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왕년의 스타 최곤 역으로 나오는 박중훈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뭐든 처음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첫사랑 첫키스 등을 얘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무척 공감했었다. 맞다. 뭐든 ‘처음’, ‘첫’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들은 뭐든 추억의 대상이 된다. 빵잽이들도 첫 입감 시절을 선명히 기억할 것이고 골초들도 첫담배의 뿅가는 맛을 잊지 못할 테니까.
생애 첫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그 의미로 남아 있는 프로그램은 <웃으면 복이와요>다. 이 프로그램이 1969년 8월 14일 시작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는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고 TV라는 것을 주목하고 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선명히 기억하는 코너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세계 각국의 시계를 비교하는 거였다. 한국은 ‘똑 딱 똑 딱’ 하며 시계가 가는데 왜상투 가발을 쓰고 나온 땅딸이 이기동의 시계는 ‘똑이노 딱이노’ 하고 간다. 그리고 중국 시계는 ‘똑이니 해서 딱이다 해’ 뭐 이런 식이었다. 막판에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온 비실비실 배삼룡의 북한 시계는 가장 늦게 가는 시계였다. ‘똑이니끼니… 딱이야요.’
막둥이 구봉서(영화 <5형제>에서 막둥이로 나와 생긴 이 별명은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최근까지 그분의 별명으로 남았다) ,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병따개 없으면 못 마신다던 살살이 서영춘, 눈을 떼굴떼굴 굴리다가 뒤로 넘어가는 연기가 일품이었던 땅딸이 이기동, 말할 필요가 없는 비실비실 배삼룡, 젊은날의 배일집, 배연정 등의 모습은 지금도 선연히 남아 있거니와, 그 탄생 시기로 비추어 말할 수 있듯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독재 체제로 넘어가는 시간을 관통하며 엄혹한 시기 한국인의 웃음보를 간질여 주었다.
그 일례를 하나 더 들어보면 나 또래의 한국인들에게는 <유머 1번지>에서 김형곤이 리메이크했던 ‘김수한무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캉,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의 오리지날은 <웃으면 복이와요>였다. 아버지 구봉서가 새로이 얻은 아들의 수명이 길기를 바라며 십장생과 성경 속의 장수자 므두셀라와 별의 별 이름들을 다 갖다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다가 날이 새던 코미디. 그 리듬감(?)과 늘어지는 단어들을 들으며 얼마나 배를 쥐고 웃었던지.
그렇게 3천만의 벗이었던 <웃으면 복이 와요>를 원수처럼 미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웃음’을 적으로 삼았던 <장미의 이름>의 살인자 호르헤 수도사처럼 <웃으면 복이 와요>가 유발하는 웃음을 경멸하고 그것들이 국민을 ‘저질화’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초에 <웃으면 복이 와요>가 편성될 때 간부들 거개가 반대했다고 하거니와 당시로서는 귀했던 TV에 어디 ‘유랑극단’을 들여놓느냐는 부만이 컸다고 한다. 정부의 나으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유치한 언동 애드리브에 의한 저속한 대화, 아동 교육상 악영향을 줄수있는 작희적(作戱的) 언행”을 피하라는 경고가 수시로 내려오더니, 1977년 모든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명령이 위로부터 떨어진다.
이때 어떤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구봉서가 “택시 하나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택시를 다 없앨 수 있습니까.”라고 읍소하자 박정희는 “누가 없애라고 했어요? 알았소.” 한 마디 했고, ‘1사 1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규제가 완화되어 코미디 프로그램은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병원비가 없어 병원에 인질로 잡혀있다시피 하다가 죽어갔다는 비실비실 배삼룡의 경우 <웃으면 복이와요>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라 할 만 했다. TBC는 당시로서는 만화에서도 드물던 ‘백지수표’를 들이밀며 배삼룡을 유혹했고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의 걸출한 PD 김경태가 TBC로 옮기면서 배삼룡은 TBC로 둥지를 바꿀 생각을 했다.
하지만 MBC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어느날 다른 방송국의 공개방송을 하고 나오던 배삼룡을 두고 일대 추격전과 육탄전이 벌어졌다. 양측 30여명의 직원들이 배삼룡을 놓고 혈투를 벌인 것이다. 이 극강의 스트레스를 못이긴 배삼룡은 졸도해 버렸고 양 방송사는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태 이후 배삼룡의 선택은 고향 MBC였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설이 따라붙는다. 또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웃으면 복이 와요>를 시청하는데 배삼룡이 보이지 않자 “어 비실비실 배삼룡이 어디 갔나?” 한 마디 했고 이에 청와대 직원들이 득달같이 전화통을 돌려 “야 배삼룡이 왜 <웃으면 복이 와요>에 안 나와? 각하가 물으시잖아! 당장 담주에 대령시켜.” 뭐 이렇게 했고 결국 배삼룡은 이를 거역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은 전설이지만 전설은 대개 진실을 내포한다. “모든 코미디 싹 없애 버려.”와 “그랬어? 그럼 한 회사당 하나는 놔 둬”라는 명령이 통하던 시절 “걔 왜 안 보이지?” 최고 권력자의 한 마디에 경호실이 “글쎄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을 리는 결코 없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빚어낸 전설이니까.
그 시절의 유신 체제는 오늘날의 김정은 체제 못지 않은 왕정에 가까운 체제였다. ‘어른’의 심기에 어긋나는 프로그램은 그날로 종영이었고, 어른의 성대모사를 감히 감행한 남보원의 경우 박정희 앞에서 다시 성대모사를 하고 “잘하네!” 하며 용서(?)를 받던 날까지 “난 죽었다.”는 긴장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시절을 댓글로 재연한 국정원이 엄존한 오늘, <웃으면 복이 와요> 시절 코미디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웃으면 복이와요>가 아니라 <개기면 큰일 나요>의 시대를 그분들은 꿈꾸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원문: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