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 터지는’ 그 사람들
난 진짜 일복이 차고 넘치나 봐, 사주를 한 번 보든지 해야겠어.
옆자리의 선배가 쓰러지듯 책상에 엎드리며 한탄을 했다. 유난히 팀에 일이 많은 요즘이라 다들 비슷비슷한 심정이기는 했다. 일복이 많은 사람이 정말 따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걸까.
물론 언제나 세상에서 내 일이 제일 많고 힘들게 느껴지는 게 사람 마음이겠으나, 유난히 일거리가 눈앞으로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왜 주변에서 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일없던 팀으로 옮겨가면 갑자기 그 팀의 (특히 그 사람의) 일이 폭발하고, 심지어는 회사를 옮겨가도 갑자기 타이밍 맞춰 허공에서 일거리가 퐁퐁 솟아나는 것 같은 사람들. 어째서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느냐면,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 믿었지, 내가 특별히 일복이 많다거나 유난히 내 앞에만 일이 쌓인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일복이 많은가?’ 생각하게 된 건 주위에서 한 마디씩 툭툭 비슷한 말을 던졌기 때문이다. 너도 참 일복이 많다, 거기 가서도 그러고 있다니 넌 일복을 몰고 다니나 보다, 너는 왜 이렇게 맨날 일복이 터지냐 등등.
계속 듣다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뭐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이직도 딱 한 번 해봤을 뿐이니 어딜 가나 일이 따라다닌다고 하기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한아름씩 손에 일을 안고 있는 편이기는 했다. 남들은 일이 없어서 좀 쉬어간다는 시즌에도 나 혼자 괜히 자질구레한 일들을 떠안고 뛰어다니는 일도 잦았고. 심지어는 재미로 본 사주팔자에서도 일복이 많다고 나왔으니 뭐 어느새 자타공인 일복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사주팔자에도 쓰여있다니 일복이라는 건 정말 타고나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어쩐지 사주에 쓰여있는 건 ‘이 사람은 일복이 많다’라기보단 ‘이 사람은 성격이 이렇고 저래서 일을 많이 하겠다’는 느낌에 가까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일복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은(나를 포함하여) 대개 성취지향적이라 일 욕심이 많거나, 성격적으로 없는 일도 만들어 하는 스타일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흘러들어온 일을 잘 못 쳐내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스스로 일복을 생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랄까. 타고난 기질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니 본인에게는 그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느껴지지는 않고, 그저 ‘나는 일복이 왜 이렇게 많아!’하고 소리들을 지르고 있을 뿐.
뭐 일복 자체가 타고나는 거든 내 성격이 글러 먹어서 일을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것이든, 결론은 내가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니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일이 많아 죽겠다고 표현하기보다 ‘일복이 많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꽤나 해학적이라 그 표현 자체가 나름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누군가 ‘일복이 많은 사람은 그냥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일 못 하는 사람한테는 누가 일을 그렇게 주지도 않는다고’ 하기에 그걸로 심심찮게 위로를 삼기도 했다. 일에 치여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이 많고 조금 더 바쁜 것이 뭐 크게 문제가 되겠나. 그래도 일단은 ‘복’이라는데, 살다 보면 이 복이 켜켜이 쌓여 내게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
그리고 회사생활 4년간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일복이야 어쨌든 간에 역시 회사에서 중요한 건 일보다 사람이라는 거다.
일복이 많아도 좋다, 인복만 있다면!
회사에서 중요한 건 일보단 사람이라고, 학생 때도 그런 얘기를 몇 번 주워듣긴 했었다. 그럴 때마다 대체 그게 뭔 소린가 싶었다. 회사는 일을 하려고 모인 곳이지 사람들이랑 친구 하자고 모인 곳이 아닌데? 내게 딱 맞는 일을 찾아 멋지게 해낼 수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떻든 다 뭔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운 것은 결국 그 한 문장이야말로 회사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의 문장이라는 것. 중요한 문장이다. 회사에서 중요한 건, 일보단 사람이다.
부연하자면, 일이라는 것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다. 일은 많을 때도 있지만 적을 때도 있고 내게 쉬운 일일 때도 있고 어려운 일이 섞여 있을 때도 있다. 일복이 많다고 징징대는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대부분의 경우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일은 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 4년 차 회사원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웬만한 일은 전부 다 하기 싫다. 이 부분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일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이상적인 삶을 늘 꿈꿔왔으며, 지금도 일의 어떤 부분에서는 성취감과 자기효용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일은 하기 싫은 것에 가깝다.
특히 회사의 일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다. 내가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일이 10이라면 하기 싫어도 해내야 하는 일이 90.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일 노는 평범한 직장인들이라면 아마 그 비율이 비슷비슷할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 그 자체가 힘들어 도망치는 사람은 몇 명 보지 못했다. 일이라는 게 어딜 가든 다 비슷하다는 통찰을 이미 다 깨우친 탓일까? 말하자면 일이 하기 싫고 일이 힘든 건 모두에게 기본 설정에 가깝다. 그건 어느 회사 어느 팀을 가도 비슷할 것이다.
기실 회사에서 사람을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대개 사람이 힘들어 견디지 못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너무 잘 맞고 즐겁다면 일이 아무리 빡세도 어찌어찌 견뎌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끔찍하다면, 일이 아무리 설렁설렁 편해도 오래 견디기는 힘든 법이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괜찮다면 견딜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을 견뎌내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일복을 상쇄할 수 있는 건 인복뿐이다.
이게 福이 아니고 무어란 말이냐
요즘 우리 회사에, 특히 우리 팀에 일이 많고, 그중에도 꽤 많은 부분이 내 앞으로 떨어진다. 일복이라는 게 어디서 굴러떨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일복이 많은 거냐고 아마 내일도 소리를 지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은 건, 그렇게 소리를 지를 때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덕이다.
그렇다. 이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켜켜이 내 주위를 두르고 있다. 자신의 일복이 얼만큼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 와중에도 세심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들, 분위기가 가라앉을 참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 인복이 있다고 해야 할까.
다들 나만큼 일복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라 서로의 일까지 덜어내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없다면 이 무거운 일복을 혼자 지고 영차영차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실없는 농담에 같이 웃고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에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오늘의 일 열 가지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쳐낼 수 있는 법.
이렇게 바쁘게, 그러나 덕분에 여전히 안락하고 따뜻하게, 새로운 곳에서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내게 주어진 일복이야 얼마든 감내할 테니, 그 길에 인복도 같이 딸려왔으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만큼의 일복과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인복이 함께 했으면.
아무래도 역시 회사에서는,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까.
원문: 소화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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