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필요없고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존엄성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란 결국 누구든 네 목숨을 함부로 빼앗지 못하는 것이라고. 당연하다. 인간의 기본권은 죽지 않을 권리다. 사실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 두려움을 벗어난 다음에 굶주리지 않고 뭔가를 의지하고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할 자유에 이를 것이다. 진보건 보수건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 바 여기엔 다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시비를 걸고 싶은 건 진보 쪽이다. 과연 진보는 1987년 1월 15일 벌어진 … [Read more...] about 진보의 모순, 동진 27호
그 많던 오렌지족은 어디로 갔을까
1994년 5월,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너무도 끔찍한 뉴스에 눈을 감고 말았다. 멀쩡한 청년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십 군데 난자해서 살해하고 불까지 지르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마흔 줄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아마 그 범인의 이름도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박한상. 이 사건은 후일 조폭 경찰 설경구와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성재의 대결을 그린 영화 <공공의 적> 모티브가 된다. 유산을 노려 부모를 수십 번 찔러 죽인 것이 같고 부모의 죽음이 알려진 뒤 크게 슬퍼하며 경찰의 눈을 … [Read more...] about 그 많던 오렌지족은 어디로 갔을까
쓰촨 대지진과 원자바오
언제부턴가 중국인 이름의 표기법이 원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내 머리 속에서는 중국인들의 이름이 마치 홍해바다 동쪽과 서쪽처럼 갈라져 틀어박히게 된다. 대충 ‘강택민’ 이전의 중국인들은 어김없이 우리 식 이름으로 기억된다.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보다는 모택동 등소평이 더 친숙한 것이다. 구한말 조선을 들었다 놨다 한 원세개는 귀에 익지만 위안 스카이는 좀 어리둥절하고 진독수라면 고개를 끄덕여도 천뚜슈라면 누구? 하게 된다. 주은래는 쉬워도 저우언라이 하면 라이라이? 하며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 [Read more...] about 쓰촨 대지진과 원자바오
장공 김재준, 역사가 되다
형편없는 날나리지만, 그래도 기독교인이랍시고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야. '예장' 은 뭐고 '기장' 은 뭐고 '합동' 은 뭐고 '통합' 은 뭐냐. '고신' 은 또 뭣하는 거냐.” 이는 개신교 내부의 교파들의 차이를 묻는 것일 게다. 사실 교리 차이는 없다. 오히려 역사의 문제고 실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분할, 분열 조선 선교 초기의 일이다. 선교사들이 ‘미전도 종족’ 의 땅 조선에 몰려들었다. 여기서 ‘나와바리’가 겹치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었다. 이 … [Read more...] about 장공 김재준, 역사가 되다
위대한 스포츠맨의 가장 위대한 날
20세기 최고의 스포츠맨이라면 누구를 꼽을 것인가. 좋아하는 종목에 따라, 연령과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겠지만, 나로서는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꼽고 싶다. 불패의 신화를 안고 은퇴했던 로키 마르시아노와는 달리 몇 번씩이나 패배의 쓴잔을 마셨고, 헤비급 타이틀을 25차나 방어했던 조 루이스에는 방어 횟수에서 훨씬 못 미친다. 축구의 펠레처럼 정부의 공직을 맡는 등 화려한 은퇴 후 생활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20세기 … [Read more...] about 위대한 스포츠맨의 가장 위대한 날
육탄 10용사의 수수께끼
일본의 영향인지 또는 참말로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인지 우리 군에는 '육탄 돌격'의 신화가 많다. 그 효시라 할만한 것이 바로 1949년 오늘 일어난 육탄 10용사들의 돌격. 6월 25일 전면전을 개시한 것이 북한이라는 것은 이제는 움직이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6월 25일 이전의 38선이 평화롭고 고요하지는 않았으며 전면전에 진배없는 맹렬한 포격전과 고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즉 전쟁이 6월 25일 별안간 뻥 하고 터진 것은 아니었다. 육탄 10용사의 신화는 6.25가 터지기 … [Read more...] about 육탄 10용사의 수수께끼
장진호 전투, 그 악몽의 겨울
이 글은 2014년 12월 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내가 그런 말한 적 있지? 더위는 한이 안되고 귀찮을 뿐이지만 추위는 한(恨)이 된다고 말이다. 쪄 죽는다 말은 해도 더워서 죽기는 쉽지 않지만 추위에는 사실 대책이 없거든. 인류의 발전과 확대에 추위는 장성같은 한계이자 프로메테우스같은 은인이었어. 겨울은 인류에게 엄혹한 칼날을 휘둘렀지만 동시에 그걸 극복하면서 생활 영역을 넓히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니까. 전쟁을 할 때도 겨울은 큰 장애이자 은인이었다. 나폴레옹이나 … [Read more...] about 장진호 전투, 그 악몽의 겨울
1992년 1월 19일 김보은, 김진관의 존속살해사건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 충청북도 충주. 1992년 신년 벽두, 이곳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공개됐다. 무용학도였던 김보은과 그 애인 김진관이 살인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존속’ 살인이었다. 그리고 피해자는 김보은의 아버지, 또 한 번 정확히 말하면 김보은이 일곱 살 때 김보은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만난 의붓 아버지였다. 두 젊은이는 보은의 의붓아버지를 죽인 뒤 강도 살인으로 위장했다. 그런데 수사에 나선 경찰이 보기에 좀 수상쩍은 구석이 있었다. 피해자의 방에 이불이 … [Read more...] about 1992년 1월 19일 김보은, 김진관의 존속살해사건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 가인 김병로의 기일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물으면 백이면 백 이승만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초대 대법원장의 이름을 물었을 때 정확히 답할 이는 반도 안 될 거라 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 모두 "선거로 왕을 뽑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던가. 상식 삼아 알아 두자. 우리 나라 초대 대법원장은 가인 김병로라는 분이다. 1. 거리의 사람(街人) 김병로 존칭 생략하고, 김병로는 나라가 연일 기울어가던 1887년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지만 개화가 빨랐던 … [Read more...] about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 가인 김병로의 기일에
일그러진 욕망이, 숭례문을 불태우다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좌석 하나 빈 곳 없는 KTX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객차 내 모니터에 이상한 글자들이 떴다. “숭례문 화재 발생, 긴급 진화 중” 아이들 챙기고 짐 내리느라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대충 짐 정리한 후 옷 갈아 입고 소파에 걸터앉아 리모콘 버튼을 누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숭례문, 하지만 그 이름보다는 ‘남대문’에 더 익숙한 옛 도성의 문루가 활활 붙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국보 1호라고는 하지만 왜 그게 국보 1호인지 모르겠다고 … [Read more...] about 일그러진 욕망이, 숭례문을 불태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