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써 본 수많은 문서 중, SOP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짧은 문서였습니다. 아마 SOP를 지금 시작하시는 분들 역시도 같은 느낌이 드실 겁니다. 어떻게 500단어 안에 몇십 년 인생을 다 요약해서 적고, 내 연구관심사는 무엇인지도 적고, 내가 이 학교에 걸맞은 인재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SOP가 특히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SOP는 과거에 겪은 일을 엮어서 제시하는 동시에, 과거의 일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력을 객관적으로 짧게 한두 줄로 정리하는 CV (Curriculum Vitae, 학계에서 쓰이는 이력서)와는 달리, CV에 넣은 내용을 넘어서서 지원자 자신의 목소리를 넘어 자신의 능력을 피력해야 합니다.
또한, 보통 짧아도 3년에서 길면 10년 정도 되는 박사과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 만한 능력과 인내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모든 걸 1~3장짜리 문서 안에서 해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덕분에 저는 2013년 10월쯤, 캄캄한 터널을 혼자서 지나오는 기분으로 SOP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들은 항상 바쁜 분들이라 여쭤보기 죄송했고, 유학 간 선배들은 별로 없었고, 난생처음 쓰는 SOP란 문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전 편에 적은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서 어떻게든 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고 가장 원했던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 터널을 어찌 되었건 간에 지나쳐 온 사람으로서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씁니다.
전편에서는 SOP 쓰는 법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순서대로 정리했다면, 여기서는 SOP를 쓰실 때 및 쓰신 후 유의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편은 제 경험 및 제 주변의 경험에 비추어서 설명했지만, 이 글은 SOP에 대해 나온 논문의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지원자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시하고, 제 사견을 약간씩 덧붙여 보려고 합니다.
1. 어떻게 내용을 전개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가장 일반적인 구조를 참조하세요.
성공적인 SOP 중 60~70%는 위와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Bekins, Huckin, & Kijak, 2004)
- 훅(hook) – 시선을 끌기 위한 사적인 이야기. 지원자의 특징이나 경험
- 프로그램(program) – 이 전공과 분야를 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
- 배경(background) – 지금까지 어떤 성취를 해 왔고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서술
- 자기 PR(Self-promotion) – 지원한 프로그램에 자신이 적임자임을 어필
- 앞으로의 계획(Projection) – 어떤 목표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서술
SOP의 논리 전개에 따라 각 요소의 순서를 약간씩 변경하여 제시할 수도 있고, 합칠 수도 있고,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이 전공과 분야를 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거나, 지원한 프로그램에 자신이 적임자임을 어필하면서 이 학과를 졸업한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같은 단락에서 서술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어디까지나 “기본 틀”일 뿐이니 자신의 방법을 택해서 틀을 약간씩 변형해서 작성하면 됩니다.
각 학교마다 SOP에 포함하라고 하는 질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학과는 “어떤 교수와 일하고 싶은지 sop에 적어라” 라고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도 하고, 다른 학과는 “왜 우리 학교 우리 학과를 선택했는지 서술하시오” 정도의 일반적인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위의 틀에 적당히 맞추어 녹여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와 일하고 싶은지 적어라”는 문제가 있다면 5번, “앞으로의 계획”에 맞추어 넣으면 되고, “우리 학교 우리 학과를 선택했는지” 를 쓰라고 한다면 3번과 4번에 거쳐 서술하시면 됩니다.
2. 첫 문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첫 단락이 인상에 남지 않거나 이 분야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입학 심사 위원회 멤버들은 SOP를 옆으로 치워 두거나 훑어보기만 하거나 비판하는 등등 부정적으로 대했다.”
– Barton, Ariail, & Smith, 2004
입학 심사 위원회에 있는 교수들은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원자는 많습니다. 그래서 SOP 하나하나를 모두 신경 써서 읽지 못합니다. 첫 단락을 읽고 난 후에 더 읽어볼지, 아니면 치워 둘지 결정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스팸메일과도 비슷합니다. 제목이나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면 바로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린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단에는 보통 위원회 멤버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이야기를 넣습니다. 자극적이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면모와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잘 이어주는 일화를 선택해서 풀어나가면 됩니다. 예시로 응용언어학 및 의학에서 쓰인 SOP의 첫 단락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예 1 (응용언어학) The moment came on Friday, June 23rd, 2006, at precisely 5:25 pm. I was attending the conference …
마지막 단락 As the conference went on, I set a challenge for myself: I would ask a question of one of the speakers about their presentation. When the final speaker stepped up to the podium, I knew this was my last chance… And so the moment arrived, that Friday afternoon; I stood up, took a deep breath, and crossed the line from observer to participant in the professional world of applied linguistics.
– Swales, 2009
위의 예 1은 학회에 참석했던 개인적인 일화로 SOP를 시작한 다음, 마지막 문단을 첫 문단과 엮어서 마무리했습니다. 첫 문단에서 지원자 자신은 학회에서 무언가를 처음 경험하고 있는 미성숙한 개인이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연구자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이 대칭 구조를 이루므로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쉽게 읽히고 머릿속에도 남습니다.
이 구조를 좀 변형해 보면, 교육학 계열 전공자일 경우 “학교 수업에서 이러이러한 아이를 만났다(첫 문단) → 이러이러한 아이에게 정규 교육 안에서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이러한 연구를 하겠다(마지막 문단)”로 응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2 (의학) I remember hearing the loud snap resonating across the field and having no doubt it was broken. Looking down at my forearm during the high school football game, the distal end dangling as both the left radius and ulna had been broken at midshaft. I felt certain I had experienced my last football event…
– Swales, 2009
예 2의 경우에는 고등학생 시절 풋볼 선수로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당한 내용을 고등학생의 시선과 의학 예비전공자의 시선으로 동시에 풀어냅니다. 부상을 당한 건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이나,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해 쓰는 단어들은 의학 예비전공자의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사적인 모습과 전문적인 모습을 조화시켜줄 수 있을 만한 개인적인 경험을 끄집어내서, 첫 문단에서 풀어가면 됩니다.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나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친구가 자살했다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등, 너무 자극적인 소재를 쓰면 오히려 거부감을 줍니다. 첫 문단 다음에 나올 자신의 배경 및 연구주제 등등을 잘 엮어줄 수 있는 일화면 충분합니다.
3. 첫 문단이 가장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첫 문장도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문단을 두괄식으로 쓰세요. 심사하는 사람들은 몇백 장이 넘는 sop를 보기 때문에 그 문단이 뭘 말하는지 하나하나 뜯어보고 생각해 볼 여력이 없습니다. 첫 문장이 눈을 끌지 않는다면 아예 그 문단을 거들떠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첫 문장부터 이 단락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말해주어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두괄식으로 직접 쓰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영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전편에서도 말씀드렸듯 먼저 초안을 쓰고, 각 단락의 문장을 모두 훑어보고, 가장 중요한 문장을 제일 첫 문장으로 올리고, 나머지 부분을 다시 쓰세요. 심사자가 SOP를 봤을 때, 이 SOP를 계속 손에 들고 읽어야 할 이유를 첫 문단과 첫 문장에서 바로 말해줘야 합니다.
4. CV에 했던 말을 그대로 하지 마세요.
전 편에서도 했던 이야기지만, 경험을 스토리로 엮어내야 합니다. 가사를 잘 써서 노벨상을 받는 정도의 경력이 아닌 이상에야 지원자들 간의 경력사항은 크게 다르지 않고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어떤어떤 회사의 대리였다” 라고 적는 것보다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발전했고, 어떤 것을 배웠으며, 어떤 성과를 이뤘고, 이 모든 경험이 지금 이 전공에 지원하는 것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서술하세요.
아래의 예시는 비즈니스 전공에 지원한 사람의 SOP입니다. 단순히 “어떤 회사의 매니저였다” 라고 말한 뒤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자신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 이후에, 다른 경험과 회사에서 겪었던 경험을 종합해서, 왜 이 학교의 이 비즈니스 전공에 지원하게 되었는지도 서술했습니다.
예시 One of the projects of which I am most proud was the successful management of my department, and of the company, through multiple software upgrades. During this process I handled the planning and implementation of the upgrades. I also ensured that staff company-wide were notified of and prepared for the conversions … At the end of the process, the results of the department’s 2nd annual customer satisfaction survey that I had created showed significant improvement compared to the previous year on almost all variables of internal customer satisfaction.
– Samraj & Monk, 2008
5. “이 학교에서 좋은 연구를 하며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서 XX 분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같은 문장은 과감히 없애세요.
보통 맨 마지막 부분, 졸업한 후 앞으로의 계획을 쓸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이런 문장 자체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무엇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말해주는 바가 없으므로, 쓰나마나한 문장입니다.
다른 지원자들도 모두 이 정도 생각은 하고 있을 거고, 심사자 입장에서도 “얘들은 다들 더 배우고 싶으니까 지원하는 거야”라는 정도의 상식적인 생각은 하고 있을 겁니다.
당장 한두 달 앞의 일도 예상하지 못하는데 졸업한 후에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박사 3년 차인데도 “졸업하고 뭐할 거니?” 라는 질문을 받으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그렇지만 SOP에 앞으로의 계획을 쓴다고 해도 그대로 될 것도 아니니, 지금은 희망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래는 Purdue OWL에서 소개하는 예시입니다.
예시 In terms of a career, I see myself teaching literature, writing criticism, and going into editing or publishing poetry. Doctoral studies would be valuable to me in several ways. First, your teaching assistant ship program would provide me with the practical teaching experience I am eager to acquire. Further, earning a Ph.D. in English and American literature would advance my other two career goals by adding to my skills, both critical and creative, in working with language. Ultimately, however, I see the Ph.D. as an end in itself, as well as a professional stepping stone; I enjoy studying literature for its own sake and would like to continue my studies on the level demanded by the Ph.D. program.
– Purdue OWL
6. 전공 용어와 개념을 세밀히 알아보신 후에 연구 분야에 대해 작성하세요.
“이 학교에 가고는 싶은데, 여기에 있는 교수들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으니, 구글 스칼라로 논문 몇 개 훑어보고, 이런 연구를 하겠다고 써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에 종종 생기는 실수입니다. SOP를 읽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교수들이니, 당연히 전공 개념과 용어와 이론을 꿰뚫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SOP 첨삭을 하는데, 이런 문장이 보였습니다.
“ … the theory of World Englishes, translingualism, bi- or multilingualism to EFL classrooms.”
공교롭게도 제가 전공하는 분야가 이쪽이라 이 문장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지원자분이 말씀하신 World Englishes, translingualism 등등은 엄밀히 말하면 이론이 아니므로 “the theory of…”로 적으면 안 됩니다. 단/복수 구분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소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지원자가 어느 정도 이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이런 부분은 원어민 교정을 받는다 해도 수정할 수 없으니, 전공에 대해 잘 아는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을 찾아가서 꼭 교정을 보길 권합니다.
참고 자료
- Bekins, L. K., Huckin, T. N., & Kijak, L. (2004). The personal statement in medical school applications: Rhetorical structure in a diverse unstable context. Issues in Writing, 15(1), 56–75.
- Samraj, B., & Monk, L. (2008). The statement of purpose in graduate program applications: Genre structure and disciplinary variation. English for Specific Purposes, 27(2), 193–211.
- Swales, J. M. (2009). Worlds of Genres — Metaphors of Genre. Genre in a Changing World, 3–16.
- Purdue OWL, Examples of successful statements, https://owl.english.purdue.edu/owl/resource/642/02/
참고하면 좋을 책, 사이트:
- Purdue OWL, writing the personal statement SOP/PS 쓰는 방법을 개괄적으로 알려주고, 흔히 하는 실수 및 입학 심사 위원회의 조언을 정리해 둔 사이트입니다.
- Asher, D. (2012). Graduate admissions essays – 각 분야의 SOP 예제들이 많이 실려 있으므로 참고하기 좋습니다. SOP쓰는 방법을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어떻게 심사되는지도 대강 알려줍니다.
- Graduate school application advice SOP 뿐만 아니라 대학원 지원과정 전반에 대해 꼼꼼하게 알려주는 사이트입니다. 저는 downloads 탭의 ‘application organizer’를 특히 유용하게 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