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그 옆구리에 최대한 빈틈없이 바싹 붙어 꼼틀거리던 순간이다. 매일 밤 딸기우유 하나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가면 엄마는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줬다. 그렇게 (이를 안 닦고) 바로 잠든 탓으로 충치 치료를 하느라 꽤나 고생을 해야 했지만... 하여간 나는 그 매일의 이야기 속에서 꼬물꼬물 자랐다. 스물몇 해가 훌쩍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외연의 확장은 거의 책에 기댔다. 예전만큼 책에 파묻혀 있지는 못하고, 또 더 이상 책에서 … [Read more...] about 집콕의 시대, 나만의 독서 리듬을 찾아서
부담스러운 새해 목표 대신, ‘딱 한 달만’ 지키는 목표를 세워보자
새해가 되면 깨끗한 다이어리를 조심스럽게 펴놓고 이른바 '올해의 계획', '새해 목표'를 세우는 건 나에게도 꽤 오래된 리추얼이다. 계획과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새 다이어리에 쓰는 1년 치 계획만큼 설레고 긴장되는 것도 없지. 스무 살 언저리 이후로는 매년 빼먹지 않고 올해의 목표를 적어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단하고 거창한 계획을 가졌었다는 건 아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는 들어가는데, 어째 세우는 계획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새해에는 뭔가 작년과는 … [Read more...] about 부담스러운 새해 목표 대신, ‘딱 한 달만’ 지키는 목표를 세워보자
답답한 숨이 트이는 여행의 감각
여행을 해왔다. 꾸준히, 주기적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턴 꽤 빈번하게 나다녔다. 취미가 여행이라고 적는 건 너무 뻔하지만 정말로 취미라고 부를 만한 건 여행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금방 다시 그리워지고 마는,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면 어딘가 답답하고 좀이 쑤시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지루한 매일을 버티게 하는 취미는 그것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일상을 환기하고 다시 훅 에너지를 불어넣는 유일무이한 방법. 일본에서 제주로, 강릉으로, 다시 제주로, 가끔은 좀 더 … [Read more...] about 답답한 숨이 트이는 여행의 감각
삼시 세끼 요리는 취미가 아니다
단순한 라면 끓이기를 넘어 처음으로 요리다운 요리를 하게 된 건 스물두 살, 교환학생으로 영국 버밍엄에 있을 때였다. 언어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미리 한참 걱정해두었지만 삼시 세끼 해 먹는 문제가 그렇게 커다랄 줄은 몰랐다. 햇반 몇 개와 라면 몇 개를 챙겨가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비상용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스스로의 식사를 온전히 책임져 본 일이 없으니,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서 그게 얼마나 커다란 문제로 다가올지는 아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다. 물론 학교에 카페테리아 두어 군데와 … [Read more...] about 삼시 세끼 요리는 취미가 아니다
매일 밤 손으로 일기를 쓰는 일에 대하여
스무 살 적부터 거의 매년에 해당하는 일기장을 한 권씩 가지고 있다. 고르고 골라 직접 산 것도 있고, 스타벅스 같은 데서 이벤트로 받은 다이어리도 있고- 종류는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결코 12월의 기록은 없다는 데 있다. 11월이나 10월의 기록도 흔하지는 않다. 1월의 기록은 백 퍼센트 빽빽하게 차있지만 뒤로 갈수록 듬성듬성, 그러다 다음 1월에 새로운 다이어리로 교체될 때까지 비어있는 일기.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1월 1일에서 멀어질수록 힘겨워진다. 많아봐야 스무 줄을 넘기지 … [Read more...] about 매일 밤 손으로 일기를 쓰는 일에 대하여
쓸데없이 귀여운 것들 때문에 파산할 거야, 나는
자타공인 쇼핑에 소질이 있다. 돈 쓰는 일이야 누구나 즐기는 일이니 소질 운운하기는 좀 머쓱하지만서도, 하여간 그렇다. 좋아하다 보면 꾸준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러니 조금 가볍게 말해보자면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기뻐도 쇼핑하고 슬퍼도 쇼핑하는,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가 사랑하는 우수 고객이자 소비자, 그게 바로 나다. 이 기질이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쇼핑을 좋아했기에 더더욱. 유전이라고 하기엔 그 뿌리가 확실치 않고 … [Read more...] about 쓸데없이 귀여운 것들 때문에 파산할 거야, 나는
회사는 역시 일보다 사람, 일복보단 인복
'일복 터지는' 그 사람들 난 진짜 일복이 차고 넘치나 봐, 사주를 한 번 보든지 해야겠어. 옆자리의 선배가 쓰러지듯 책상에 엎드리며 한탄을 했다. 유난히 팀에 일이 많은 요즘이라 다들 비슷비슷한 심정이기는 했다. 일복이 많은 사람이 정말 따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걸까. 물론 언제나 세상에서 내 일이 제일 많고 힘들게 느껴지는 게 사람 마음이겠으나, 유난히 일거리가 눈앞으로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왜 주변에서 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일없던 팀으로 옮겨가면 … [Read more...] about 회사는 역시 일보다 사람, 일복보단 인복
집순이한테도 재택근무는 어렵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첫날,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어른스럽고 침착한 이미지의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으므로 '아 그런가요?'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방방 뛰었다. 재택근무라니요 선생님. 빡빡한 근무체계를 가진 전 회사에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라 더더욱 신이 났다. 역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길 잘했다며, 내 선택이 옳았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암 그렇고말고. 나 같은 자타공인 집순이에게 재택근무란 마치 꿈의 실현과 같은 느낌이다.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가 … [Read more...] about 집순이한테도 재택근무는 어렵다
내 개만을 위한 사랑, 다른 동물에게도 확장하기로 했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한 단체에 한 달에 3만 원씩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그 단체에서 주관하는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에 다녀온 다음의 일이다. 순이와 10년이 넘게 함께 지내면서 그 특별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범위를 넓혀갔고, 유기견 문제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딱 그 정도의 표현이 적확할 듯하다. 한 번쯤은 봉사활동에 참여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갔다 와서 괜히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에게 병균이 옮을 … [Read more...] about 내 개만을 위한 사랑, 다른 동물에게도 확장하기로 했다
책은 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재미있다
어릴 때 나는 책을 참 많이도 읽는 아이였다 여기서 어릴 때라고 하면 초등학교–고등학교 시절을 통칭한다. 일단 책이라고 하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럴수록 책 읽는 속도도 빨라져서 하루에 한 권씩 뚝딱뚝딱 읽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찍 자라고 엄마가 책을 못 읽게 하는 밤이면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작은 손전등을 켜고선 읽었다. 그 버릇이 남아 고등학생 때는 자습 시간 내내 문제집 아래 소설책을 숨겨놓고 몰래 읽기도 했다. 소설책이 주를 이루기는 했지만 딱히 장르를 가리지도 … [Read more...] about 책은 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