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미트페킹이 있다면 서울에는 가로수길이 있다
이제 곧 애플스토어가 들어온다는 가로수길은 요즘 강남의 상권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권이다. 세로수길(가로수길 옆길), 샤로수길(서울대) 등 다양한 아류를 쏟아내고 있는 원조 가로수길은 어떤 곳일까?
가로수길은 압구정과 괘를 같이한다. 압구정동은 아파트로만 이뤄져 있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한남대교 남단의 한강변을 따라 늘어선 미성아파트-신현대-구현대아파트-한양 아파트가 늘어선 곳이 압구정동이다. 그 맞은편, 그러니까 가로수길, 압구정역, 로데오거리에 이르는 지역은 강남구 신사동에 해당되는데 신사역~압구정역~성수대교~압구정로데오역에 이르는 3개의 커다란 신사동 블럭, 그중에서 오랜 기간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곳은 맨 오른쪽의 로데오 거리였다. 신사동 상권의 원류라 부를 수 있는 이곳부터 살펴보자.
‘압구정 오빠’와 로데오거리
사실 로데오 거리 상권은 강남의 탄생과 함께 신흥 부촌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데오 거리는 80년대 강남 졸부의 대명사, 오렌지족부터 야타족들의 주 활동 무대였으며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외국 문물에 대한 동경이 폭증하던 시절, 유학생 1세대와 교포들이 영어를 샬라샬라 하면서 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거리였다. 지금은 유니클로 매장으로 변해 버렸지만 대한민국 맥도날드 1호점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로데오 거리의 원조가 된 압구정 로데오는 이국적인 볼거리와 물 건너 온 패션의 중심, 부자 동네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바로 옆 청담동 명품거리와 갤러리아 명품관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최고급 상권을 탄탄히 지탱하는 지역이다.
로데오 거리는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연관성이 높다. ‘딴따라 문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시킨 1세대 선봉장 SM엔터테인먼트가 지근 거리에 위치해 있고, 인근에 연예기획사 수백 개가 골목골목 들어가 있다 보니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캐스팅되면 즉석에서 따끈따끈 신상으로 브라운관(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액정이나 패널이라 불러야 할까?)으로 일약 데뷔할 수 있는 행운과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우월한 유전자들과 조각 같은 튜닝을 받은 선남선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처럼 SNS가 없던 시절, 자신을 PR할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줄기차게 활보하는 것이었고, 이곳 길거리에서 받게 되는 기획사 명함이 몇 장이냐에 따라 셀럽으로서의 자질 또는 상품성이 평가되었을 터. 정우성과 이정재가 압구정에서 카페 서빙 하다가 데뷔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수많은 셀럽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이하는 필자의 주관적 경험과 지식에 따른 분석으로 객관적 자료로 검증된 내용이 아니므로 혹시 더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주저하지 마시고 댓글로 의견 남겨 주시면 업데이트, 수정하겠습니다. 좋은 지식이 여러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도록 참여 부탁드립니다)
로데오 상권의 쇠락
하지만 압구정 로데오 상권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원인의 한 축은 서울시 주거지역의 ‘종 세분화 (2003)’였다.
예전에는 로데오 거리 인근은 모두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있었다. 이 경우, 법적으로 지을 수 있는 건물의 크기는 땅 크기의 3배 (용적률 300%)였고 땅 100평이 있으면 지상건물은 300평까지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일반주거지역을 다시 쪼개어 1종부터 3종까지 세분화했고, 1종 150%, 2종 200%, 3종 250%가 되어 용적률이 절반까지 줄어드는 경우가 생기게 됐다.
이 경우, 건축비 대비 임대료가 비싼 압구정에서는 새 건물의 크기가 예전보다 작아져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이에 발 빠른 강남지역 건물주들은 서둘러 자신의 주택과 조그만 상가 건물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했고 로데오 거리부터 도산공원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상가건물 신축 붐이 시작됐다. 2000년 초부터 중반까지 상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강남 최고의 상권의 고상한 건물주들은 하나같이 1층에는 레스토랑과 상층부에는 뷰티 살롱이나 바와 같이 고급지고 격조놓은 테넌트들을 입점시키기 원했다. 그리고 콧대가 꽤나 세서 건물을 비우는 한이 있더라도 임대료를 자기 수준에 못 맞추거나 자기 취향의 테넌트가 아니면 임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분당선 연장구간에 새로 만들어지는 ‘압구정 로데오역’은 그동안 대중교통 편의성에서 열위를 나타내던 로데오 거리에 접근성까지 더해지게 되면 가뜩이나 대한민국 최고급 상권인 로데오 거리의 임대료를 지붕 뚫고 하이킥을 날릴 만큼 높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지하철이 뚫리고 조금만 참으면 상권이 부활할 것이라 철떡같이 믿었던 탓인지 당시 건물주들은 공실의 건물에 임차인을 채워 넣기 위해 파격적으로 임대가격을 낮추는 등의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로데오 상권은 강남역 상권의 대형 빌딩들과 달리 주거지역 구석구석 위치해 있어 건물들이 크지 않은데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형 임차인이 들어오기에는 규모가 작았다. 기껏해봐야 수입보세 가게나 밥집이나 술집 등 개인 규모의 임차인들이 상권을 이어가 줘야 하는데, 압구정 로데오의 임대료는 그 이름값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신축건물들이 우루루 들어서면서 상권이 로데오거리에서 도산공원과 시네시티까지 확장되는듯했지만 그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화되기도 전에 새로운 공급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량적인 측면 외에 정성적으로도 상권 활성화에 실패한 이유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금융위기 이후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압구정이 고급문화와 대중성을 동시에 품기에는 애매한 지역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각그랜저는 한때 국내 최고급 승용차였지만 그 후 더 고급스런 에쿠스나 K9 등이 나온 것처럼, 로데오 상권은 어느덧 최고급 상가가 들어가기에는 어중간한 고급이 되어 버렸다. 잘 차려입고 아버지 차라도 훔쳐 타고 가야 할 것 같은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은 청담동 언덕 골목골목으로 숨어버렸다.
반면, 셀럽의 등용문으로 활용되던 로데오 길거리 캐스팅은 기획사가 대형화 시스템화 되면서 기회가 줄었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블로그와 SNS에 익숙해진 신세대 뚜벅이들은 굳이 압구정역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가야 하는 로데오를 갈 바에 차라리 아기자기한 멋과 스토리가 있는 강북의 삼청동이나 북촌 일대를 찾기 시작했다.
신사동의 흑역사
앞서 얘기한 신사동의 3개블럭(신사역~압구정역~성수대교~압구정로데오역)중에서 왕년에 가장 잘 나가던 곳은 로데오라고 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은 맨 왼쪽의 신사역 인근이었다. 이곳은 문명의 발원지인 유프라테스 강에 비견할 만큼 한남대교 건설 전부터 나룻터가 운영되던, ‘강남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1972년 서울시장은 ‘사치, 낭비 풍조를 막고 도심지 인구의 과밀을 억제키 위해 종로, 중구, 서대문 지역에 바, 카바레, 나이트클럽, 술집, 다방, 호텔 등의 유흥시설 일체의 신규허가는 물론 장소이전도 불허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허가를 안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류 접수를 안 받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은 해당 업주들은 규제도 없고 세금도 감면해주는 강남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신사역 부근이다.
이러한 족보(?) 덕분인지 현재까지도 신사역에서 청담동에 이르는 도산대로 주변에는 룸싸롱등의 접객업소가 많이 밀집해 있다. (참고로 신사동은 대부분이 주거지역인데, 룸싸롱같은 접객업소는 법적으로 상업지역에만 입점할 수 있다. 신사동에서는 도산대로 큰길 주변에만 얇게 상업지역이 설정돼 있는 탓에 이들 업소는 도산대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신사역이 강남에서 가장 먼저 시장이 들어서고 상권이 형성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강남의 고급진 상권과는 거리가 먼 서민형 시장 상권이었다. 게다가 2000년 이후에는 슬럼화되면서 강남인 듯 강남이 아닌 듯 동네 전체가 오랜 기간 침체되기도 했다. 그 안에 길쭉하게 뻗은 가로수길은 낮에는 썰렁하고 밤에는 어둡고 소외된 거리였다.
‘스토리’로 시작한 가로수길
그런데 이러한 가로수길이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 중반이었다. 가로수길에는 예전부터 조그마한 패션과 화랑 관련 업종들이 시나브로 생겨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갤러리와 공방,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자리를 틀기 시작한 것은 특이할만한 일도 아닌 의례히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블룸 앤 구떼’와 같은 노천까페 스타일의 가게나 고급진 청담동 ‘하루에’가 가로수길 한복판에 생기면서 딱히 볼거리 즐길 거리가 없던 골목에 ‘예술인의 거리’와 같은 느낌 있는 느낌이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구경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많아졌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블로그 열풍 탓에 열혈 블로거들은 새로운 컨텐츠를 탐색해 탐방기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먹잇감을 찾아다녔다. 몇백만 원짜리 캐논 DSLR 카메라와 종류별로 장만한 렌즈를 만지작거리며 주말이면 출사를 나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은 새로 생긴 맛집과 멋집을 컴퓨터 단층 CT촬영 하듯 구석구석 먼지털듯 탐구해 현지 분위기를 빼곡히 온라인상에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당시 온라인에서의 인기와 함께 신기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했던 삼청동, 북촌은 주말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지만 아무래도 평일에는 사람이 많질 않았다. 하지만 강남의 정중앙에 위치한 가로수길은 입지적으로 퇴근 후 술 한잔, 데이트하며 평일에 즐겨찾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욱이 새로운 컨텐츠에 목말라하는 대중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술집과 밥집, 디저트, 찻집 등이 하루가 멀다고 생겨나면서 주택과 빌라들이 하나씩 상가로 탈바뀜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곳 편집숍과 분위기 좋은 카페는 대낮부터 많은 20~30대 여성들을 불러모았고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에 사진작가들은 분위기 좋은 골목과 카페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피팅모델을 세워놓고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2009년 전후로 압구정역의 성형타운을 떠나 신사역에 자기 건물을 올리며 생겨난 대형 성형병원들은 중국에서 온 성형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가로수길은 외 관광객들에게까지 높은 인지도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분에 전 세계인의 궁금증을 유발했던 ‘강남 오빠’, 이들의 유형과 실증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동남아 소녀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가로수길부터 찾게 되었다.
가로수길의 Before/ After
지난 10년에 걸친 상권의 발 빠른 성장과 발전은 폭발적인 임대료 상승을 불러왔다. 덕분에 가로수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길도 무척 빠르게 거치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가로수길은 철저히 상업화되었다. 상권의 태동부터 성장, 성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방과 갤러리, 아기자기한 소품과 센스있는 패션 편집샵이 우후죽순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에 입점하면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다양한 디저트와 음료를 판매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 바, 주점들도 곳곳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임대료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커피를 팔아서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 그러면서 마진율이 높은 패션, 소품, 뷰티같은 물판(물건판매) 중심의 리테일 상가들이 그 자리를 하나씩 꿰차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ZARA, H&M, Forever21, Mango등의 글로벌 대기업의 하이스트리트형 리테일들이다. 점차 비싸지는 임대료 탓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직영 매장들은 메인 가로수길에, 소규모 개인 상가들은 가로수길 이면의 세로수길로 헤쳐 모여가 시작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건물주 리쌍과 곱창집 세입자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메인거리에는 식상해져 버린 대기업 브랜드만 남게 되면서 개성을 잃어가는 가로수길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도 신문지 상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Real Story: 상권폭발의 원동력은 권리금
그런데, 이러한 거대 상권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었던, 거대상권의 성장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왜 젊고 센스있는 사장님들은 안정적인 로데오거리를 마다하고 아무것도 없는 신사동의 후미진 골목에 와서 깃발 꽂고 새로운 상권을 일구어 나간 것일까? 무에서 유를 만드는 보람이나 성취감? 아니면 용의 꼬리보다 닭의 머리를 선택하겠다는 틈새전략?
글쎄, 필자는 한국에서 신규 상권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금의 상황은 상가 권리금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유일한 시스템인 전세제도만큼이나 독특한 제도인 권리금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껑충껑충 뛰는 땅값 상승의 혜택을 실물 자산을 보유한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상권형성의 주역이었던 상가 임차인들도 어느 정도 나눠 가질 수 있는 기발한 시스템이었다.
집주인은 집값 상승의 혜택을 보는 대신 임차인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세 제도처럼 권리금은 건물주와 상가 세입자가 어느 정도 성장의 파이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공생의 매커니즘을 제공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 구현에 일조한 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치고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스템의 부작용과 폐해가 최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함께 불거지는 듯하다.
더욱이 통상적으로 건물주는 임차인의 권리금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권리금은 법적 근거 자체가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권리금 보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생기면서 권리금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권리금을 공론화하지 못하던 불편함은 누그러들겠지만, 권리금이라는 사생아를 과연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다음 포스팅에서는 권리금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원문: 남성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