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3일 빛고을의 스러진 빛, 장재성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이 날이 학생의 날로 지정된 이유는 상식에 가깝다. 바로 광주 학생 운동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광주 학생 운동은 3.1운동에 필적하는 대규모 항일 운동이었고 광주에서 전국으로, 나아가 해외로까지 조선인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게 만들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교과서에서는 대충 이렇게 배운다. 나주와 광주를 오가는 통학 기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의 댕기 머리를 잡고 희롱을 하자 이에 분개한 여학생의 … [Read more...] about 1929년 11월 3일 빛고을의 스러진 빛, 장재성
어떤 독재자의 죽음
1963년 11월 1일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분단되어 있던 베트남의 남반부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에서는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독재자 응오 딘 디엠을 내몰려는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의 5.16처럼 해병대가 선봉이었다. 쿠데타군은 정부군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방송국, 군 사령부, 주요 기관을 장악해 나갔다. 대통령의 체포는 시간 문제였다. 다음날 새벽 쿠데타군이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총공세를 전개하는 가운데 응오 딘 디엠은 비밀 통로로 중국인 거주 지역으로 도망간다. … [Read more...] about 어떤 독재자의 죽음
프랑스의 흑역사, 1961년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이 인류의 근대사에 끼친 영향을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 혁명 과정에서 ‘자유 평등 박애’ 가운데 특히 ‘박애’(우애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라는 단어가 그 얼굴을 감싸 쥘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대륙은 물론 대서양 건너 아이티에 이르기까지 불어닥쳤던 신선하고도 강력한 바람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좀 이상한 구석도 있다. 프랑스의 현대사에서 그 혁명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에 태연자약할 뿐 아니라 그 … [Read more...] about 프랑스의 흑역사, 1961년
역사상 최고의 멍부 지휘관, 무타구치 렌야
유명을 달리한 김종학 PD의 걸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가운데에는 명장면이 많았지. 드라마 사상 최초의 키스신도 그렇고, 아들을 잃고 넋을 잃고 아들을 바라보는 침묵 장면, 그리고 라스트 신 등등 기억나는 장면들이 많지만 최재성이 굶주림에 지쳐 뱀을 뜯어먹는 모습 또한 기억에 남을 거야. 그때 최재성은 이 연기를 위해 며칠을 굶다시피 하고 사정없이(?) 뱀을 뜯어먹었다지. 사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고 며칠 주리고 나면 바퀴벌레인들 입에 못 넣겠어. 그런데 극중 … [Read more...] about 역사상 최고의 멍부 지휘관, 무타구치 렌야
두사부일체의 모티브가 된 학교 이야기
얼마 전 한참 나이 어린 작가가 황망한 일을 당한 뒤 "우째 이런 일이!"를 연발하는 걸 보았다. 경상도 출신도 아니면서 그 말을 쓰는 것이 우스워서 그 표현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관용어처럼 사용하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이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아는 관용어로 자리잡은 계기를 아마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녀가 초등학생 아니면 유치원생 때였을 1993년 초의 일이었으니까.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초반, '문민정부'의 찬연한 … [Read more...] about 두사부일체의 모티브가 된 학교 이야기
1930년 1월 10일 조선방직에서 일어난 일
부산에는 ‘조방’이라는 상호가 붙은 가게들이 꽤 된다. 서울 사람들도 ‘조방낙지’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지만 조방돼지국밥도 있고 조방김치찌개 집도 있었다. 그리고 부산 시민회관 가는 57번 버스의 종점은 ‘조방앞’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조방’이란 무엇인가. 이서방 양념 통닭처럼 조서방의 준말일까? 무협지에 나오는 무슨 방을 뜻하는 것일까. 다 아니다. 조방은 ‘조선방직’의 준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부산 범일동 평화시장과 중앙시장 일대에는 종업원 수천 명이 일하던 식민지 조선 … [Read more...] about 1930년 1월 10일 조선방직에서 일어난 일
두 프로레슬링 거인의 40년 절교에서 죽음을 앞둔 화해까지
1. 6-7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프로레슬링이었다. 지금은 한 물이 아니라 두 물 세 물이 간 이름이지만 6-70년대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애들은 김일의 박치기를 보기 위해 TV 있는 집 아이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아양을 떨었고, 만화 가게에 “여건부 (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 출전 ‘레쓰링’ 경기”가 나붙는 날이면 어른들까지 만화 가게를 가득 메웠다. 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난나온 한 청년은 우연히 일본의 프로 레슬링을 다룬 영화를 … [Read more...] about 두 프로레슬링 거인의 40년 절교에서 죽음을 앞둔 화해까지
유니의 추억
2007년 1월 21일 유니 안녕 유니가 세상을 스스로 등진 뒤 블로그에 끄적였던 포스팅입니다. 그녀의 8주기.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억의 우물이란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말라 갈라진 것 같은데 느닷없는 번개처럼 뭔가 계기가 있으면 굵직굵직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싸래기들까지 샘솟듯 솟아나 두레박을 가득 채우니까 말입니다. 2004년 부활했던 "특명 아빠의 도전"은 심심하면 연예인을 `특명 아빠`로 불러 세웠습니다. 그 특명 아빠들은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불우이웃들을 위해 … [Read more...] about 유니의 추억
일제 항거에 모든 걸 바친 진정한 기독교인, 전덕기 목사
을사조약에 도끼를 들고 상소한 기독교인 전덕기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어원이 '(을사늑약이 맺어진 해인) 을사년스럽다'라는 얘기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또 어떤 학설이 나와서 그 이전에도 쓰인 기록이 있다고 해서 뒤집을지는 몰라도, 1905년 11월 18일은 실로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기기에 족할 만큼 섬뜩한 한기가 돌던 초겨울이었다. 18일 아침이 밝아오기 전 새벽 2시. 일본의 압력과 대신들의 강청에 견디다 못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문서에 옥새를 내어 준 것이다. … [Read more...] about 일제 항거에 모든 걸 바친 진정한 기독교인, 전덕기 목사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의 삶
을사늑약에 조국을 떠나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이 늑약이 알려지자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비롯하여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로 대한은 망하였다. 이 일을 어찌하는가." 분노한 군중들이 종로를 메웠고 종로 상인들은 일제히 철시했다. 어떤 이들은 도끼를 떠메고 대한문 앞에 엎드려 통곡했고 을사오적을 죽이라 호소하기도 했다. 그때 실로 귀티가 나는 서른 여덟의 남자가 이상재 이동녕 등과 함께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 [Read more...] about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