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국빈방문 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서울대에서 특강을 한 바 있다. 이날 특강에서 시 주석은 한중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대한 공조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은 “중·한 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이웃국가”라면서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양국은 항상 서로 도와주면서 극복했다.”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도우러 왔던 일을 상기시켰다. 특히 시 주석은 20세기 초 일제의 한국 및 중국 침략 사례를 거론하면서 양국간의 ‘역사 공조’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시 주석은 특강에서 고대 이래 근대까지 한중 양국에 걸쳐 활동했던 역사인물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는데 근대 인물로는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김구 선생, 작곡가 정율성이 그들이다. 김구에 비해 정율성은 지명도가 떨어지는 편이나 중국에서는 정율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정율성은 중국에서 3대 작곡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작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천안문광장 앞에서 시 주석의 영접을 받을 때 울려 퍼졌던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율성은 단순히 음악가가 아니라 항일투쟁가요, 혁명가이기도 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전남 화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세 되던 해인 1933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약산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비단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과 형제들도 임시정부 요원 또는 군인, 공산당원으로서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 그의 아내 정솔성은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초대 네덜란드 대사를 지낸 중국 정부의 요인이었다.
중국 시절 정율성은 상하이와 옌안 등에서 성악은 물론 작곡과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우며 음악활동을 했으며, 중국의 아리랑 격인 ‘옌안송, 중국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행진곡‘ 등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노래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그는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중앙가무단, 중앙악단에 종사하면서 일생동안 모두 40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76년 베이징에서 62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중국의 국립묘지 격인 베이징 시내 빠바오산 혁명묘역에 안장돼 있다.
이같은 공로로 정율성은 중국 창건 50돌인 2009년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뽑혔으며, 중국의 3대 작곡가로 추앙받고 있다. 윤이상에 이어 한국이 낳은 또 한 명의 세계적 음악 스타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는 한동안 금기의 인물로 치부돼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에서 공산당 활동을 했으며,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정율성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항일독립투쟁 포상은 물론 공적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 당시 적잖은 애국투사들이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했는데 이는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지난해 방중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애국선열들의 기념사업을 부탁한 바 있는데 그에 앞서 국내에서 정율성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놔야할 것이다. 올해로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광주와 전남 화순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이제라도 선생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재평가를 촉구하는 바이다.
(* 11일자 사랑방신문에 실린 칼럼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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