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가 친일 부역 문인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결국 뜻을 거두어들인 게 지난해 8월이다. 문협은 친일 경력에 대한 논란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만 한국 근·현대문학을 선도한 두 문인의 문학적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었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육당과 춘원 문학상 제정을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라며 규탄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 막장 드라마는 주체가 바뀌어 계속 진행되고 있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한 출판사가 지난해 12월에 이 두 사람을 기리는 상을 제정하여 시상까지 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동서문화사가 제정한 제1회 육당학술상은 전성곤 중국 베이화(北華)대학 교수, 제1회 춘원문학상은 원로 소설가 박순녀 씨에게 돌아갔다. 동서문화사는 시상까지 해놓고도 문단의 반발을 감안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2월에야 이 사실을 밝힌 것이다.
문학상 제정을 강행해 시상까지 마친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대표의 입장은 강경하다. 그는 “한국 학계와 문단의 대표인 육당과 춘원을 빼놓고 우리 사학과 문학을 논할 수 없다”면서 “이들은 도쿄 2‧8독립선언, 서울 3‧1독립선언 등 독립운동을 하고 옥살이도 했는데, (그들의) 내재적 독립운동을 이해 못하고 그들의 선구적 업적을 폄하해선 안 된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에두르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냈다. 그는 “육당과 춘원은 호소력이 뛰어난 연설이나 글로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보낸 이”라며 그들은 “비판의 대상이지 문학상을 만들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후과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주최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긴급토론회’(2016. 11. 29.)의 자료집을 뒤늦게 읽었다. 해방 72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저 식민시대의 오욕의 역사는 참담하다.
그는 산을 좋아하였다. 여생을 산에서 보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깝게도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었다.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을까.
세상 떠난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서 아무개 같은 사람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봐 줄 수가 없어요. 일제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어요. 작가는 인격이나 인품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또 문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물건은 다 버려도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품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위 토론회의 기조 강연인 ‘민족의 죄인 – 모럴 부재의 친일문학’(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에 소개된 글들이다. 둘 다 수필가 피천득의 글로 위의 것은 그의 수필 ‘춘원’이고, 아랫것은 정정호가 엮은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에 나오는 ‘피천득의 말’이다.
피천득은 1980년대 5차 교육과정의 고등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의 ‘인연’이란 작품을 가르치면서 내내 꽤 심사가 거북했던 기억으로 떠오르는 작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글쓴이의 말대로 ‘친일문학의 본질을 알았던’ 사람 같다.
윗글의 ‘그’는 춘원 이광수다. 피천득은 그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오히려 ‘다행’이지 않았겠냐고 했다. 나직한 목소리지만 춘원의 출옥 이후의 삶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뒷글의 ‘서 아무개’는 서정주다. 피천득은 철저히 체제에 순응하고 권력에 추종하는 서정주의 삶의 태도를 제대로 비판하고 있다.
문인들의 친일 부역 사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뒷사람인 우리가 오히려 부끄럽다. 그러나 해방 후 이들은 아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는 이승만의 방해로 결국 해산되었고, 이후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이 그 과거의 기억을 망각할 것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지배해 왔다.
프랑스 작가 브라지야크의 경우
진부한 비교지만 프랑스의 부역자 숙청의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드골(de Gaulle)은 임시정부 수반으로서 전후 부역자 재판에서 문학 예술인에 대해서는 어떤 탄원이나 구명운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가가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을 선택한 작가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의 자극적 웅변술이 어떠한 범죄와 어떤 벌에 해당되는지를 너무나 잘 보고 있다.
로베르 브라지야크(Robert Brasillach)는 프랑스의 숙청 재판에 회부된 지식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소설가이며, 비평가였고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다. 그는 독일 점령기 프랑스에서 부역에 가장 적극적이어서 자신이 편집을 책임지고 있던 매체를 통해 친독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를 선동했다.
부역자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폴 발레리, 프랑수아 모리아크, 콜레트를 비롯한 수많은 동료 문인들이 드골에게 브라지야크의 사면 또는 감형을 청원했다. 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브라지야크의 사면 탄원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히틀러의 선전자들을 엄벌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 독가스 실만큼이나 살인적인 말들이 있다.
드골은 사면 요청을 거부했고 브라지야크는 파리 근교 몽루주 요새에서 반역죄로 총살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왜 돈으로 부역한 자들보다 말과 글로 부역한 자들이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 베르코르의 답변은 단호했다.
기업가와 작가를 비교하는 것은 카인과 악마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카인의 죄는 아벨에 그친다. 그러나 악마의 위험은 무한하다.
고통과 치욕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기억과의 투쟁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서독 대통령 바이츠제커의 종전 40주년(1985. 5. 8.) 기념 국회 연설도 과거를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지나간 일은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 참회와 속죄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함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것은 속죄의 원천이다. 이 증거를 망각하는 자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현대사는 그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었다. 그 과정을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친일파 청산의 실패로 친일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뒤 ‘분단과 극단적 반공 풍토, 그리고 독재와 친일과 반공의 결착 속에서 친일세력은 우리 사회의 중추를 죄다 장악’한 것으로 정리한다. (위 자료집 ‘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 아래도 같음.)
그리하여 학계조차 친일 문제 연구를 외면하고 과거 친일에 연루된 언론이 이 문제를 호도하면서 그 대중적 논의 구조마저 차단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박정희 집권기의 무분별한 기념사업과 함께 ‘공익보다는 사익, 주관적․집단적 이익몰이 등이 기념사업의 주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굴절과 왜곡이다.
친일인물 기념사업자’들은 일제시기 이들의 친일행위를 문명개화와 계몽운동의 선구로 옹호하고, 해방 후 이승만 독재정권에 빌붙은 행적에 대해서는 반공 애국투사, 건국의 공로자로 높이 평가했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 어용 지식인으로 활약한 이들에 대해서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친일파에서 친미파 또는 지일파로 변한 것을 두고 개방화 시대의 선각자로 추켜세우고 있다. (위의 글)
다시 ‘기억과의 투쟁’이 필요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에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 문인 42명 가운데 문학상 등으로 기림을 받고 있는 이들은 8명이다. 김기진, 김동인,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무영, 조연현, 채만식 등이 그들인데 이제 거기 춘원과 육당이 보태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탄핵 정국에 이어 사회 전반에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높은 가운데 새삼 친일 문제 청산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해방 70년을 넘기면서 망각되었든 망각을 강요받았든 암묵적 금기가 되었던 친일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시기에 춘원과 육당을 기리는 상을 새로 제정한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퇴행이다. 문인들이 친일문학상의 철폐를 역사적 과제로 여기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친일문인 문학상의 수상자 면면을 살펴보면 이 일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비평가 가운데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은 이가 없고, 동인문학상을 받지 않은 작가들도 없기 때문이다. ‘기념대상 인물도 문제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나 수여대상자도 자기 성찰이 필요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의 문제는 역사적 책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 사업 속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망각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은폐와 말살을 넘어 과감하게 왜곡의 단계’까지 이르고 있는 일련의 기도에 맞서기 위한 뒤늦은 ‘기억과의 투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