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겪어야 했던 네 개의 대결 : 미국 vs 소련, 백인 vs 흑인, 남성 vs 여성, 그리고 기계(컴퓨터) vs 사람
뻔한 이야기다.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여성(들), 그것도 흑인 여성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하고 인류(미국)의 위대한 우주 도전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화려한 볼거리로 혼을 쏙 빼놓는 방법. 할리우드판 ‘국뽕 영화’가 대게 그렇다. <진주만>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또 하나는 쥐어짜는 방법. 스토리고 뭐고 필요 없다. 웃음을 쥐어짜고 눈물을 쥐어짜면 된다. 한국판 국뽕 영화의 상당수가 이 전략을 선택한다.
<히든 피겨스>는 무엇보다 뻔하지 않아 좋은 영화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기.’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중 어떤 방법도 선택하지 않는다. 웃고 우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관객들에게 웃으라고, 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이니 그래픽이나 볼거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밖 우주도 나오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로켓과 우주선도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화려한 비주얼이나 그래픽 대신 오히려 흑백의 실사 화면을 통해 극적 효과를 노린다. 굳이 찾자면 <포레스트 검프>가 선택했던 전략과 비슷하다(물론 로버트 저매키스 감독은 유머 넘치는 그래픽을 잔뜩 사용했지만).
스포일러를 크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몇 장면을 보자.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이 유색인종 화장실을 찾아 800m 거리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은 우스꽝스럽지만, 차마 웃을 수 없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돌아왔는데 상관인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으로부터 꾸지람을 듣자 캐서린이 NASA의 인종 차별 정책을 성토하는 장면은 작위적이지만, 가슴을 뜨겁게 한다.
알이 연장을 들고 화장실 표지판을 부수는 장면 역시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지만, 통쾌하다. 알은 화장실 구분을 없애라고 지시한 뒤 이렇게 말한다.
NASA에서 모든 사람의 오줌 색깔은 똑같아!
영화는 이처럼 억지스러움과 자연스러움, 웃음과 눈물이 뒤섞이고 충돌하는 장면이 지뢰처럼 도처에 깔렸는데, 감독은 이 지뢰를 절묘하게 피해 간다. 아니 때로는 아예 밟아서 자폭하고 어떤 지뢰는 꺼내서 던져버리기까지 한다. 거기서 묘한 감동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자꾸 이런 생각을 했다. “어라? 이 감독, 감동을 좀 아는데?”, “이야기 좀 할 줄 아는데?” 영화를 보고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감독 데오드르 멜피의 이름과 필모그래피를 검색했다.
<히든 피겨스>를 빼고 다섯 편뿐이었다. 제목이라도 들어본 영화는 딱 한 편이었다. 바로 <세인트 빈센트>였다(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 까칠한 이웃집 아저씨와 소년의 케미가 빚어낸 이 영화의 잔잔한 감동을). 고개를 끄덕였다.
소련, 백인, 남성, 그리고 기계와의 싸움
영화는 크게 세 개의 대결 구도로 펼쳐진다.
- 미국 vs 소련
- 백인 vs 흑인
- 남성 vs 여성
다시 말해 주인공 여성 세 명은 냉전, 인종차별, 성차별의 최전선에서 이 보이는,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싸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하나의 적이 등장한다. 컴퓨터다. 결국, 이 영화의 대결 구도에 하나가 추가된다. 기계 vs 사람.
1960년대 초 냉전이 최고조였던 당시, 우주 개발은 곧 전쟁이었다. 우주는 냉전의 전장(戰場)이었다. 인류의 도전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영화에서 그려지듯 소련이 앞서가자 미국은 공포에 빠진다.
소련이 미국민을 우주에서 감시하고, 우주에서 당장에라도 미사일을 쏠 것 같은 공포감. 영화는 당시 미국민의 일상에 스며든 그런 공포를 소소하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에게나 국가에 대한 봉사가 허락되지 않는다. 과학기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심하게 말하면 ‘불가촉천민’이었다. 세 명의 여성은 천재에 가깝지만, 선을 넘을 수 없다.
아무리 밤새워 일해도 주임을 달 수 없고, 보조 계산원 신분을 넘지 못한다. NASA의 핵심 두뇌들이 풀지 못한 공식을 척척 풀어내도 자신의 이름으로 보고서조차 올릴 수 없다. 브리핑 참관도 할 수 없어 힘겹게 풀어낸 공식은 용도 폐기된다.
계산은 할 수 있지만, 엔지니어는 될 수 없는 사람들. 이런 식이다. NASA에서 일하는 직원이 엔지니어가 되려면 지정한 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흑인이 입학할 수 없다. 메리 잭슨(자넬 모네)의 대사는 당시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흑인)가 앞서갈 기회가 오면, (백인은) 항상 결승선을 옮겨버리더라.
NASA가 난관에 부딪혔던 모든 수학적 공식을 캐서린이 해결했지만, 그녀조차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NASA에 처음 도입된 IBM의 기계(대용량 컴퓨터)가 사람 대신 그 일을 맡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게 된다.
IBM의 기계가 계산은 더 빨리할 수 있지만, ‘믿음’까지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주 비행사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이렇게 말한다.
캐서린에게 확인해달라고 하세요. 그녀가 좋다고 해야 저도 준비될 겁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던 인물이다. 그들은 흑인이었고 여성이었다. ‘컴퓨터’는 당시만 해도 기계의 이름이 아니라 계산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그들은 컴퓨터로 불렸고 실제 기계처럼 취급됐다.
때로는 실력으로, 때로는 저항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컴퓨터’가 아니라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것도 가장 뛰어난 두뇌가 모인 NASA에서도 가장 계산을 잘하는 사람. 영화 제목처럼 그들은 ‘히든 피겨스’였다.
엉뚱하게도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캐서린이 프러포즈를 받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문라이트>에서 ‘아빠 미소’를 잃지 않았던 후안(마허살라 알리)이 이 영화에서도 훈훈하고 따뜻한 아저씨로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이처럼 선한 표정을 지닌 흑인 캐릭터는 찾기 어렵다. 이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감동 코드와 웃음 코드를 찾아서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대사 한마디가 쿵, 마음을 울린다.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대사로 글을 맺는다. 재판을 통해 입학 허가를 받으려는 메리가 판사에게 던진 말이다.
판사님이 오늘 맡은 사건 중 100년 후 이 나라를 바꿀 결정이 있습니다. 판사님이 결정하면 저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될 수 있습니다. 판사님의 이름 역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최초로 남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 >정보
원문 :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