고는 실로 입이 … [Read more...] about 이완용의 현신 문창극
가깝기에 잊어버린 기억들 – 만화 “100도씨”와 6월 항쟁
역사의 역설: 6월 항쟁을 바라보는 시각 상식적으로는 먼 옛날의 역사를 기억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지나치게 가까운 과거의 기억이야말로 가장 쉽게 잊혀지곤 한다. 아직 개개인의 체험의 영역에 대체로 머물러 있기에, 나름대로 표준적 해석들을 바탕으로 기억해둘 역사로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것과 정반대로,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는 가까울수록 중요한 것들이 많다. 게다가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중요한 사회적 사건들이 벌어지는 빈도 … [Read more...] about 가깝기에 잊어버린 기억들 – 만화 “100도씨”와 6월 항쟁
우리의 결혼도 불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질서에 따라 타 인종 간 결혼을 허하지 않던 곳 1958년 7월 11일 이른 새벽이었다. 결혼한 지 한 달을 조금 넘긴 때였다. 익명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보안관과 동행 두 명이 신혼부부의 집을 급습했다. 보안관은 부부의 눈에 손전등을 비추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랑 자고 있던 사람이 누구야?” 여자는 답했다. "전 이 남자의 아내예요." 그리고 남자는 벽에 걸린 결혼 증명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보안관은 말했다. “그건 여기서는 … [Read more...] about 우리의 결혼도 불법이었습니다
87년 부산, 6월 항쟁의 기억
20살의 87년은 내게 행복했던 한 해였다. 그전까지 철저히 통제받던 나의 시간과 공간을 누구도 제한하지 않았다. 그건 나에게 혁명과도 같은 변화였다. 지옥같은 학교를 탈출했다는 행복감에 비하면 대학에 못갔다는 아픔은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이문세의 노래만 들어도 감성은 폭발할 듯 넘쳐났고, 컵라면에 샌드위치를 찍어먹는데도 맛있었다. 행복의 증거로 56kg이던 몸무게가 68kg까지 불어났다. 그 해 대한민국도 나처럼 변화의 순간에 들어서 있었다. 연초부터 데모소식이 들리더니 부산 재수생들의 … [Read more...] about 87년 부산, 6월 항쟁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