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에 러시아 발 기사가 하나 언론에 보도됐다. 푸틴이 볼고그라드를 스탈린그라드로이름을 바꾸는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오보라고 밝히는 얘기였지. 푸틴은 자신이 도시 이름을 바꿀 권리는 없고 도시 의회가 개명을 결의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아.
소비에트의 낫과 망치의 깃발이 땅에 떨어진지도 사반세기가 돼 가고 레닌그라드는 페테르스부르크가 된지 옛날이며 심지어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은 이미 1961년 스탈린의 이름을 떼내고 볼고그라드로 바꾸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이 21세기에 화제가 되고 있는 거지. 작년 볼고그라드 의회는 기념일 등을 맞아 ‘일시적’ 개명을 결의했다고도 하네.
히틀러의 과욕 vs 스탈린의 오기: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 이유는 단연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참혹하지만 빛나는 기억 때문이겠지.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은 20세기, 아니 인간이 경험해 본 최대의 전투로 갈음된다. 이 작은 도시에서 근 200만이 죽고 다쳤으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겠지.
여느 독재자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히틀러 역시 심각한 과대망상이 있었어. 그는 터무니없이 넓은 소련을 공격하면서 레닌그라를 포위한 북부 방면군과 모스크바 공방전을 치른 중부 방면군을 일단 정지시키는 한편 남부 방면군을 진격시켜. 그의 꿈은 러시아 남부의 코카사스 유전 지대를 장악하고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터키를 지나 코카사스의 남부 방면군과 악수한다는 웅대한 그래서 불가능한 구상을 했지. 어쨌든 코카사스 유전 지대는 소련의 심장과도 같았으니 거기를 노린 건 당연했는지도 몰라. 문제는 그 길목에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는 거야.
이 도시도 꽤 탄탄한 군수공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동네였지만 히틀러의 머리 속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였다는 게 그의 피를 끓게 했던 거야. 모양은 달라도 콧수염을 기르고 사람 죽이는 데는 도가 텄던 이 두 독재자는 서로에게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모양이지.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점령하라!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의 이름을 지도에서 지우고 싶어했지. 그런데 문제는 이 별 것도 아닌 ‘명분’이 현실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져.
원래 독일군 남부방면군의 목표는 소련 남부 코카사스의 유전이었어. 그러니까 스탈린그라드의 군수공장 정도만 폭격으로 못쓰게 하고 그쪽 방면의 소련군이 역습으로 나오지 못하게 방비만 해 두는 게 원래의 전략이었지. 그런데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의 이름에 집착했지.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았고 말이야.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깡그리 말살하고 보고 있나 스탈린? 하면서 오른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열광하는 군중의 ‘하일 히틀러’ 소리 들으면 얼마나 상쾌했겠어.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의 무력화가 아닌 ‘점령’을 위해 돌격해 들어간다.
여기에 스탈린의 오기도 결합한다. 원래 볼가 강변의 자리친이라는 이름의 도시였는데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과의 전투에서 도시를 지켜내는 데 자신이 공을 세웠고 그를 기념하여 (아부하여) 도시의 공산당원들이 스탈린의 이름을 따겠다고 청원해서 바뀐 이름 스탈린그라드였거든. 그 도시를 빼앗기는 모습을 보느니 그냥 트로츠키를 다시 보고 말겠다 뭐 그런 심경이었던 것 같아.
그 오기가 어떤 식으로 발휘됐냐면 스탈린은 독일군이 짓쳐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민간인들의 피난을 금지해. 무슨 의도였는가 하면 “시민들이 있으면 군대는 끝까지 싸우려고 들 거야.” 하나, “피난민 행렬이 이어지면 보급이 어려워져.”가 둘.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와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과 그 도시에 늘어선 양쪽의 군대는 자리친의 공산당 간부가 충성을 떠느라고 “위대한 스탈린 동지의 이름을 하사해 주십시오.”라고 청원하고 받은 이름값을 위해 수백만의 목숨을 바쳐야 했어.
이런 일 알고 보면 일상에서도 흔하다. 실제 내용과도 동떨어진 상징물이나 자존심을 위해 엉뚱한 대립각이 형성돼서 그 때문에 양쪽 다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보는 일 많이 벌어지니까. 그런데 오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수백만 군대를 거느린 독재자라면 볼가강만큼 피가 흐르게 마련이지.
어린 여학생마저 전쟁에 동원되어 기갑 사단과 맞선 전투
하지만 80년 뒤에도 볼고그라드가 스탈린그라드의 이름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혈투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죽어간 러시아인들의 사연이 도시 전체에 서려 있기 때문일 거야.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근거리에서의 시가전은 일상이었고 누가 수류탄을 먼저 던지느냐에 따라,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느냐에 따라 죽고 죽었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같은 결투도 흔했다.
1942년 7월 17일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막을 올리고 독일군이 거침없이 소련군을 유리하고 수백만 명의 포로를 잡을 즈음, 독일 16기갑사단은 기세 좋게 스탈린그라드를 향해 굴러 들어가고 있었지. 이미 폭격으로 저항을 분쇄한 터라 드라이브 가듯이 콧노래 부르며 탱크를 몰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탄이 날아와. 소련군 고사포, 즉 비행기 잡는 대공포대가 탱크를 겨냥한 거지.
북아프리카에서 롬멜도 원래 고사포로 개발된 88밀리 포로 영국군 탱크를 때려잡은 적이 있으니 특이할 건 없지만 특이한 건 그 포를 쏘는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여학생 지원병들이었거든.
초전에서 웬만한 나라의 전체인구규모의 군대를 잃어버린 소련은 그야말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지경이었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나 심지어 극동의 한인들까지도 끌고 갔었거든. 6.25때 인민군 대장으로 휴전회당에 나왔던 남일도 스탈리그라드에 있었다는구나.
어린 여학생들도 그렇게 전쟁에 나왔지.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실탄을 쏴 본 적이 없었어. 더구나 비행기를 겨냥하는 거면 몰라도 지축을 울리며 접근해 오는 탱크를 조준해 본 건 상상도 안해 본 일이었지. 하지만 이 여학생들은 단 한 명도 도망하지 않고 독일군 16기갑 사단과 맞서 싸운다. 심지어 폭격기들까지 몰려와 이 가녀린 고사포수들을 향해 폭격을 퍼붓지.
포대 하나 하나가 침묵했지만 소녀들은 결코 벙커에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또 하나 파괴됐구나 하고 맥을 놓는 순간 그곳에서 포격이 재개되는 걸 본 소련군들은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러. 목격자였뎐 소위 한 명은 이렇게 술회했다고 하네. “그것이 스탈린그라드 사수의 첫 단계였다.”
독일군 16기갑 사단은 뜻밖의 반격을 완전히 분쇄한 후 저항이 끝난 포대를 둘러보다가 경악한다. “이거 뭐야 몽땅 여자애들이었잖아.” 그들은 소련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결사항전’ (자발적이든 강요된 것이든) 앞에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지.
기회 있으면 스탈린그라드 관련 책이나 영화를 봐 두면 좋을 거야. 그 전투는 “20세기를 바꾼 전투”고 그 안에는 인간들이 짜낼 수 있는 극한의 드라마들이 수십 개, 수백 개 들어 있으니까. 스탈린그라드의 상징이라 할 벨마레 동상, 즉 악어 옆에서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의 동상은 극심한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기괴하기까지 한 이미지로 남는다.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 소련군 저격수가 이 동상 주변에서 몸을 숨기며 독일군을 저격하는 걸로 나오지. 이 동상은 전쟁 후 철거됐는데 역시 푸틴이 2013년 8월 다시 세운다. 일부러 그랬는지 영 옛날 분위기와는 다른 동상이 돼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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