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1일 유니 안녕 유니가 세상을 스스로 등진 뒤 블로그에 끄적였던 포스팅입니다. 그녀의 8주기.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억의 우물이란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말라 갈라진 것 같은데 느닷없는 번개처럼 뭔가 계기가 있으면 굵직굵직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싸래기들까지 샘솟듯 솟아나 두레박을 가득 채우니까 말입니다. 2004년 부활했던 "특명 아빠의 도전"은 심심하면 연예인을 `특명 아빠`로 불러 세웠습니다. 그 특명 아빠들은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불우이웃들을 위해 … [Read more...] about 유니의 추억
역사
반론: 그것은 이승만의 업적이 아니다
정초부터 왜 갑자기 ‘이승만’인가 했다.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를 주도하고 있는 인사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발탁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승만을 두 팔 벌려 찬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쿠테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군사혁명사>를 편찬하면서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지탄했기 때문이다. 비록 4.19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미완성의 혁명이었기에 군부 자신들이 들고 일어나 혁명을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정부의 무능과 … [Read more...] about 반론: 그것은 이승만의 업적이 아니다
이승만과 민주주의: 해방 당시 한국의 시민사회
앞서 쓴 이승만에 관한 글은 나름 친절하게 쓰기는 했습니다만 짜임새가 있는 글은 아닙니다. 예상했던, 아니 그 이상의 파장이 밀려와 꽤나 재밌게 사태의 추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댓글이 생각보다 많이 달리기도 했고 격한 감정을 뿜어내시던 분들도 많이 계셔서 제가 직접 글을 남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 굳이 댓글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지적은 논의를 확장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간략하게나마 그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글쓴이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 [Read more...] about 이승만과 민주주의: 해방 당시 한국의 시민사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이승만의 업적
저희집에 놀러와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책장 한가득 박정희 천지입니다. 제가 모르는 박정희 관련 책이나 논문은 거의 무의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할정도로..? 그에 비하면 이승만에 관한 자료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박정희-조선-식민지(위안부 등등)-이승만 순으로 관심이 가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외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승만에 관한 글을 하나 쓴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싶다가 그냥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이승만 정권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 [Read more...] about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이승만의 업적
총, 결투, 그리고 서양인들의 미소의 상관 관계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프랑스) 가장 치열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역전의 용사가 '아침식사 전의 잔디'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적절한 운명의 장난처럼 보였다. "왜 그걸 다들 '아침식사 전의 잔디'라고 부르는 거지 ?" 샤프는 프레데릭슨에게 물었는데, 프레데릭슨은 사실 샤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며, 그저 초조해서 물어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샤프가 말하는 '아침식사 전의 … [Read more...] about 총, 결투, 그리고 서양인들의 미소의 상관 관계
일제 항거에 모든 걸 바친 진정한 기독교인, 전덕기 목사
을사조약에 도끼를 들고 상소한 기독교인 전덕기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어원이 '(을사늑약이 맺어진 해인) 을사년스럽다'라는 얘기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또 어떤 학설이 나와서 그 이전에도 쓰인 기록이 있다고 해서 뒤집을지는 몰라도, 1905년 11월 18일은 실로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기기에 족할 만큼 섬뜩한 한기가 돌던 초겨울이었다. 18일 아침이 밝아오기 전 새벽 2시. 일본의 압력과 대신들의 강청에 견디다 못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문서에 옥새를 내어 준 것이다. … [Read more...] about 일제 항거에 모든 걸 바친 진정한 기독교인, 전덕기 목사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의 삶
을사늑약에 조국을 떠나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이 늑약이 알려지자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비롯하여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로 대한은 망하였다. 이 일을 어찌하는가." 분노한 군중들이 종로를 메웠고 종로 상인들은 일제히 철시했다. 어떤 이들은 도끼를 떠메고 대한문 앞에 엎드려 통곡했고 을사오적을 죽이라 호소하기도 했다. 그때 실로 귀티가 나는 서른 여덟의 남자가 이상재 이동녕 등과 함께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 [Read more...] about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의 삶
영란은행과 프랑스 은행의 탄생
지난편에서는 나폴레옹이 자코뱅과 왕당파 사이에서 암살 음모에 시달리면서도 정적인 모로를 제거하고 국내 정치 권력 기반을 휘어 잡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때부터 그 다음의 주요 전투인 아우스테를리츠 또는 트라팔가 해전 사이에도 주요 이벤트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나폴레옹 법전의 제정, 영국과의 아미엥 평화조약 체결, 아이티 노예 반란 진압, 그리고 황제 즉위 등등 많지요. 이번주에는 그런 것들 외에, 별로 티는 많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몹시 중요한 사건 하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 [Read more...] about 영란은행과 프랑스 은행의 탄생
난징 대학살과 양심을 지킨 사람들
수도 난징으로 향하는 일본군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대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보지만 어떤 이는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으로 잡기도 한다. 즉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확전된 것이 태평양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군은 중국군을 허섭쓰레기로 봤고 “3개월 내에 중국 전역을 석권하겠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중국군은 예상 외의 강인한 면모를 보였다. 일본군은 상하이를 점령하는 데만도 석 달을 넘게 잡아먹는다. 장개석의 정예군이 투입됐고 백척간두에 선 중국군도 기대 이상의 전력을 발휘했던 … [Read more...] about 난징 대학살과 양심을 지킨 사람들
몽테뉴가 묻는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찾는 건 신문도 TV도 아닌 휴대폰이다. 통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언제 시작된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이즈음 휴대폰 화면에 눈과 코를 박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서둘러 열어보는 건 ‘페이스북’이다. 간밤에 누가 무슨 글을 올렸는지, 어젯밤에 올렸던 글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지.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좋아요’는 몇 개나 붙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나를 보는 것인지 남을 보는 것인지 모르겠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남에게 비친 나를 보려는 것인지 … [Read more...] about 몽테뉴가 묻는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