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한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감옥에 가는 희생을 겪었다… 검찰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조국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느냐” 80년대 학생 운동의 얼굴들이 정계에 진출한 것은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본격화되지만, 그 시발은 1992년 총선부터였을 겁니다. 그때 나이 서른도 안 된 스물 여덟 살 김민석이 영등포에서 전직 장관 나웅배와 맞붙어 접전을 벌였으니까요. 제가 사회에 발을 내디딜 무렵, 이미 일군의 왕년의 … [Read more...] about ‘희생’을 말하는 당신들에게: 6월 항쟁의 딸, 약사 고미애
‘멸공’이라는 단어로 드러난 혐오에 대하여
1.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멸공'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삭제되자 인스타그램에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 복원시켰다는 뉴스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반공'은 가능하다.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건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그 말을 썼다고 해서 수구꼴통이라 낙인 찍을 수 없다. 그러나 멸공은 다르다. 공산당이든 공산주의자든 '멸하자' 즉 없애버리자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즉 전시 상황에서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처지의 군인들은 쓸 수 있을지 모르나 … [Read more...] about ‘멸공’이라는 단어로 드러난 혐오에 대하여
법률가들: 법률가의 역사를 소환하다
한국 사람에게 법이란 무엇일까. 무던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이 찬사가 되고 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한탄이 제꺽 튄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걸 알기에 자유로운 ‘무법천지’보다는 ‘법질서’에 대한 존중이 본능적으로 앞서고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벌어지고 나면 흘러나오는 말이 ‘법대로 하자’다. 뭔가 바람직한 상황을 설명하고자 할 때는 “00해야 하는 법이다.” 같은 관용어구가 붙는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이킨 … [Read more...] about 법률가들: 법률가의 역사를 소환하다
흉가의 이유
1. 흉가는 별 게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지 않으면 그 집은 흉가가 된다. 멀쩡히 도배 깔끔하게 해 놓고 비워 놓은 집에 며칠만에 갔더니 에어컨 배관 구멍으로 새가 들어와 새똥을 갈기고 간 걸 보았다. 사람 손을 안 타면 그렇게 집이 망가진다. 거미가 줄을 치고 벌레가 모여들고 쥐들도 대담해진다. 그러다보면 흉가가 되는 것이다. 흉가가 되면 가끔 사람들이 온다. 흉가 구경한다고. 경향 각지에는 의외로 흉가들이 많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흉가도 하나 둘이 아니다. 나도 촬영차 그 몇 … [Read more...] about 흉가의 이유
1991년 1월 30일, 나는 짐승을 죽였다
바람이 끊이지 않고 몰아치던 지리산 자락, 전라북도 남원의 어느 집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남자 나이 쉰 다섯. 그는 식칼에 찔려 피살됐다. 살인자는 나이 서른의 가정주부였다. 치정관계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났고 돈 문제가 얽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 원한은 무척이나 것이었다. 무려 21년 전 우물가에 물 길러 갔던 아홉 살의 소녀는 잠깐 이리 와 보라는 아저씨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고, 그만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홉살 소녀의 고통과 … [Read more...] about 1991년 1월 30일, 나는 짐승을 죽였다
6월항쟁 이브, 역사를 뒤바꾼 사진 한 장
결전 대학 입학한 첫 해 6월은 뜬금 없는 통일 논의로 시끄러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부르며 홍제동에 드러누운 사람들을 훑는 비디오를 보면서 한켠으로는 가슴이 뜨거워지다가도, 한켠으로는 ‘공동올림픽’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흰눈을 치켜뜨는 일상을 보내던 중 선배가 또 하나의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그건 87년 6월항쟁 비디오였다. 10.28 건대와 박종철 학생의 이야기가 지나간 후 등장한 것은 학교 정문 앞에 붙여진 ‘결전 1일전’이라는 알림판이었다. 박종철 학생의 아버지 … [Read more...] about 6월항쟁 이브, 역사를 뒤바꾼 사진 한 장
독일의 백장미, 피어나다
1943년 초, 전 유럽을 집어삼킬 듯 하던 나찌 독일의 기세는 꺾였다. 2월 2일 스탈린그라드에서 악전고투하던 독일 6군이 항복함으로써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난 것이다.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투였고, 이 이후 독일은 노도와 같은 소련의 반격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점만 해도 독일은 막대한 영토와 인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스탈린그라드의 패전이 독일의 패망의 전조라고 보기엔 아직 전쟁의 참혹한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찌의 독일 지배 시대는 광기의 암흑이 … [Read more...] about 독일의 백장미, 피어나다
비운의 과학자 에드윈 암스트롱
지금은 북한 정권에 이를 가는 뉴라이트가 되어 있고 탈북자들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초를 치른 바 있는 강철 김영환씨는 반공교육에서 본 북한 방송에서 김일성의 얼굴을 접하고 참 인자하게 느꼈다는 회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싹수가 붉었던(?) 셈이죠. 그런데 고백컨대 저도 비슷했습니다. 공소 시효가 끝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저는 청소년 시절 북한 방송을 꽤 들었습니다. 그 생경한 액센트가 재미있었고 거기서 '당과 수령님 따라 천만리' 따위 노래 들으며 낄낄거리는 건 입시 … [Read more...] about 비운의 과학자 에드윈 암스트롱
빛의 결혼식: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
한 여대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전남대학교 국사교육학과 76학번이었다. 향용 그렇듯이 집안에 데모꾼이 있으면 그 집안 상당히 피곤(?)해진다. 그녀의 오빠들이 그랬고 박기순은 일찌감치 오빠의 지기들이었던 윤한봉이니 김남주니 하는 광주 지역의 운동권 괴수(?)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될성부른 떡잎(?)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8년 6월 학내 시위에 연루되어 무기정학을 당한다. 학교로부터 거부당한 박기순은 또 하나의 학교에 마음을 쏟게 된다. 그것은 야학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야학을 … [Read more...] about 빛의 결혼식: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
1987년 8월 18일, 금지곡들의 광복절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는 일제 시대의 대표적인 금지곡이었다. 왜 금지곡이었을까.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의 2절이나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의 3절에 이르면 이 노래를 듣는 조선 사람들은 죄다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손을 얼굴에 묻고 엉엉 울기 바쁠 … [Read more...] about 1987년 8월 18일, 금지곡들의 광복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