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는 일제 시대의 대표적인 금지곡이었다. 왜 금지곡이었을까.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의 2절이나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의 3절에 이르면 이 노래를 듣는 조선 사람들은 죄다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손을 얼굴에 묻고 엉엉 울기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퍼뜨린 성악가 김천애는 몇 번이나 이 노래 때문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항일 노래가 아니며 일본 군국주의 행사에서 불리웠다는 설도 있지만, 대중들에게 이 노래의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고 봐야겠다. 홍난파의 친일 행적과도 별도이고.
이유도 없이 금지되었던 <아침이슬>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과 의지, 그리고 꿈을 담는 그릇 가운데 노래는 꼭 들어갈 것이다. 어깨가 빠지는 고된 노동의 고통도 달래고 죽을 것 같은 실연의 상처도 어루만지는 노랫가락의 신묘한 힘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일제가 노래 <봉선화>에 쌍심지를 세웠듯, 통제하고 금지하면 그 노래의 힘을 없앨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이 꼭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금지곡’과 그 사유는 전 세계적으로 진귀하고 유쾌하다.
7~80년대 대표적인 금지곡 <아침이슬>은 그 금지 사유조차 불분명하다. 다른 금지곡들은 그나마 이유를 달았는데 <아침이슬>은 그냥 금지였다. 왜냐고 물어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말 많으면 빨갱이인 세상에. 김민기의 회고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천하 땡보직이었던 AFKN 방송국에 근무하던 김민기는 어느 날 보안대에 끌려간다. 기세등등한 보안대 수사관은 김민기를 다음의 정교한 논리로 몰아부친다.
“이 새끼야. ‘긴 밤 지새우고’의 ‘긴 밤’은 유신 말하는 거지?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란 민족의 태양 김일성을 말하는 거고…”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민기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제가 이 노래를 지은 건 71년이고 유신은 72년입니다.”
이때 보안대 수사관은 박정희에게 저주를 퍼부었으리라.
“박정희 개쉐이. 1년만 유신 빨리하지.”
진귀하고 유쾌(?)한 ‘이유들’
이제 이유가 분명한 금지곡들을 보자. 송창식의 <왜 불러>는 ‘시의 부적절’로 금지곡이 됐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속에서 장발족 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대학생들의 등짝에 흐른 노래였으니, 괘씸할 수도 있었겠지. <고래 사냥>은 자살 장면에 등장하여 ‘퇴폐 염세적 가사’로 찍혔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안성기가 띵띠리링거리는 신중현의 <미인>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의 가사를 대학생들이 박정희를 빗대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둔갑을 시키는 바람에 찬 서리를 맞는다. 영화 <밀양>에서 목사 설교 판을 뒤집어엎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 풍조 조장’으로 금지됐고,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해서 금지’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배호의 <0시의 이별>은 자그마치 통금 위반을 부추긴다는 이유가 따라붙었다. 가장 가관인 것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술 취하면 일본 군가를 수시로 불렀던 각하의 정부가 이미자의 대표곡들을 ‘왜색’으로 몰아 금지해 버린 것이다.
해방되었으나 해방되지 않은
87년 6월 항쟁은 많은 것을 해방시킨다. 1987년 8월 18일 문공부는 ‘공연금지해제조치’를 통해 그동안 금지곡으로 선정된 국내가요 382곡 중 월북작가의 작품 88곡을 제외한 294곡을 재심, 왜색가요 금지곡 36곡, 가사 퇴폐 및 창법 저속으로 금지된 136곡, 학원가에서의 역이용 및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사유로 금지된 5곡 등 총 186곡을 ‘해금’했다. 노래의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을 맞은 지 4반 세기가 흘렀지만 아직 일제나 군부독재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은 살아 있다. 가사에 청소년에 유해한 약물(술)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려 버린 여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그렇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의 책을 ‘금서’로 지정한 국방부가 그렇다. 무식한 것들이 명은 길다.
원문: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