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첫날,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어른스럽고 침착한 이미지의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으므로 ‘아 그런가요?’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방방 뛰었다. 재택근무라니요 선생님. 빡빡한 근무체계를 가진 전 회사에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라 더더욱 신이 났다.
역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길 잘했다며, 내 선택이 옳았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암 그렇고말고. 나 같은 자타공인 집순이에게 재택근무란 마치 꿈의 실현과 같은 느낌이다.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집에서 혼자 일해도 좋다니. ‘네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처럼 듣기는 좋지만 현실에서 이루기는 힘든 이상향이 짜잔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뛸 듯이 기뻐하고 나서도 막상 재택근무를 시도한 것은 꽤 지난 다음이다. 전 회사에서 체득한 것들이 몸에 그대로 남아 괜스레,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하면 꼴이 웃기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내 매니저가 한 달에 두세 번꼴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재택근무를 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재택근무를 신청했고, 두말없이 바로 승인이 되었다. (사실 그때도 나 혼자 신청-승인체계로 생각했을 뿐 나중에 보니 거의 통보에 가까운 체계였다.)
대망의 재택근무 날. 이미 온 가족들이며 친구들에게 나는 오늘 재택근무를 한다고 어딘가 뿌듯한 마음으로 자랑도 하고, 캘린더에도 ‘Work from Home’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박아놓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40분 늦게 일어났다. 일단 아침에 부산스럽게 씻고 화장하고 입고 나갈 옷을 고를 필요가 없다는 게 마음이 편했다. 매번 만원 지하철에 끼여서 하루의 에너지를 반 이상 빼앗기고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던 것도 마치 이제 나와는 거리가 먼일처럼 느껴졌고.
거의 안 쓰던 책상을 대강 치워 노트북을 놓고 딱 앉으니 오,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실력 좋고 연봉 높은 개발자가 된 느낌이랄까(…).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내 방에 반쯤 기대 누워 일한다니! 이게 휴일이 아니고 업무일의 모습이라니!
실제로 나는 그날 매우 만족스러운 근무를 했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허리가 좀 뻐근해지면 침대에 앉은뱅이책상을 두고 앉아 거의 누운 채 메일을 쓰기도 했고, 심심하면 옆에서 자던 강아지를 콕콕 건드려 ‘누나 집에서 일하니까 좋지?’하고 같이 행복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고, 점심시간에는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었고.
그 뒤로도 한 대여섯 번쯤 재택근무를 했다. 그러나 이 글은 결코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가 된다고 자랑하거나 재택근무가 얼마나 좋은지 아냐고 광고하는 글이 아니다. 사실 나 같은 집순이에게도 재택근무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걸 말하고자 쓰는 글이다. 입사 1년 차, 나는 더 이상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꽤 레벨이 높은 집순이다.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을 내 마음에 들게 꾸미고 치우는 일에도 관심이 많고, 종일 집에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을 만큼 집에서 할 일이 많으며, 아무리 약속이 많아도 주말 중 하루는 다 비워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재택근무가 싫다니. 처음에는 그 모순이 영 이해가 안 가 스스로도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어쩌면 답은 거기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집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집은 내 사랑하는 가족과 강아지가 있는 곳, 내가 얼마든지 뒹굴거리며 삶을 낭비할 수 있는 곳, 힘들 때 불을 끄고 숨어들거나 박박 욕실 바닥을 닦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는 순간 그 경계는 희미해졌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일의 양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서 그 하루의 대부분 나는 주로 노트북을 껴안아야 한다. 메일을 쓰고 문서를 준비하고 여러 연락에 답변하고. 원래 집에서 늘 그러는 양 잠깐이라도 시선을 내 강아지에게 돌리려 하면 띵- 다시 메일 수신 알림이 들린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만으로 괜히 안 봐도 될 눈치가 보여서 평소보다 메일 답장도 빨리, 슬랙 답장도 빨리. 혹시 누구라도 내가 집에서 일을 빨리빨리 안 하고 논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싫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침대가 내 뒤에 있고, 손만 뻗으면 내가 읽고 싶어 사둔 책들이 쌓여 있고, 내 강아지는 여전히 놀아달라고 조르는데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의 문제다. 점심시간도 오히려 한 시간을 꽉 채워 쉬지 못하고 대충 라면을 끓여 먹고 20분 만에 책상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섯 시 땡 치고 퇴근하기도 어째 더 어렵다. 일곱 시가 되어도 여덟 시가 되어도 그대로 붙어 앉아 끙끙. 출근의 개념이 희미해지니 퇴근도 덩달아 희미해져서 언제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찌어찌 겨우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서도 어쩐지 어딘가 찝찝한 기분. 원래 내 퇴근의 리츄얼은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양쪽 귀에 에어팟을 탁탁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들으며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앉아 멍하니 실려 오는 것이다. 어느새 이건 단순히 집에 가는 길이 아니라 내게 어떤 ‘전환’ 과정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번잡한 마음을 그 30분 동안 가라앉혀야 비로소 ‘집’으로, ‘휴식’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종일 집에서 일하다가 벌떡 일어나니 거기엔 전환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모든 게 그대로. 이대로 침대에 누워서 쉬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기 일쑤였다. 지금 내가 일을 하던 중이었던가, 집에서 쉬던 중이었던가?
물론 더 이상 재택근무를 하지 않게 된 데는 다른 이유도 많다. 집에는 일에 필요한 기기가 완벽히 갖추어져 있지 않아(듀얼 모니터나 스캐너 등) 아무래도 모든 게 손에 딱딱 잡히던 사무실에서보다 일의 진척이 느려질 때가 많았다. 잠깐 집중이 흐트러지면 당장 어질러진 방과 설거짓감과 빨래, 내가 처리해야 할 또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고.
말했듯이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모든 연락에 즉각 답변하다 보니 조용한 방 안에서 나 혼자 곤두서 있는 느낌도 들었다. 팀이 작아서 한국엔 나밖에 없고 모든 관계자가 외국에 있을 때는 차라리 나았다. 어차피 내가 사무실에 있어도 이들과 화상통화나 메신저로 이야기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그러나 한국에 있는 팀이 커지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 많아지자 집에서 일하는 건 더더욱 답답해졌다. 서로 확인할 것이 있고 새로 터진 일이 있을 때, 사무실에 있다면 눈빛과 뉘앙스만으로도 서로 소통할 수 있지만 집에서는 일단 전화를 집어 들어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즉각적인 소통이 아무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정말 제대로 각 잡고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면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집에도 사무실처럼 완벽한 환경을 구비할 수도 있을 것이고, 팀원 모두의 기본 설정이 재택근무라면 사무실에서의 즉각적인 소통보다 메신저로 하는 실시간 채팅에 더 익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집 청소 같은 건 주말에 미리미리 해놓을 수도 있을 것이고.
딱 하나, 내가 앞으로도 재택근무를 하지 못할 것 같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 경계의 문제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집과 내 집에서만 찾을 수 있던 안락함을 나는 소중히 지켜주고 싶다. 오늘 하루 사무실에 나가기 싫어 재택근무를 선택했다가 괜히 그 안락함 전체를 침범하고 들쑤셔 결국 그 공간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달까.
나는 누가 뭐래도 집순이고, 그러니만큼 집은 언제나 내게 편안하고 행복한 휴식의 공간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그 경계를 확실히 할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 재택근무는 당분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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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정말 오늘은 기필코 월급루팡이 되어 철판 깔고 땡땡이를 치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하루쯤은 재택근무 찬스를 써봐도 좋겠다고 남몰래 생각해본다. 이상.
원문: 소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