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13일, 자신을 ‘전사’라고 자칭했던 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가 파란 많은 저항의 삶을 마감했다. 이날 새벽 2시 30분 그는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고려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스러졌던 것이다. 9년 3개월간 복역하고 출감해 온전히 여섯 해를 채 살지 못하고서였다. 향년 48세. 해남의 산골에서 태어나 이른바 지역 명문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김남주는 이듬해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반대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부모의 요구를 관행적으로 따르는 … [Read more...] about 1994년 2월, ‘전사’ 시인 김남주 잠들다
역사
태극기를 잘못된 감옥에 가두어선 안 된다
우리는 상징과 이름의 힘을 가끔 간과한다. 상징과 이름은 사람들의 사고를 쉽게 지배한다. 괜히 20세기 철학의 중심 사조가 언어철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 나아가 문화를 얼마나 관통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주된 연구항목이었다.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계 거성이 등장한 것도 이런 맞물림에 의한 것이다. 어렵게 철학으로 갈 것도 없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만 읽어봐도 신(新)어로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나치와 전범의 … [Read more...] about 태극기를 잘못된 감옥에 가두어선 안 된다
“7번방의 선물” 실화 :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의 정원섭 씨 이야기
※ 이 글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화로 알려진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 조작사건은 국가의 잘못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1972년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정원섭 씨는 경찰의 고문과 조작으로 인해 15년간이나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후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손해배상조차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상처를 받았지만 … [Read more...] about “7번방의 선물” 실화 :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의 정원섭 씨 이야기
1951년 2월, 거창에서 양민 719명 목숨 잃다
산청과 함양에서 무려 705명의 양민을 학살한 뒤 인근 거창군으로 이동한 국군 11사단 9연대(연대장 대령 오익경) 3대대(대대장 소령 한동석)는 1951년 2월 9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마을사람들을 눈 쌓인 마을 앞들로 끌어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겨냥해 소총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눈 덮인 논들은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을사람 8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집단학살, 청연마을 … [Read more...] about 1951년 2월, 거창에서 양민 719명 목숨 잃다
아빠 딸 에스더야, 너는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있었단다
아빠 딸 에스더, 벌써 우리 딸이 유치원을 졸업했구나. 유치원 입학식이 시작됐는데도 의자 밑에서 까불며 나오지 않던 에스더가 이제 의젓하게 꽃다발을 받고 졸업 사진도 찍다니, 아빠 눈에는 참 신기하기만 하구나. 지금은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유치원에 빠지지 않고 갔지만,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해서 엄마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일들 기억나니? 더 자고 싶다고 일어나지 않기,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며 옷 타령하기, 유치원에 갈 때마다 업어줘, 안아달라고 보채기, 유치원 문 앞에서 … [Read more...] about 아빠 딸 에스더야, 너는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있었단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오가 있으나 폄하당할 일은 아닌
얼마 전 비정상회담을 오래간만에 봤다. 그런데 전후 경제발전에 대해 프랑스는 '영광스러운 30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의 기적'이란 표현을 쓰며 과거 20세기 후반에 대해 고성장으로 인한 기회가 많았던 시기라고 좋게 평가하더라. 그러고 보니 예전 어학연수 시절 일본인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들 역시 패전국이 되어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고도 압축 성장한 것에 대해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더라. '라인강의 기적'이란 말이 독일에선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 하지만, 독일 … [Read more...] about 한국의 경제발전, 과오가 있으나 폄하당할 일은 아닌
〈동주〉 100돌 맞은 영원한 청춘을 기리며
“시를 쓰기만 하면 뭘 하니 발표를 해야지.” “당선이 아이 됐는데 발표를 어찌케 하니.” 영화에서 윤동주의 고종사촌형이자 가장 가까운 친우이기도 했던 송몽규는 함경도 사투리로 정겹게 동생 동주에게 시를 발표해 볼 것을 제안한다. 자신보다 앞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촌형을 바라보는 동주의 표정은 부러움 반 부끄러움 반. 여러모로 복잡하다. 다행히 우리는 습작으로만 남을 뻔 했던 그의 시를 읽게 되었다. 1946년 윤동주의 또 다른 지우인 강처중과 정병욱에 의해 그의 시는 세상 밖으로 … [Read more...] about 〈동주〉 100돌 맞은 영원한 청춘을 기리며
50년 전 세상: 사랑의 여름과 혁명, 그리고 독재
이번 겨울의 막바지 추위를 견디며, 지난여름 그렇게 겨울이 오길 애태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간사하다. 문득 한파 속에서 여름을 생각하며 몇 가지 단상을 떠올리다 어느덧 살아보지도 못한 50년 전의 세상으로 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 여름은 누군가에게 ‘사랑의 여름’이었다. Summer of Love 서구사회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등장 이후 1960년대부터 락 음악이 대중음악계의 기수가 되었다. 비틀즈가 … [Read more...] about 50년 전 세상: 사랑의 여름과 혁명, 그리고 독재
“제국의 위안부”, 일본제국 논리로 ‘위안부’ 문제를 재해석하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간되었을 때는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이루고 있는 ‘제국(帝國)’이라는 낱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이 국민 개개인이 가치의 근원체라고 믿는 천황에 대한 자기 동일시를 기반으로 하는 절대주의 천황제와 가족주의 국가관을 특징으로 하는 파시즘으로서의 ‘제국주의’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제국'의 위안부일까 왜 저자 박유하는 책의 제목으로 ‘일본(일본군)’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명칭 대신에 ‘제국’이라는 어휘를 선택했을까. … [Read more...] about “제국의 위안부”, 일본제국 논리로 ‘위안부’ 문제를 재해석하다
스물일곱 윤동주, 후쿠오카 감옥에서 지다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간도 출신의 조선 청년 윤동주(尹東柱, 1917~1945)가 스물일곱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1943년 7월, 귀향길에 오르려다 일경에 체포된 이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듬해 3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일제는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통보했지만 윤동주는 학창시절에 축구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건강했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수감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쉬 믿어지지 않는 … [Read more...] about 스물일곱 윤동주, 후쿠오카 감옥에서 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