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는 일제 시대의 대표적인 금지곡이었다. 왜 금지곡이었을까.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의 2절이나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의 3절에 이르면 이 노래를 듣는 조선 사람들은 죄다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손을 얼굴에 묻고 엉엉 울기 바쁠 수 밖에 없었다. 이 … [Read more...] about 아침이슬, 미인, 고래사냥… ‘어이없는 금지곡’의 광복절
내부고발자와 진정한 배신자
직업상 배신자(?)들을 종종 만난다. 배신자라 함은 그때껏 몸담아 왔던 조직이나 자신에게 일할 터전을 제공했던 개인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배신은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진도 8 이상의 강진이 되어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도 왕왕 발생하고,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는 한탄과 “그놈만큼은 내 가만두지 않는다.”는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난 배신자들을 존경한다. 그들의 공식적 호칭은 … [Read more...] about 내부고발자와 진정한 배신자
인민군으로 위장해 국민을 학살한 “저승사자 나주부대”
6.25가 터진 뒤 한 달여, 전황은 인민군의 완연한 강세였다. 3일만에 서울을 함락한 것은 물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스미스 특수 임무부대도 오산에서 곡소리 나게 두들겨 맞고 쫓겨갔고 미 정규 24사단은 7월 21일 벌어진 대전 전투에서 참패하고 사단장 딘 소장마저 행방불명됐다. 물론 호랑이가 수염을 그을린 정도의 타격이긴 했지만 미군으로서도 뼈아픈 일이었고 인민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러도 여러 번 찌를 정도 드높았다. 그때 국군은 소백산맥 이남 경상도 지역으로 후퇴하며 전력을 수습했다. … [Read more...] about 인민군으로 위장해 국민을 학살한 “저승사자 나주부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대학에 입학하던 무렵 학교 앞 백반 값은 1,200원이었다. 학교 구내 식당 장국밥은 450원이었다. 간단히 얘기해서 ‘세종 대왕’ 한 분만 계시면 학교 안에선 근 20명이, 학교 밖에서도 8명이 넉넉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서울 출신이거나 서울에 끈이 있는 학생들은 당시만 해도 ‘몰래바이트’라 불렸던 과외를 하면서 한 달에 25-30만 원의 고소득을 올렸다. 밥값에 비추어 그 시세를 가늠해 보면 요즘 돈 100-120만 원의 짭짤한 수익인 셈이었다. 데모로 … [Read more...] about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프리다 칼로의 사랑: 어느 지독한 평화의 끝
신영복 교수님의 회고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와. 감옥에 있을 때 함께 지낸 수인 중에 ‘대의(大義)’라는 이름의 절도 3범이 있었다지. 신영복 교수는 그런 이름을 지어 준 아버지의 뜻과 지금의 수인의 모습을 대비하면서 ‘참 네 아버지 가슴 아프시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하루는 넌지시 누가 그 이름을 지었냐 물어봤더니 대단히 기분 나빠하면서 광주 도청 앞 대의파출소에 버려졌기에 그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대답했대. 신영복 교수는 이에 문자로 사람을 읽으려 했던 먹물로서의 관념성을 뼈아프게 … [Read more...] about 프리다 칼로의 사랑: 어느 지독한 평화의 끝
개미 아저씨의 사랑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전쟁 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 나는 지금은 사라진 알래스카 순대라는 함경도 순대집을 촬영 중이었는데 식당 한켠 높다랗게 올려져 있던 작은 TV 화면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에 나와 감개무량하게 아래를 굽어 보는 장면부터 예상을 깨고 공항에 나온 김정일 위원장이 박수를 치던 순간까지 생생히 지켜 봤었지. 아마 그 순간은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고 기억하는 광경이리라 … [Read more...] about 개미 아저씨의 사랑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기까지
1988년 5월 15일 한겨레 신문 창간 대학 신입생 시절 부산에 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닥 좋은 점이 못되었다. 대학생이 됐답시고 전국을 헤매고 다니던 대학 친구들의 여행 종착지가 대개 부산이었고 나는 손님 치르다가 여름 방학을 다 보냈으니까. 그중에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하고 있는 광주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이 녀석이 부산을 떠나던 날 터미널에서 조금 낭패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신문이나 하나 사야 쓰겄다.”라는 말을 남기고 매점으로 간 녀석이 주인과 말을 꽤 오래 섞는 걸 보고 뭘 … [Read more...] about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기까지
김해성 목사 단상
17년 쯤 전의 9월 어느 날이었다. 성남 모처에서 아이템이 될 만한 결혼식이 열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합동 결혼식이었다. 신부는 전원 한국 여성들이었고, 이미 동거 중이었거나 아이들을 거느린 부부도 있었다.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적이었지만 한국말들을 꽤 잘 했고 결혼식 후 피로연 때 맥주를 들이키면서 신부측 어르신들 앞에서 돌려 마실 줄도 아는, 거지반 한국 사람들이 다 된 이들이었다. 각 나라의 민속춤과 노래까지 곁들여진 행사를 마치고 행사 주관자의 인터뷰를 … [Read more...] about 김해성 목사 단상
구봉서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추억이 역사가 되는 순간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왕년의 스타 최곤 역으로 나오는 박중훈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뭐든 처음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첫사랑 첫키스 등을 얘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무척 공감했었다. 맞다. 뭐든 '처음', '첫'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들은 뭐든 추억의 대상이 된다. 빵잽이들도 첫 입감 시절을 선명히 기억할 것이고 골초들도 첫담배의 뿅가는 맛을 잊지 못할 테니까. 생애 첫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그 의미로 남아 있는 프로그램은 <웃으면 복이와요>다. 이 … [Read more...] about 구봉서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추억이 역사가 되는 순간
두려움과 거리낌이 사라진 시대
말 한 마디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은 우리 곁에도 많거니와 역사를 바꾼 말 한 마디도 부지기수다. 물론 말 한 마디 때문에 없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바싹 마른 들에 기름까지 뿌려진 위에 떨어지는 불씨 하나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 불씨 없이는 불이 나지 않는다. 1987년 6월 항쟁 때 사람들을 격동시킨 한 마디는 “탁 치니 억”이었다. 그래도 명색 치안 총수가 4천만을 상대로 팔팔한 청년이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고 엄숙하게 거짓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치를 떨기 … [Read more...] about 두려움과 거리낌이 사라진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