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가 된 법정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시선 집중을 받은 것은 두 차례에 걸쳐서였다. 1964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 조직으로 국가 변란을 획책”했다는 어마어마한 ‘인혁당’ 사건의 개요를 발표한 것이 그 첫 번째였다. 중앙정보부장까지 나서서 발표한 ‘대규모’는 총 57명이었다. 1개 소대급의 지하 조직으로 국가 변란을 획책하려 한다는 대한민국 공안당국 특유의 허장성세의 전통은 이토록 유구하거니와, 이 사건 당시까지만 해도 기개가 살아 있었던 대한민국 … [Read more...] about 앞으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할 역사 ①
로트렉과 발라동
<왕좌의 게임>이라는 미드가 있어. 내용을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대충 몇 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중세 유럽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야. 이제 시즌 4까지 나왔으니까 기회 있으면 한 번 보고. 이 미드의 주요 인물로 매우 귀한 가문 출신의 총명한 젊은이가 등장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난쟁이다. 그런데 난쟁이의 친누나와 형이 함께 침대를 뒹구는 사이로 설정돼 있지. 근친혼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무척 친숙한 가문인 셈이야.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전혀 엉뚱한 사람 하나를 떠올렸어. … [Read more...] about 로트렉과 발라동
‘제국주의의 치어리더’, 박경원의 삶
어느 소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설 속 어머니의 이름이 ‘쌍년’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왜 쌍년이었는가 하면 손자를 기대하던 할아버지에게 손녀 소식이 전해지고 쭈뼛쭈뼛 이름을 뭐라 지을꼬 여쭈자 이 할아버지 담뱃대를 집어 던지며 “쌍년이라고 불러라 쌍년이!”라고 일갈해 버려 그예 이름이 “雙年”이 돼 버린 것이었다. 남아선호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딸들은 그 이름에서부터 서글프고도 한스러운, 동시에 난폭하면서 잔인한 인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끝순이니 딸그만이니 막녀니 하는 이름이 … [Read more...] about ‘제국주의의 치어리더’, 박경원의 삶
한국식 재개발의 기원
여기서 광주는 빛고을의 광주가 아니다. 넓을 광 자 광주다. 즉 전라도 광주가 아니라 경기도 광주를 의미한다.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 땅에서 그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도 (일단은) 두 손을 든 심각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친숙한 용어로는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이라 한다. (경기도)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 이 봉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뒤로 미루고, 봉기 와중에 벌어진 일 하나를 먼저 소개해 보자. 몽둥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참외를 실은 삼륜차 하나가 … [Read more...] about 한국식 재개발의 기원
안중근의 동생, 독립운동가 안공근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상징 같은 존재라면 단연 안중근 의사다. 침략의 원흉으로 인식되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도 사건이려니와, 그 후 재판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의연한 태도와 격렬한 웅변, 그리고 일본 간수들과 변호인까지 감동시킨 고매한 인격과 뛰어난 경륜은 독립운동가의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라 황해도 해주 출신의 안씨 가문은 독립운동의 명가라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 가운데는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도 있었다. 독립운동가 … [Read more...] about 안중근의 동생, 독립운동가 안공근
일제, 그리고 독재와 맞선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가장 완강하고 꼿꼿하게 일제에 맞섰고, 최후까지 일점 흔들림 없던 지사(志士)로 꼽히는 세 명이 있다. 단재 신채호, 만해 한용운 그리고 심산 김창숙이다. 단재와 만해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이 아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뒤의 전쟁과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재나 만해 성격에 이승만 같은 이를 만났더라면 폭탄이라도 들고 경무대로 돌진했을지도 모르니까. “이 늙은이야. 내 너 같은 자에게 이 나라를 맡기자고 독립운동 한 줄 … [Read more...] about 일제, 그리고 독재와 맞선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조선 최고의 고집쟁이, 신채호
1936년 2월 21일, 단재 신채호 투쟁을 멈추다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변절자’나 배신자를 싫어하는 정서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조 때 신숙주가 아무리 유능한 명신이었다 해도 단종 임금을 복위시키려다가 죽은 성삼문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숙주나물’로 남거나 가깝게는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김민석이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을 버리고 정몽준에게 달려갔던 이후 완전히 맛이 가버린 일은 그런 정서를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하여간 참 일편단심 … [Read more...] about 조선 최고의 고집쟁이, 신채호
누가 국정원 직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또래 국정원 직원의 유서를 읽으며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떤 나라든 권력자든 정보기관을 필요로 한다. 러시아 짜르의 비밀 경찰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리던 레닌이 혁명이 성공하자마자 폴란드인 체르진스키에게 혁명 정부의 정보기관 체카를 만들게 한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실제 적국이든 가상 적국이든 동맹이든 혈맹이든 자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나라의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국의 … [Read more...] about 누가 국정원 직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1968년 2월 1일, 사이공의 도살자
베트남은 우리와 인연도 많고 비슷한 것도 많은 나라다. 요즘은 로마자로 언어 표기를 바꿨지만 한자를 사용했고 상명하복의 유교 문화에 익숙했고 중국식 관료제도를 도입해 온 나라였다. 외침도 많아 때로는 짓밟히고 대개는 그를 무찌르면서 민족적 자존감도 높디높지만,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분단의 아픔도 겪었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공통점 하나를 더 든다면 구정, 즉 음력 설을 성대하게 치른다는 것. 1968년 설날은 1월 30일이었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났고 마을마다 귀향객이 … [Read more...] about 1968년 2월 1일, 사이공의 도살자
1905년 5월 5일, 보성전문의 개교 기념일
1905년 초 황성신문은 희망찬 기사 하나를 실었다. “이 나라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보성전문’이 탄생하니 기대하라”는 것이었다. 기대할 만도 한 것이 ‘널리 인간성을 계발한다.’는 뜻의 교명 ‘보성’은 고종 황제가 직접 지은 것이었고 설립자는 이용익이라는 사람이었다. 후일 손기정이 다리로 세계를 제패했다면 이용익은 다리로 자기 인생을 바꾼 사람으로 유명하다. 임오군란 당시 장호원으로 몰래 도망갔던 민비와 고종 간의 메신저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는 빠른 다리를 이용해서 2백 리 길을 … [Read more...] about 1905년 5월 5일, 보성전문의 개교 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