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황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멸망한 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아나스타샤 이야기처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문용옹주’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과연 문용옹주의 존재는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두 주장을 살펴봅시다.
문용옹주, 또 다른 덕혜옹주다?
고종황제에게는 1명의 황후와 1명의 황귀비, 5명의 후궁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공식적으로 9남 7녀가 있었는데 그 중 순종, 영친왕, 의천왕, 덕혜옹주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문용옹주가 실제라면 고종황제의 숨겨진 공주인 셈입니다. 고종황제가 환갑 나이에 얻어 끔찍이 아꼈던 덕혜옹주는 1912년생이지만, 문용옹주는 열두 살 더 이른 1900년에 태어났습니다.
‘문용옹주’의 존재가 사실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도 드라마틱합니다. 암투 때문에 어린 시절을 박복하게 지내고, 개화기의 신식교육을 받으며 유복하게 지내다가, 남북분단의 혼란스런 한복판에 섰으며, 반공이념에 의해 옥살이한, 남편도 자식도 먼저 보내고 마지막 황녀로 인정받지도 못한 우여곡절 속에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1972년 유주현의 소설 ‘황녀’가 출판되며 TV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소설 ‘황녀’ 속 문용옹주
소설 『황녀』는 조선말부터 유신시대까지 역사의 모든 굴곡을 따라 살아온 한 여인, 문용옹주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에 의하면 문용옹주는 고종황제와 염상궁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엄귀비’의 권세가 오르던 때인지라 임신한 염상궁은 엄귀비의 미움을 받고 궁궐 밖으로 쫓겨납니다. 엄귀비는 평민이 된 염상궁에게 사약을 보내고 염상궁은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문용옹주를 남겨 둔 채 죽음을 맞이합니다.
황녀임에도 아무도 모르게 민가에서 태어난 문용옹주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염상궁의 벗이었던 임상궁이 이를 딱하게 여겨 재산을 주며 경상도 김천의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문용옹주의 양부가 일찍 죽어 버리고 양모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재산을 빼돌려 도망갔다고 합니다.
황녀에서 평민으로, 그리고 이제는 거지로 추락한 문용옹주의 소식을 알게 된 임상궁은 아홉 살 소녀를 한양으로 데려가며 원래는 황족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후의 문용옹주는 진명여고에 다니며 유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열일곱 살에 독립운동가 김희진을 만나서 결혼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되지 않아서 남편은 물에 빠져 익사하고 아들들은 차례로 죽어버리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거기다가 금치산자인 시삼촌의 행패까지 겹치며 결국 시아버지의 배려로 만주로 가서 살게 됩니다.
조국이 광복을 맞았다는 반가운 소식에 문용옹주는 한국에 돌아왔으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좌익활동을 하던 시동생과 가까이 하다가 빨치산으로 연루되어 모진 고초를 겪고 감옥에 복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문용옹주는 자신이 황족임을 밝히고 고종황제의 황녀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일흔이 다 되어 출옥한 후에도 가난한 삶을 보냈으나, 1972년 소설 ‘황녀’가 출간되고 1974년 동명의 MBC 드라마가 화제되면서 관심 받게 되었습니다.
소설 ‘황녀’ 속 문용옹주의 삶에는 근현대사의 모든 굴곡이 그대로 다 새겨져 있습니다. 문용옹주가 힘겨운 삶을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전주시는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에 살게 하고 생활비도 지원해 주었습니다. 문용옹주는 주민등록증도 발급받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1987년, 문용옹주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사회적 주장들이 분분한 가운데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만약 문용옹주의 신분이 진실이라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가 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용옹주, 진실 혹은 거짓?
소설과 드라마 ‘황녀’로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으나 문용옹주는 사망 이후에도 황족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문용은 줄곧 자신의 신분이 황족임을 주장하며 황실 왕족인 이재곤이 고종황제와 닮았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재곤의 증언에 의하면 문용옹주가 고종황제의 진짜 생일 날짜를 알고 있었으며, 황손 이우가 일본에 가기 전 약혼한 여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황실문화재단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황실사랑회에서는 문용옹주설을 완강히 부정합니다. 아무리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는 시대라고 해도 황제의 딸인데 이에 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 생존했던 마지막 상궁들이 말하길 하룻밤 승은을 입어도 당호라는 것을 받는데 왕족을 임신한 것을 다른 상궁들이 모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더구나 왕족 혈통이 귀한 시기라 귀비가 함부로 사약을 내릴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황족들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창덕궁의 ‘낙선재’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공식입장은 고종황제의 딸 중에 문용옹주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경술국치의 혼란스러움 때문에 고종황제가 모르고 지나간 황녀라는 설과, 기록문화가 기본적인 조선왕실의 딸인데도 어떤 기록도 없는 거짓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문용옹주는 잠시 관심받았으나 그 뒤로는 잊힌 듯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소설 ‘덕혜옹주’가 히트를 치자 다음 해에 재출판됩니다. 이는 문용옹주의 존재를 거짓이라 보는 사람들에게 덕혜옹주의 인기에 빌붙어서 돈을 벌려는 출판사의 속셈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때 태어나 고종황제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하고 결국은 정신질환자가 되어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공식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와 달리 문용옹주는 황녀임을 증명하지 못한 채 사망하여 거짓이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국민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망국의 한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탸샤’라고 주장하던 안나 앤더슨이 DNA검사로 거짓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처럼 결말을 확인할 수 있다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정서 또한 중요하지만 결국은 역사의 진실과 거짓의 연구가 가장 중요합니다.
원문: 키스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