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적부터 거의 매년에 해당하는 일기장을 한 권씩 가지고 있다. 고르고 골라 직접 산 것도 있고, 스타벅스 같은 데서 이벤트로 받은 다이어리도 있고- 종류는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결코 12월의 기록은 없다는 데 있다. 11월이나 10월의 기록도 흔하지는 않다. 1월의 기록은 백 퍼센트 빽빽하게 차있지만 뒤로 갈수록 듬성듬성, 그러다 다음 1월에 새로운 다이어리로 교체될 때까지 비어있는 일기.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1월 1일에서 멀어질수록 힘겨워진다. 많아봐야 스무 줄을 넘기지 않는 글인데도 그렇다. 하루의 마무리에는 얼마나 변수가 많은가. 술에 잔뜩 취해 겨우 세수만 하고 잠드는 밤이 있고, 피곤해서 양말 벗을 힘도 없이 쓰러지는 밤이 있고, TV를 보다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밤이 있다. 분이 터져서 엉엉 울다 지쳐 자는 밤이 있고, 무슨 이유로든 신이 나서 낄낄대고 떠들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잠을 미루는 밤이 있다.
그 모든 밤에 똑같은 리추얼을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게 겨우 똑같은 다이어리를 펴고, 그립감이 좋은 펜 하나를 들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렇다 할 꾸밈도 없이 적어내는 것이라고 해도.
모든 게 앱이 되어버린다 해도
그래도 여전히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를 성의껏 고른다. 손으로 쓰던 가계부와 To-Do List와 기타 많은 것들이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나 아이폰과 맥북으로 옮겨갔지만, 일기만큼은 그대로다. 앱을 이용해 일기를 적는다면 빼먹는 밤이 더 적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요즘은 펜을 쥘 일이 거의 없는 탓으로 겨우 일기 한 바닥 쓰는데도 펜에 눌린 손가락이 얼얼하고 손이 아파올 때가 있다. 예쁘게 쓰고 싶은 마음을 그런 피곤함이 자주 이기므로 그다지 아름다운 필체로 기록되지도 않는다. 그런 모든 성가심을 감수하고서 나는 여전히 일기장에 일기를 쓴다.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다. 요즘 나오는 어플의 편리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저 일기장이 가지고 싶다. 내 비슷비슷한 글씨로 꽉 채워진 일기장. 비록 뒤로 갈수록 점점 빈도가 낮아지는 기록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날은 꾹꾹 눌러쓰고 어떤 날은 대충 휘갈겨 쓴, 직접 쓴 일기장. 책장 이곳저곳에 숨겨놨다가 가끔 방청소 중에 발견하면 그대로 주저앉아 한 권을 홀딱 읽게 되는. 그만큼 재밌는 건 아직 찾지 못했다.
일기를 쓰는 건 내 시원찮은 장기 기억력 때문이다. 지나가버리면 금방 휘발되고야 마는 나의 하루하루가, 기록조차 남겨두지 않으면 아예 사라져 버릴 것 같아 공허한 탓이다. 그것을 꼭 손글씨로 남기고 싶은 건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기록이 실체로 남아 내 과거를 대신하길 바라는 마음인가 보다. 디지털화된 글자보단 실제로 손에 잡히고 만질 수 있는 어떤 유형의 물체로 기억을 쌓아두고 싶은 마음.
큰 키로 자란 나무의 몸통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모습을 상상한다. 빠르게 자라나는 만큼 어느 구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어딘가 불안정한 모양. 그 구멍을 조금씩 틀어막기 위해 나는 일기를 쓴다. 종이에 직접 쓴다. 그 기록이 모여서 나의 어느 부분을 지탱하고 있다고 느낀다.
실은 그저 느낌뿐이겠지만, 그 일기들이 어느 날 모종의 이유로 몽땅 사라져도 남들이 보는 나는 아무 문제없이 존재하겠지만- 나만 아는 어느 구석은 휑하니 비어버리고 말 것만 같은. 집에 불이 나면 무얼 챙겨 대피할 거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비슷하다. 첫째는 내 강아지, 둘째는 내 일기들. 가능한 한 과거의 일기까지 최대한 많은 권수를.
내 하루하루가 온전히 하루씩의 부피를 갖기 위해
카드를 쓰면 자동으로 가계부를 기록해주는 앱이 있는 시대에, 그런 편리성에 아주 잘 적응한 나에게, 매일 밤 손으로 일기를 쓰는 일은 여전히 에너지가 많이 든다. 누가 볼 거라는 걱정 없이 솔직한 얘기를 쓰기 위해 작년부터는 일기만을 위한 휴대용 금고도 마련했는데, 목적에 비춰보면 대단히 유용하지만 리츄얼에는 하나의 액션이 더 추가된 셈이다.
일단 그 작은 금고를 책장에서 꺼내고, 비밀번호를 맞춰 열고, 올해의 일기장을 꺼내고, 정해진 펜을 찾아(같은 펜으로 한 권을 다 채우길 좋아한다) 한쪽의 일기를 쓰는 일. 내가 내 일기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와는 관계없이 상당히 공수가 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일기는 자주 밀린다. 침대에 진작부터 누워 있는 주제에 책장까지 가기 귀찮아 미뤄진 날이 있다. 여행을 가서도 꼭 다 쓸 것처럼 일기장부터 챙겨놓고, 집에 돌아오는 날까지 펼쳐 보지도 않는 여행지의 밤들이 있다.
하루 정도야 금방 메꿀 수 있지만 어디 미루는 것이 하루에서 잘 끝나던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는 건 순식간이며, 그게 한 달까지 가기 시작하면 그 뒤의 기록은 영영 적히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원래 나는 ‘한 달이나 비어버린 일기는 이미 망한 것이므로 이후의 일기는 써봐야 소용없다는’, 이상한 완벽주의의 소유자였으므로.
그러나 작년부터는 심기일전 밀린 일기도 열심히 채우고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내 구멍들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매일 비슷비슷한 하루가 반복되어, 겨우 며칠만 밀려도 친구와의 카톡 대화며 개인 캘린더에 업무 캘린더까지 뒤져야 하루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
그러니 그렇게 비어버린 상태로 한 달이 쌓이면, 나의 한 달은 납작하게 압축되고 만다. 분명 그 하루만의 기쁨과 새로움과 속상함과 깨달음과… 멋대로 흘러가 이상한 곳에 닿았던 생각들이 있을 텐데도.
그 불안함을 길잡이 삼아 한 달이 밀렸어도 기를 쓰고 그 기록을 채운다. 때로는 주말의 몇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지만서도. 비록 모든 날짜를 한쪽씩 꽉 채우지 못해도, ‘기억이 잘 안 난다’로 끝나는 문장이 대다수일지라도 우선은 모두 채워둔다. 그래야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날의 기록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조선시대 왕처럼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 기록하는 것도 아닐진대, 아무리 용을 써도 언제나 내 몸통에 구멍이 존재할 거란 건 안다. 그러나 가능하면 그 구멍 난 부분이 내게 불필요한 장면들이길 바란다. 잊어도 괜찮은 것들, 아니 오히려 잊어야 더 좋을 것들을 위주로 구멍이 나도록 두고 나머지는 꾹 눌러 담아 채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매일 밤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쓴다.
내 하루하루가 온전히 하루씩의 부피를 가지게 하기 위하여.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때로는 그저, 먼 미래 어느 날의 대청소에 잠깐의 즐거운 휴식을 선사하기 위하여.
원문: 소화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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