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1일 유니 안녕
유니가 세상을 스스로 등진 뒤 블로그에 끄적였던 포스팅입니다. 그녀의 8주기.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억의 우물이란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말라 갈라진 것 같은데 느닷없는 번개처럼 뭔가 계기가 있으면 굵직굵직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싸래기들까지 샘솟듯 솟아나 두레박을 가득 채우니까 말입니다.
2004년 부활했던 “특명 아빠의 도전”은 심심하면 연예인을 `특명 아빠`로 불러 세웠습니다. 그 특명 아빠들은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불우이웃들을 위해 도전을 했고요. 윤은혜씨도 나왔고 웃찾사 멤버들도 출동한 바 있으니 특명 아빠가 아니라 특명 언니, 특명 오빠들의 도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어쨌건 프로그램의 부제는 특명 스타 아빠의 도전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2005년 5월 어린이날 특집 특명 스타 아빠 중 하나가 고인이 된 유니 씨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당시 저는 가수 유니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섭외된 이가 `윤희`인 줄 알고 “성이 뭐냐?”고 되물어 작가가 책상을 치며 탄식하게 만들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한바탕 무안을 당한 저는 유니씨가 도와야 할 불우이웃이 다름 아닌 서울 모 지역의 독거노인들임을 알고 회심의 반격을 가했습니다. “이른바 섹시 댄스 가수 유니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며 “당췌 이게 어울리는 조합이냐”며 기세를 올렸지요.
그러자 작가가 한숨을 푹 쉬면서 답답한 PD의 귀를 잡아당기듯 말했습니다. “유니는 집안 사정으로 할머니 손에서 컸대요. 그래서 할머니들에게 애틋한 감정이 있을 것이고, 일부러 섭외했다고요”
그녀에게 주어진 도전과제는 언젠가 방한했던 비눗방울 예술가 팬양씨가 제시한 비눗방울 묘기 3단계였습니다. 연습 과정을 촬영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일정을 따라붙게 됐습니다. 은평구에서 독거노인 분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점심 준비야 예의 `체험 삶의 현장` 분위기로 순조로이 흘러갔는데 싱글벙글하던 저와는 달리 로드매니저의 얼굴이 점점 파래져 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비눗방울 묘기를 연신 선보이던 유니씨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울을 만들어 댔던 겁니다. 2단계까지 성공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 드려야 한다고 잠깐만 잠깐만을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로드매니저는 시계와 비눗방울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죠. 저야 신바람이 났지만…
로드매니저에게 일정을 물으니 회사 들어가서 공연 준비를 한 다음 5시까지 청원으로 갔다가 7시에 노래 두 곡 부르고 8시 30분까지 제천 당도, 공연 참석하고 이후 원주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 수원 공연장으로 바로 출두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천 공연은 지역 방송사 생방송이었습니다.
로드매니저의 거듭된 읍소와 협박으로 마침내 비눗방울 도구를 내려 놓은 유니는 모여 앉아 있던 할머니들께 하직을 고했습니다. 허둥지둥 그녀의 밴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힘겹게 따라갈 때 로드매니저와 유니의 짤막한 대화가 귀에 들어왔었지요.
“늦었잖아요. 큰일났어 어떡해?” “할머니들이 좋아하잖아. 어떡해?”
저는 그때 유니씨의 개인사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유니씨를 할머니들의 점심 식사 장소에 보낸 작가의 혜안에 상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점심 내내 유니씨는 섹시한 댄서 가수의 면목을 보여 줄 수 없었지만, `며느리 삼고 싶은` 처녀였고, `참 참한` 아가씨였습니다.
마침내 특명 스타 아빠의 도전 녹화날이 왔습니다. 유니씨는 자신만만 무대에 올랐지요. 사실 스타 아빠들에게 주어지는 도전 과제는 `어려워 보이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하는` 과제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때와는 달리 무조건 성공하는 모습으로 연출을 감행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굴뚝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붕에서 굴러 떨어진대서야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유니씨도 아침 내내 해 봤는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며 위풍이 당당했지요.
그런데 그토록 순풍 순풍 불어지던 비눗방울이 막상 스튜디오에선 도무지 키워지지 않는 겁니다. 피식 피식 터져 버리거나 아예 대롱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수십 번 반복되자 다급해진 저는 비눗방울 공연자 팬양씨의 기획사 쪽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죠.
“이상한데. 혹시 거기가 건조한가요? 건조하면 안될 수가 있어요. 보통 정도의 습기면 되는데 특별하게 건조한 곳이라면…”
그 말을 들으며 저는 하염없이 스튜디오를 내리쬐는 조명빛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 조명 아래 남아날 습기가 있을까.` `왜 이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 녹화 어떡하나. 암흑 속에서 도전할 수도 없고…
망연자실한 PD 앞에서 유니씨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대롱을 불었습니다. 그러다가 습기 얘기를 듣고는 제게 소리를 질렀지요. “가습기라도 구해서 틀어 주세요 그럼. 물도 뿌려 주시고…”
무능한 PD에 이어 대책없는 PD가 되어 버렸습니다. 출연자에게서 이런 호통을 듣는 기분이 좋을 이유가 없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유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마님 부름에 답하는 마당쇠처럼 “예이~”를 부르짖으며 조연출들에게 가습기 구해 오라고 방방 떴었지요.
저는 습기 얘기가 나왔을 때 유니씨가 무대 밖으로 내려와 메이크업 고칠 줄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준비 안된 연출팀을 무진장 타박하면서 예쁜 표정으로 “어떻게 하죠?”라며 우리를 쳐다보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가습기를 구하러 간 동안에도 유니씨는 대롱을 놓지 않았습니다. 성형미인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저만치 밀어두고, 조명을 받은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예뻤습니다.
가습기 두 대가 습기를 뿜어 대고 물뿌리개까지 동원되어 감전이 우려될 정도로 뿌려 댄 상황에서 재시도를 감행했지만 2단계까지는 성공을 했으나 3단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울상이 된 로드매니저가 다음 스케줄을 고하며 다가섰지요. 특명 스타 아빠의 도전 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실패로 마감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대에서 화급히 내려오는 유니씨를 앞에 두고 저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하는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만 유니씨의 속사포같은 말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PD님 어떻게 하죠. 미안해요. 실패해서. 그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어떡해요. 미안해서. 상품이 전부 얼마죠? 제가 낼께요. 그리고 저 출연료 있죠? 그거까지 다 그리로 보낼께요. 미안해요 실패해서. 할 수 있었는데. PD님 저 가요. 참 이거 제 CD인데 들어 보실래요?”
앞서 말했듯 스타 아빠의 도전은 무조건 성공을 원칙으로 하기에 불우이웃들에게 갈 상품은 죄다 협찬이 완료되어 있었습니다. 즉 유니씨가 실패했다고 그 상품이 도루묵이 될 리는 없었지요. 하지만 유니씨는 그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하긴 실패하면 국물도 없다고 엄포를 놓았던 게 저였으니까…
도전 과제에 필요한 기본 조건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댔던 PD에게 가습기라도 틀라고 소리쳤던 출연자, 어쨌든 무대에서 `실패`라는 불성실한(?)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비쳐져야 하는 스타 언니의 뜻하지 않은 사과에 저는 어색한 웃음으로 밖에 답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그녀의 부담으로 자신이 약속한 선물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전달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상품 총액이 얼마냐”고, “물건으로 사기는 시간이 없으니 현금으로 전달하겠다”고 말이죠.
무대 위에서 몸을 요염하게 흔드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몸매 참 착하다”고 얘기했었지만 저는 싱긋 웃으며 “마음도 착해”라고 말하고는 했지요. 너무 착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받아온 상처가 깊어서 그랬는지 유니씨는 건조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히는 마른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비눗방울 2단계까지는 성공했지만 3단계에서 다음 스케줄에 쫓겨 무대를 내려와야 했던 것처럼 그녀의 노래 3집을 완성시켜 놓고, 그 성패 여부를 보지 못한 채 삶을 스스로 접었습니다. 무엇이 그녀의 생을 재촉했을까요.
그녀가 몸을 뜯어고쳤다고 헐뜯고 독설을 퍼붓고 말발길질을 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고인의 뒤안길에다 대고도 “잘 죽었다”고 저주하더군요. 자신의 상처만큼이나 상대의 아픔을 생각할 줄 알았던 한 예쁘고 참한 처녀가 생을 포기하는데 그들의 존재가 밧줄 또는 최소한 디딤돌 역할을 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반성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