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던 친구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 물은 적이 있다. 근데 녀석의 답이 의외였다. “어제는 아침에 육개장, 점심에는 보신탕, 저녁에는 삼계탕을 먹었네.” 위로차 물은 질문이었는데 이젠 내가 위로받아야 했다. “너 애인이라도 생긴 거냐?” 그러나 내막은 슬펐다. 아침은 육개장 사발면, 보신탕은 보통 라면에 신라면 섞은 거, 저녁의 삼계탕은 삼양 라면에 계란 푼 것을 이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라보떼’ (라면으로 보통 떼우기)의 전형이었다고나 할까.
1958년 8월 25일은 이 라면, 즉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 먹던 요리로서의 라면이 아닌 인스턴트 식품 라면이 마침내 개발된 날이다. 개발자는 안도 모모호쿠. 원래는 대만 사람으로 일본에 귀화했던 이였다. 그는 1957년 평생을 다니던 직장이 갑자기 파산해 빈손으로 쫓겨난다. 마흔 일곱 살. 그 암담함의 와중에 그가 시작한 것은 자신이 평소 구상해 온 “면에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면 개발이었다.
실패를 거듭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던 어느 날, 그는 식당에서 밀가루 튀김을 보게 된다. 밀가루 옷을 입힌 튀김이 온전하게 기름 속에서 다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번개같이 스친 생각이 “기름으로 튀긴 면”이었다. 면을 튀기면 수분은 증발하고 면발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생긴다. 이걸 건조한 뒤 다시 끓이면 그 구멍 속에 수분이 들어가 훌륭한 면 요리가 된다. ‘라면’의 탄생이었다.
라면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간 후일의 삼양식품 회장 전중윤은 라면 개발자 안도의 일신식품을 찾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것이 2위 업체 명성식품이었다. 명성식품 오꾸이 회장이 이런 말을 한다. “한국전쟁이 패전한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줬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나고 있다. 보답하는 의미에서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좋게 싼 가격으로 해주려고 결심했다.”
오꾸이 회장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원을 약속했고 자신의 회사에서도 비밀로 지키던 스프 배합 비율 등을 밀봉한 봉투에 담아 귀국하는 전중윤에게 전한다. 이에 힘입어 전중윤은 삼양식품을 세웠고 한국 라면사의 첫장을 연다. “삼양치킨라면” 일본인의 전적인 호의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라면 맛을 보는데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1인당 라면 소비율 1위의 라면 천국이 된 데에는 오꾸이 회장 말고 또 하나의 공로자가 있으니 그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박정희는 혼분식을 장려했는데 그건 부족한 쌀 대신 원조 밀가루를 먹자는 소리였다. 1964년 육개장 곰탕 설렁탕에 쌀 50%, 잡곡25%, 면류 25%를 넣어 혼합 조리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 우리가 지금도 설렁탕과 함께 먹는 면사리 풍습은 이때에 비롯된 것이다. “쌀 먹으면 머리 나빠지고 밀가루 먹으면 키가 큰다.”는 기괴한 영양학의 설파 속에 라면은 꽁지에 불단 듯한 고속 성장을 기록한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을 갖게 된 것 또한 박정희의 취향 때문이었다. 술 먹고 일본 군가 부르기를 즐겼던 “마지막 사무라이” 박정희는 술 먹은 다음의 해장용으로 라면을 즐겼는데 하루는 전중윤에게 전화해서 “거 좀 얼큰하게 고춧가루 좀 푸시오.”라고 했고, 밋밋했던 일본식 라면은 한국형 매운맛 라면으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중국계 일본인이 개발해 내고, 또 다른 일본인의 놀랄만한 호의로 한국에 소개됐던 라면은 한국인 제2의 주식이라 할만큼 한국인들의 삶에 낙지처럼 달라붙은 존재가 됐다. 라면 광고만큼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가 어디 있으며, 배고픈 날의 라면 냄새만큼 위장과 침샘을 뒤흔드는 향기가 또 있으랴.
라면 개발자 안도 모모후쿠가 내세운 사훈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食足世平(먹을 것이 풍부해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 수재물자로부터 대북지원물자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이의 밥상이나 부자들의 식탁이나 라면은 넓고도 동등하게 한국인의 배를 채워 주었다. “칠칠하게 말고 팔팔하게 끓여서”, 면발은 완전히 익기 전 그릇에 붓고, 김치는 완전히 익은 놈으로 골라서 담아 후루룩거리며 입안에 밀어넣는 순간의 행복감. 라면의 그것.
라면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전중윤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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