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tatement of Purpose (SOP) 개요
유학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들어 보셨듯, SOP는 유학 학교 지원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객관화된 점수를 위주로 입학심사를 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살아온 배경 및 가능성을 보고 심사를 하는 터라 SOP에 자신이 해온 경험을 녹여내고 잠재력을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대학원을 지원할 때 쓰는 ‘학업계획서’와는 조금 성질이 다릅니다. 한국의 학업계획서는 일단 SOP보다 중요성이 낮으며, 자기소개보다는 앞으로의 학업에 대해 씁니다. 반면에 SOP에는 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간단한 개인사와 함께 서술한 후 마지막에는 어떠한 연구를 할 계획이다, 라는 내용으로 끝나야 합니다.
SOP는 그 지원자의 writing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공계 분야와는 달리 글로 먹고사는 인문사회계에서는 writing이 목숨이야 밥줄이요 포도청입니다.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소한 오류가 없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신경 써야 할 건 글의 흐름과 논리입니다.
종종 너무 많은 내용을 짧은 글에 담느라 글이 터져 나가는 걸 봅니다. 글이 이 내용에서 저 내용으로 널뛰기를 반복하는 것도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보면 그런 면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서류는 몰라도 꼭 SOP만은 영어권 문화에서 나고 자랐고 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들 및 대학원 동료, 교수님 등등 많은 사람과 돌려보기를 권합니다.
2. SOP 작성
2-1.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 정리
연습장을 하나 폅니다. 줄이 없으면 더 좋습니다. 세 장을 준비하세요. 그중 하나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일들을 전부 쭉 적어 보세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무슨 국제 캠프를 간 사소한 일까지 다 써 뒀더라고요. 지금 단계에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저는 너무 사소한 걸 다 적는 바람에 연습장으로는 부족했고 큰 종이를 구해다 썼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게 좋아서요.
그리고 다른 면에는 박사과정을 왜 해야 하는지 혹은 왜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쭉 적어 보세요.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 정말 솔직한 얘기를 쓰시면 됩니다.
마지막 종이에는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풀어내 보세요. 아마 다른 두 항목보다는 이게 제일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당시에는 박사과정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의지는 있지만, 막상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냥 좋은 논문 많이 쓰고 좋은 직업 얻어서 들어오는 거지 뭐, 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앉아서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 공부를 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사회에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등등을 조용히 질문하다 보면, 막연했던 계획이 약간이나마 구체화 될 겁니다.
2-2. ‘hook’ 혹은 ‘story’가 될 만한 것 찾기
SOP는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논문처럼 딱딱하게 쓰는 글은 아닙니다. SOP를 심사하는 사람들은 수백 개의 SOP를 읽기 때문에, 무언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경험과 논문 경력이 뛰어나도 그걸 하나로 엮지 않고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뿌려 놓는다면 심사자 입장에서는 기억이 안 날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2, 3, 5, 7, 13, 17, 19. 지금 숫자 6개의 배열을 보셨죠? 다른 숫자의 배열을 몇백 개쯤 보고 나서도 다시 이 숫자들을 기억하실 수 있나요? 하지만 이 모든 숫자들이 ‘소수’라는 공통점을 지닌 걸 알면 기억하기가 훨씬 쉽죠. 같은 원리입니다. 2-1에서 쓰셨던 경력, 결심,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하나로 묶어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특이한 가정배경에서 자랐고, SOP의 첫 문장을 중학교 때 그 가정배경 때문에 선생님께 들어야 했던 말로 시작했습니다. 첫 문단에는 당시 15살이었던 제가 느꼈던 심정을 담담하게 적었죠.
이다음 단락부터는 학부 시절 대학원 수업을 들었을 때 우리 분야에서도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석사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석사 동안에는 저와 같은 가정배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도와주는 곳에서 일하며 이 아이들에 대한 논문을 써냈던 내용을 쭉쭉 적었고, 마지막 두 문단은 나와 같은 아이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연구로서 기여하고 싶은데 이 학교가 그런 연구를 하기에 최적이기 때문에 여기에 지원했다, 라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모든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고, 약간은 비극적인 이야기라서 좀 더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도록 썼습니다.
요약하자면, 학업적인 면과 앞으로의 연구 분야, 왜 이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SOP의 큰 틀이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토플 라이팅처럼 1. 내 성장배경은 이러했고, 2. 나는 이런 연구를 했으며, 3. 앞으로는 이걸 연구하고 싶고, 4. 이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 학교가 최고다. 라고 나열하는 건 임팩트가 크지 않으니, 이걸 엮어 줄 일화가 필요합니다.
꼭 저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필요는 없으며, 학회장에서 했던 경험이나 일터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 등등을 적으신 분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 요소들을 잘 엮어줄 수 있는지입니다.
2-1에서 썼던 종이들을 다시 들고 와서 SOP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들을 골라 보세요. 그리고 첫 번째 종이에서 그 내용들을 다 엮어줄 것을 하나 찾아보세요. 너무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고르면 억지 쓰는 것 같으니 적당히 스토리로 엮을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제가 SOP를 작성할 때는 경험이 많으신 다른 대학원 선생님 한 분께서 저에게 계속 질문을 하시면서 제가 SOP에 썼던 이야기를 끌어내셨어요. 비슷하게 저도 이메일로 상담해오시는 분께 제가 질문을 던져 이야기를 끌어낸 적도 있고요. 자신을 잘 알거나 자기소개서 같은 글을 많이 써 보신 분께 부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2-3. 아웃라인 작성
2-2에서 적당한 이야기를 고르고 SOP에 들어가야 할 내용도 선택하셨다면, 이제 대강의 아웃라인을 짜 보는 단계입니다. 글의 순서는 전적으로 쓰시는 분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만, 저에게 가장 익숙한 순서는 이렇습니다.
- Hook (≒motivation), 시선을 끌기 위한 개인적인 일화
- Academic/professional background, 학업 및 직장 배경
- Reasons for applying(why this school), 이 학교 및 학과를 선택한 이유
- future plans, 앞으로의 계획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논리를 전개할 지 정하시고, 그 구조에 맞게 들어갈 내용을 정해 놓으면 됩니다.
2-4. 글쓰기
사실 그 방대한 영어 글쓰기 내용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으니 몇 가지 중요한 내용만 써 보려고 합니다.
- 가장 먼저, 두괄식으로 작성하세요. 글쓰기를 하다 보면 쓰면서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이 단락 맨 끝에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렇습니다. 그래서 단락을 다 쓰고 나서는 항상 확인해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첫 문장으로 올려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심사하는 사람들은 바쁜 사람이고 주의를 깊게 기울일 여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몫입니다.
- 논문 글쓰기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잘 드러나게 작성하세요. 연구 결과를 보면 accomplished self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자신)보다는 personal self (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더 강조한 SOP가 더 성공적이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1인칭 대명사인 I를 사용하고, 내가 어떤 느낌이었으며 어떤 걸 겪었는지를 풀어나가세요.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과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을 보고 느꼈으며 이게 이렇게 이어졌다, 라는 어투로 담담하게 쓰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부사보다는 형용사/동사가 좋고, 수동태보다는 능동태가 좋으며, 3인칭보다는 1인칭이 좋습니다.
- Show, don’t tell. 말로 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글쓰기의 기본 원칙 중 하나입니다. ‘나는 진취적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왜 나는 진취적인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세요. 종종 다른 분들의 sop를 보다 보면 나는 이렇고 이렇고 이렇다, 라는 말을 형용사의 나열으로만 완성한 문장이 보입니다. 그런 사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러한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2-5. 돌려보기 및 수정하기
초안 작성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수정입니다. 경험상 최소한 초안을 서너 번은 더 갈아엎어야 그나마 괜찮은 SOP가 나오더라고요.
쓴 글을 묵혀뒀다가 보고, 소리 내서 읽어도 보고, 프린트해서도 보고, 손으로 써 보기도 하세요. 소리 내서 읽으면 문장의 리듬이 더 잘 와 닿기 때문에 수정해야 할 문장 구조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린트해서 보면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오류가 눈에 보입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내용을 옮겨 적다 보면 컴퓨터로 자판을 칠 때와는 또 다른 오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보는 단계가 끝났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글을 돌려보세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함께 대학원을 다녔던 선생님들,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 석사 때 일했던 곳에 계셨던 분들 등등 전부에게 모두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받은 피드백은 엄청났고 그걸 다 반영해 가며 초안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유학원을 운영하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께서는 저를 앉혀 놓고 하나하나 질문하시며 스토리를 끌어내 주셨고, 논문 어투였던 제 SOP를 저 자신이 드러나도록 고쳐 주셨습니다.
그 피드백을 모두 반영한 글을 만들고, 추천서를 써 주실 교수님들께 찾아가서 SOP 피드백을 받고 그걸 또 수정해서, 15번쯤의 수정을 거친 후에 SOP를 창조해 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 정도가 소요되었죠. 데드라인이 가까워져 오고 있어서 최종으로는 에디팅 회사에 맡겨서 문법 교정을 받은 후 제출했습니다.
저는 영어와 친숙하며 경험이 많은 한국인 1명,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 1명 총합 2명에게는 꼭 교정을 받으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들이 잡아내지 못하는 포인트가 분명히 있고, 한국인분들이 그걸 잘 잡아줄 수 있어요. 그리고 한국인 눈에는 자연스럽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닌 표현들 및 내용들이 있으니 그 내용은 원어민들이 잡아줄 수 있습니다.
3. SOP 작성 시 유의점 & 흔히 하는 실수
3-1. 학교마다 요구하는 사항을 반드시 정확히 알아보세요.
SOP는 긴 글이 아닙니다. 제가 지원했을 당시에는 500단어 (A4용지 1장, 줄 간격 200%로 설정하면 2장)를 요구하는 곳이 가장 많았고, 아무리 길다 해도 1,000단어에서 그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장황하게 다 써 놨는데 글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당히 난감해집니다.
그리고 학교마다 요구하는 질문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왜 이 학교에 지원하냐, 같은 일반적인 질문이지만, 종종 아주 디테일한 질문을 물어보기 때문에 그 학교에만 낼 수 있는 SOP를 써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이 학교의 어떤 교수님과 어떤 연구를 하고 싶냐는 그런 질문. 미리미리 학교 홈페이지 혹은 학교 과 행정실과 메일을 주고받아서 엑셀 등에 정리해 두면 편합니다.
3-2. CV에 나오는 내용을 언급하지 마세요.
SOP는 CV의 긴 버전이 아닙니다. CV에 나온 내용을 한두 가지 언급해서 살을 붙이는 건 좋지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에서 근무했으며, 그 다음에는 이직해서 어디에서 어디까지 … 이런 내용을 반복하다 보면 글의 호흠이 길어지며 지루해집니다. 차라리 한두 가지 임팩트 있는 것을 언급한 이후 불가피하면 (see CV) 등으로 노트를 남기는 게 좋습니다.
3-3. “타이틀” 보다는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무슨 회사의 대리, 무슨 무슨 학교의 무슨 무슨 과 학생 등등 ‘타이틀’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SOP에 내가 무슨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어느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몇 년을 근무했고… 같은 내용들은 들으면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가 버리게 됩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이러이러한 계기로 A에 대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는 어떻게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마침내 수석으로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이러이러한 사업을 이끌었는데,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러이러하게 극복했으며 마침내 이러이러한 결과를 이루어 낸 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었다”는 다릅니다. 타이틀을 스토리로 엮어내세요.
3-4. ‘나열’이 아닙니다. ‘엮음’입니다.
너무 많은 걸 넣으려 하다 보니 가끔 글이 터져나가는 것과 글의 내용이 A에서 C로 B에서 D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어드미션이 간절하다 보니 내용 하나라도 더 넣고 싶은 걸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Simple is the best, 단순한 게 최고입니다. 내용이 많아서 터져나가는 것보다는, 뺄 게 더 이상 없는 상태가 더 깔끔합니다. 핵심 내용만 핵심 스토리로 엮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