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법이란 무엇일까. 무던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이 찬사가 되고 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한탄이 제꺽 튄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걸 알기에 자유로운 ‘무법천지’보다는 ‘법질서’에 대한 존중이 본능적으로 앞서고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벌어지고 나면 흘러나오는 말이 ‘법대로 하자’다.
뭔가 바람직한 상황을 설명하고자 할 때는 “00해야 하는 법이다.” 같은 관용어구가 붙는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이킨 맥락이나 배경 같은 것 관심 둘 것 없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나라. 이리 두고 보면 한국 사람들의 법에 대한 경외감은 세계적으로 평균 이상이 아닐까 추측게 한다.
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률가’들이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어려서 ‘커서 뭐가 될래?’ 하는 질문은 누구나 받아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는데 그 질문에는 고정 답이 따라다닐 때가 많았다. ‘고시’ 봐서 ‘판검사’ 해야지? 코흘리개 면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뭘 안다고 어른들은 그런 자문자답을 반복하곤 했다. ‘판검사’가 먹는 건지 뱀 이름인지 몰랐던 어린이도 가끔은 야무지게 ‘판검사가 될 거예요’라고 대답하게 만들 만큼 그 이름들에 대한 집착과 선호는 질기고도 깊었다.
언젠가 윤동주 평전을 보면서 킥킥대고 웃은 적이 있다. 윤동주의 시대에도 사람들의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대학을 가게 됐을 때 아버지는 법대를 원했다. 법대 나와 고등고시 보라는 얘기였다.
평생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했으나 천생 문학도였던 윤동주는 격렬하게 반발했고 집안에서 접시와 그릇이 날아다니는 활극 끝에 할아버지의 개입을 거치고서야 문학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본에 태양 일(日)자 써 주기 싫다 하여 왈본(曰本)이라 부르던 반일 분위기 그득한 곳에서 살고 자랐던 윤동주의 가족도 그랬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토록 근 한 세기에 걸쳐 독보적인 위치와 권력을 점해 왔던 직업군이 또 있을까.
김두식 교수의 신간 『법률가들』은 이 직업군의 역사를 샅샅이 소개한다. 수박 겉핥기 정도가 아니라 속을 쩍쩍 드러내고 씨를 발라내고 화채를 만들어 대령하는 수준이다. 그 이면과 계보, 그리고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들의 활약과 한계, 일탈과 도전, 생전의 업적과 사후의 의미까지 탈탈 털어 보여 준다.
기존 학계 성과의 집대성은 물론, 동문회보의 소개란까지 뒤지는 불가사의할 정도로의 꼼꼼한 조사에다가 딱딱하고 머리 아픈 단어를 걸러 낸 듯한 쉽고도 유려한 문체가 덧붙여졌으니 이를 ‘법가실록’이라고 불러야 할지 ‘법률가 열전’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문득 망설여진다. 아니 실록, 열전 그러면 좀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겠다. ‘법률가 삼국지’나 ‘법률가 초한지’라고 불러야 좋겠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면 얼마 전 세상을 뜬 김용 선생의 소설 제목을 빌어 ‘법률가 영웅문’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책을 읽다 보면 삼국지의 등장인물들만큼이나 많은 등장인물이 연속부절로 튀어나와 일순 당황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도 법률가들은 있었고 그들은 마치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즉 허창의 조조, 강동의 손권, 서촉의 유비 등등의 느낌으로 저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법률가군’을 형성한다.
김두식 교수는 이들을 크게 4 세력으로 분류한다. 100년 동안 한국의 엘리트 코스의 대명사라 할 ‘고등고시’ 출신들. 두 번째 그룹,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치러진 조선 변호사 시험을 거쳤던 변호사들, 세 번째 그룹, 정식 법률가 탄생 코스를 밟지 못하였으나 해방 공간에서 굴러들어온 별을 어깨에 달았던 일제 강점기 법원 서기, 통역 출신의 법률가들, 네 번째 그룹. 해방 후 일시적으로 운용된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등 해방 후 법률가 자격을 갖춘 이들. 여기에는 운명의 날이었던 1945년 8월 15일, 하필이면 그날 조선 변호사 시험을 보다가 일본인 감독관들이 죄다 줄행랑치자 집단으로 몰려가 합격증을 받아냈던 얼렁뚱땅 법률가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같은 그룹에 속하는 법률가들이라도 그 내부의 분화는 그야말로 합종연횡이요 이합집산이다. 일제 강점기, 술 먹고 형제처럼 지내던 판검사들이 해방 후 이념 갈등 과정에서 피고와 원고로 만나기도 하고 생사를 걸고 싸우기도 하는 일이 변화무쌍하게 벌어진다. 일례 하나만 들어 보자.
1930년대 후반 평양지방법원 판사로 있던 김갑수는 평양법원의 조선인 터줏대감처럼 앉아서 평양 법원을 거쳐 가는 조선인 법률가들의 ‘허브’ 구실을 했다. 김갑수와 더불어 평양 기생집에서 술깨나 축냈을 법률가들의 이후 인생들은 그야말로 기기묘묘하게 엇갈린다.
김갑수의 경성제대 선배로 쾌남 호걸 소리를 들었던 조평재는 해방공간에서 ‘법률가 동맹’을 조직했고 좌익 세력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에서 남조선 로동당 사람들의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전향’한다. 이후 한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이어가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김갑수의 후임 판사로 부임한 김영재는 독립운동가들이 즐비한 가문 출신이었는데 ‘법조 프락치’ 사건의 좌익 피고인이 됐고 이후 월북한다. 김갑수와 함께 평양 거리를 누볐고 좌익 계열 인사를 무료 변론하기도 했던 이충영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다. 이 이름 가운데 조평재의 조카가 후일의 산신령 전 서울시장 조순이고, 이충영의 아들은 대한민국 제일의 마당발이었던 전 서울대 총장 이수성이다.
조평재 판사의 후배로서 선배의 영향을 받아 ‘소련 유학’을 꿈꾸었던 홍진기 판사는 후일 4.19 때 발포 명령을 내렸던 장본인이며 평양 법원의 ‘허브’ 김갑수는 한국 전쟁 당시 내무 차관으로 ‘비상사태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내려 악명높은 부역자 사냥의 법적 근거를 만들었고 진보당 사건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이렇듯 이 몇몇 사람과 그 자식들, 그리고 짤막한 몇 마디 인생 축약에서조차 한국 현대사의 흉측하고도 역동적인 움직임은 여실히 드러난다, 하물며 7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에 수록된 인물들의 드넓은 행적에 맞닥뜨리면 그야말로 압도될 수밖에 없다.
그믐날 밤 별처럼 많은 법률가의 이름이 빛났다가 사그라진다. 때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빛으로 빛나기도 하고 먹구름에 스러지기도 하고 별똥별이 되어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어둠의 천체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오제도나 선우종원 같은 법률가라기보다는 법조문을 총알 삼아 사람을 쏘고 다닌 사냥꾼들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칼날 같은 대법원장으로만 알았던 김병로의 다소 민망한 모습이며, 해방 이전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변호하던 세 명의 변호사, 김병로와 이인, 그리고 허헌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빨갛고 파랗게 갈라지는 과정도 선명하다.
사형수들의 대부가 되어 준 ‘사도 법관’ 김홍섭, 조봉암 재판에서 용감하게 무죄를 선고했던 유병진, 앞서 1945년 8월 15일 일본인 감독관의 부재로 ‘전원 합격증’을 받아냈던 그룹의 일원이지만 극과 극의 인생행로를 걸었던 유태흥과 홍남순 등등이 삼국지의 호걸들처럼, 초한지의 장군들처럼, 영웅문의 고수들처럼 저마다의 초식을 펼치면서 그들이 장식한 역사의 페이지를 들이민다.
이 넓고도 깊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법률가들만은 아니다. 『역사 앞에서』의 김성칠, 자칭 장군의 아들 김두한, 반민특위를 박살 냈던 노덕술 이하 친일 경찰관들, 강동원의 외증조부이자 북한에서 장관급 지위까지 올라간 사업가 이종만, 최초로 장관 독직 혐의를 쓴 최초의 여성 장관 임영신 등등 법률가들과 엮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물론,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시로 출몰한다. 즉 책을 읽으면서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는 말이겠다.
법률가들의 역사는 곧 법의 역사고 법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법으로 다스려진 사람들의 역사다. 이 책은 법률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대사 일부를 재구성한 세밀화이며 동시에 전체를 조망할 망루에 오르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이름으로만 알고 넘어갔던 사건들의 내막을 해부하다시피 들여다볼라치면 자신도 모르게 그 기저에 흐르는 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책을 덮은 순간에는 무슨 큰 금광이라도 캐서 저마다의 지식 창고에 갈무리라도 한 양 뿌듯해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 놀랍고도 신기한, 멋지고도 진지한 기회를 함께 하시기 바란다. 읽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읽어도 된다. 몇 달 뒤에 읽어도 된다. 부분마다 관심 있는 부분만 읽어도 된다. 이런 역사적 자양분이 되는 책도 흔치 않다. 장담할 수 있다.
원문: 산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