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안중근 ‘장군’의 104주기 추도식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개적으로 열렸다.
나는 엉겁결에 안중근 추도식 홍보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책임이 막중해졌다. 우선 많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무서웠다.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는 지난 8년 동안 매년 8월 15일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생생하게 경험해왔다. ‘도쿄에서 처음 열리는 안중근 추도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폭력이 난무하는 충돌을 먼저 떠올렸다.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어야 하는 이유
안중근의 미완성 걸작 ‘동양평화론’은 충돌을 원치 않는다. 안중근, 그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운명공동체를 꿈꿨던 이상론자이면서 또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공부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그를 침략주의 야욕에 불타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으로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대신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때문에 외부에, 이를 테면 일본 매스컴에 추도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 충돌은 쉽사리 짐작됐다.
아마도 2월 중순이었을 게다.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아래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의 “안중근 장군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 사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즈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기국회에서 “안중근은 당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살해해 사형을 받은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말만 들어가 있지 않을 뿐, 저 표현에는 안중근에 대한 아베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지금,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 한복판에서 연다는 것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때 정 대표가 한 말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여는 것이다. 안중근 정신은 일본인들까지 감화 시킬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꿈꾼 성인이다. 지금 한국·중국·일본의 상황을 봐라. 지금이야말로 안중근 정신을 되새겨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를 논해야 할 시기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45분짜리 동영상을 소개했다. 그 동영상은 1995년 7월 일본 공중파에서 방영된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이었다. 이 방송을 본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이 동영상 내용이 일본 교과서에 실려야”
’20년 전의 일본 방송국은 이 정도로 대단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 방송을 추도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안중근 ‘의사’라 불렀던 내가 ‘장군’으로 부르게 된 것도 전적으로 이 방송 덕분이었으니까.
동영상을 본 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그 눈물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였고 알게 모르게, 그러니까 ‘비밀리에’ 모든 준비가 진행됐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4년 3월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안중근 장군 순국 104주기 기념 추도식이 100여 명의 총련계·민단계·뉴커머·일본인 전부를 아우르는 가운데 개최됐다.
식순은 간단했다. 개인 묵념과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 상영 그리고 청년아카데미가 제정한 안중근 평화상의 시상 및 저녁식사가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도식 준비위원회 사람들은 영상의 힘을 믿었고 그것은 명백히 증명됐다.
영상이 흐르는 동안 객석에서는 끊임없는 탄성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재일동포나 한국인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일본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석한 다지마 미야코씨는 “추도식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고 좋은 공부가 있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공부가 됐다”라면서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와사키 겐이치씨는 “이런 내용을 일본 중·고교 교과서에 반드시 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중근은 재평가돼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벌써부터 2015년 3월 26일이 기다려진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안중근 장군이 돌아가신 3월 26일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동양평화 기원의 날’로 제정하고 싶다”라고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 박수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추도식이 끝난 뒤 수많은 참가자들이 사회를 본 내게 이구동성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라며 “앞으로도 매년 이 행사를 제발 열어 달라”라고 말했으니까.
안중근 장군은 물론 한일간의 근현대사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젊은 여성 유학생의 감상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추도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은 놀랍도록 청아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내년에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해야 겠다고. 안중근 장군, 당신이 마지막까지 그 어떠한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것처럼.
내년 3월 26일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은 이 자리에 다시 모일 것이다. 1년 후 오늘이 벌써부터 들뜨고 설렌다.
원문: 오마이뉴스
chanel espadrillesEcco CASUAL COOL RIBBON ESPRE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