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라서 데모 경험이 꽤 있는 편이다. 데모를 조직한다는 것, 탄압이 심하던 시절에 시위 참여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체로 무지한 편이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탄압이 극심하던 식민지 시대에 어떻게 전국적으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비폭력 만세운동’이 가능했는지 강력한 의문이 생겼다. 3·1절 연휴 기간 〈항거: 유관순 이야기〉라는 영화도 봤다. 유관순의 싸움은 ‘죽음을 … [Read more...] about ‘만세열전’: 3·1만세 운동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영화 〈건축학개론〉을 아주 싫어한다. 처음부터 싫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이해하고, 나 역시 영화가 내뿜는 감수성에는 공감하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공기, 그 시절의 음악, 그 시절의 감성.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다만 영화가 서연(수지와 한가인 분)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남성이 그 대목에서 분노는커녕 오히려 감명을 받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썸 타던 여자, 자기가 … [Read more...] about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내 개만을 위한 사랑, 다른 동물에게도 확장하기로 했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한 단체에 한 달에 3만 원씩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그 단체에서 주관하는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에 다녀온 다음의 일이다. 순이와 10년이 넘게 함께 지내면서 그 특별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범위를 넓혀갔고, 유기견 문제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딱 그 정도의 표현이 적확할 듯하다. 한 번쯤은 봉사활동에 참여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갔다 와서 괜히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에게 병균이 옮을 … [Read more...] about 내 개만을 위한 사랑, 다른 동물에게도 확장하기로 했다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여자 공부하는 여자’
나와 남편은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 중인데, 사실 나는 내심 두렵다. 결혼 후 4년간 우리의 가사 분배는 최적에 가까워졌다. 청결에 대한 기준이 달라 여전히 종종 부딪히지만 내가 출퇴근을 하고 프리랜서인 남편이 집에 있는 우리 집은 평등한 분배가 쉬운 편이었다. 특히 내가 요리로부터 물러나며 결정적으로 평화가 왔다. 이렇게 말하면 치사할까. 그 후로 나는 청소를 조금 더 한다고 쉽게 억울해하지 않는다. 성별에 따라 부과되는 역할을 조금씩 배반하면서 우리는 나름의 균형을 찾았다. 그러나 출산은 … [Read more...] about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여자 공부하는 여자’
‘82년생 김지영’: 어쩌면 우리의 삶은 문학보다 영화를 더 닮아 있기에
〈82년생 김지영〉 보고 왔다. 지난해엔 이 소설 흉도 좀 보고 그랬는데, 영화를 보고 와선 조남주 작가와 출판사에 새삼 고마운 감정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정도로 집약적인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던 건 그 자체로 굉장한 능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던 게 분명하니까. 그러니… 우리 관객들은 작품의 중간중간 노골적으로 깔려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결말부에서 화사한 클로즈업으로 김지영의 손에 들려있던 뜬금 《릿터》마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 [Read more...] about ‘82년생 김지영’: 어쩌면 우리의 삶은 문학보다 영화를 더 닮아 있기에
왜 ‘82년생 김지영’에게만 보편의 서사를 요구하는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이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에 참여했다가 다른 엄마들의 출신대학과 전공을 알게 되는 장면. 김지영은 그 자리에 있는 엄마들이 누구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고, 누구는 연기를 전공했고, 누구는 공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한때는 모두 꿈이 있고, 직업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결국 여성이라면 어떤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든, 얼마큼 열심히 공부했든, 대부분 … [Read more...] about 왜 ‘82년생 김지영’에게만 보편의 서사를 요구하는가
평범한 여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일어난 변화들 ‘여자 공부하는 여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 씨의 미래는 표면적으로는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사정도 나쁘지 않고, 육아에도 비교적 충실한 남편이 있고, 경력 단절이 일어났지만 재취업할 일자리도 있다. 그렇다면 김지영 씨의 인생은 다시 날개를 달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여성들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전히 주 양육자를 여성으로 가정하는 현실에서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경력단절이 된 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남자 동료들보다 훨씬 더 많이 … [Read more...] about 평범한 여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일어난 변화들 ‘여자 공부하는 여자’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보면 승혜 님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정말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요?”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본 적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들으면서 조금 놀랐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다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아픈 데 없고, 사지 멀쩡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편입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그것도 아들딸 골고루 있어서 아들만 있으면 '딸을 낳아야지' 딸만 … [Read more...] about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10년을 ‘이대 나온 여자’ 소리 안 들으려고 발버둥 쳤다
낙인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2006년에 영화 〈타짜〉가 개봉했다. 그때도 재미있었고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비롯한 일련의 여성들에게 굉장한 빅엿을 먹인 영화이기도 하다. 〈타짜〉로 인해 거의 10년간을 똑같은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대학생일 때,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졸업식에서,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소개팅에서,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취직했더니,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이대 사태 포탈 … [Read more...] about 10년을 ‘이대 나온 여자’ 소리 안 들으려고 발버둥 쳤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글로벌 경기 변동과 한국 조선업의 흥망성쇠
1. 양승훈 교수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드디어 봤다. 320쪽,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감 분량은 250쪽 정도에 가깝다. 판형이 작고 주간지-월간지처럼 르포형 서술이기에 쉽게 읽힌다. 내용을 볼 때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업에 관한 문화 사회학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 생각인지 편집자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공업 가족’ 및 ‘산업도시 거제’를 부각한 출판 전략은 매우 적절했다. 양승훈 교수는 거제 대우조선에서 5년간 근무했고, 학부는 정치학, 대학원은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책 … [Read more...] about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글로벌 경기 변동과 한국 조선업의 흥망성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