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겪은 일이다. 우연한 기회로 베를린의 한 성당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청년 담당 보좌신부를 만났다.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한 그는 젊은 신부이면서 신학대학 박사과정생이었고 카톨릭 공동체 윤리와 인정 개념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논문이 거의 다 완성되었을 때, 그가 주로 참고했던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갑작스레 『사회주의의 이념(Die Idee des Sozialismus)』이라는 책(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사회주의 재발명』)을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탈고를 미뤄야 … [Read more...] about 자유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선언하다
인문
1월, 이육사 베이징 지하감옥에서 지다
1944년 1월 15일 새벽 5시,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한 조선 청년이 눈을 감았다. 그는 겨울을 봄을 예비하는 ‘강철로 된 무지개’로 여겼던 사람, ‘청포도’와 ‘광야’를 노래했던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였다. 향년 40세. 1943년 4월에 베이징으로 온 육사는 충칭과 옌안을 오가면서 국내에 무기를 반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7월에 모친과 맏형의 소상(小祥)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늦가을에 일경에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새해를 맞은 지 16일 … [Read more...] about 1월, 이육사 베이징 지하감옥에서 지다
“곡성”에는 왜 사진이 등장할까
※ 이 글에는 영화 <곡성>, <어나더 어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곡성’에서 낚시꾼인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닌다. 그의 숲속 거처 비밀의 방에는 죽은 자들의 죽기 전과 후의 모습을 찍은 인물사진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그는 새 도감을 갖고 있고 영화에는 곡성의 멋진 풍경도 자주 등장하지만 그는 새나 풍경을 찍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인물사진만 찍는다. 그와 기묘하게 연결돼 있는 무당 일광(황정민) 역시 죽음을 … [Read more...] about “곡성”에는 왜 사진이 등장할까
어차피 모든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 인터뷰
철노자(이하 철):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민섭(이하 김): 지방시 쓰고 작년 겨울에 대학에서 나왔다. 지금은 거리의 언어를 기록하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철: 필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데뷔했는데. 김: 대학에 있는 동안에는 나를 드러낼 수가 없으니까 집주소를 이름으로 썼다. 철: 무슨 얼굴 없는 가수 김범수도 아니고… 김: 내 존재의의는 분명 대학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을 찾았다. 1. 유령의 … [Read more...] about 어차피 모든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 인터뷰
프로이트,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몰랐던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이야기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공유하던 관념, 사고방식, 믿음이나 이론적 전제 같은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 혹은 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태어난 시대와 환경의 특성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있다. 모든 사건은 맥락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맥락을 떼어놓고 사건만 이해하려다 보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디테일이나 오해마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 이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도 … [Read more...] about 프로이트,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몰랐던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이야기
국가란 무엇인가? : 팽목항에서
현 위치 :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시기와 형태만 다를 뿐 국가가 시민들에게 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현 위치는, 근대적 의미의 시민사회가 아니라 봉건사회의 어느 지점에 있다고 하겠다. 21세기에 봉건적 상태에 있는 국가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제 국가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는 앞에서 인간 존엄의 근거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아울러 인간 존엄이 유지되려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도 … [Read more...] about 국가란 무엇인가? : 팽목항에서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 ② SOP, 장벽에 부딪치다
제가 써 본 수많은 문서 중, SOP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짧은 문서였습니다. 아마 SOP를 지금 시작하시는 분들 역시도 같은 느낌이 드실 겁니다. 어떻게 500단어 안에 몇십 년 인생을 다 요약해서 적고, 내 연구관심사는 무엇인지도 적고, 내가 이 학교에 걸맞은 인재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SOP가 특히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SOP는 과거에 겪은 일을 엮어서 제시하는 동시에, 과거의 일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력을 객관적으로 … [Read more...] about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 ② SOP, 장벽에 부딪치다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 ①나의 스토리, SOP
1. Statement of Purpose (SOP) 개요 유학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들어 보셨듯, SOP는 유학 학교 지원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객관화된 점수를 위주로 입학심사를 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살아온 배경 및 가능성을 보고 심사를 하는 터라 SOP에 자신이 해온 경험을 녹여내고 잠재력을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대학원을 지원할 때 쓰는 '학업계획서'와는 조금 성질이 다릅니다. 한국의 학업계획서는 일단 SOP보다 중요성이 낮으며, 자기소개보다는 앞으로의 학업에 … [Read more...] about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 ①나의 스토리, SOP
강신주의 ‘인문학’
강신주는 언제나 인문학의 대중화를 소리 높여 말하지만 그는 오히려 인문학 자체와 인문학의 대중화에 해를 끼친다. 최근 강신주의 인터뷰는 그의 사고방식과 노력이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인문학’에 가까운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강신주는 그 자신이 인문학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인문학의 이름으로 ‘인문학의 수준과 단계’를 재단한다. 하지만 지난 수백년의 인문학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견들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여왔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교만한 언설은 내뱉은 적 없다. 또한 … [Read more...] about 강신주의 ‘인문학’
철학이 있는 집②: 집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집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게 멋지고 좋은 삶인가. 우리는 그때 그때의 욕망을 따르면 되는가? 아니면 그저 주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흉내내면서 살 뿐인가? 그도 아니면 전통에 따라서 살 뿐인가? 어떤 위대한 인물의 삶을 흉내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집에 대한 고민들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집을 생각하다가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다가 집을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있다. 일단 그때 그때의 욕망을 … [Read more...] about 철학이 있는 집②: 집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