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이라는 미드가 있어. 내용을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대충 몇 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중세 유럽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야. 이제 시즌 4까지 나왔으니까 기회 있으면 한 번 보고.
이 미드의 주요 인물로 매우 귀한 가문 출신의 총명한 젊은이가 등장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난쟁이다. 그런데 난쟁이의 친누나와 형이 함께 침대를 뒹구는 사이로 설정돼 있지. 근친혼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무척 친숙한 가문인 셈이야.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전혀 엉뚱한 사람 하나를 떠올렸어. 바로 프랑스의 화가 로트렉이야.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귀족물 뚝뚝 떨어지는 이름에서 보듯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역시 사촌 간이었던 부모의 근친혼 때문일까 유전적인 질병을 지니고 태어나 뼈가 잘 부러지고 다리가 자라지 않는 병이었지. 그는 장성해서도 키가 150센티를 겨우 넘었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그냥 앞으로 고꾸라지는 가련한 신세였어. 아버지는 이런 자식을 꼴도 보기 싫어했고 평생 외면했다고 해. 로트렉이 서른일곱 살 되던 해 1901년의 9월 9일 세상을 뜰 때 얼굴을 비칠 정도였다니.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서 경제적으로 곤궁함은 없었지만 “내가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면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로트렉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장애는 그에게 좌절의 저주와 예술혼의 축복을 동시에 안겨다 주었지. 그가 보통의 귀족 청년이었다면 평생 우아한 파티와 귀부인과의 로맨스로 점철된 삶을 살았겠지만, 창녀와 무희와 광대를 소재로 생생한 그림을 그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물랭 루즈의 인상 깊은 포스터들도 남기지 못했을 테고 아울러 내가 그를 기억할 일도 없는 거 아니겠어.
아울러 고흐 같은 불우한 청년과 영혼을 나누는 친교를 맺지도 못했겠지. 어떤 모임에서 로트렉은 고흐에게 독설을 퍼붓는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애걔걔 그 몸으로!) 만용을 부릴 정도였다고 하니까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겠지? 아 결투를 했냐고? 아니. “로트렉이 이 결투에서 변을 당한다면 내가 복수하겠다!”고 나서준 떡대 친구 덕에 무사했어.
그의 그림에는 많은 여인들이 등장했다. 우리가 아는 캉캉 춤을 개발했다고 알려진 라글뤼, 물랭루즈의 유명한 무희 잔 아브릴을 비롯한 많은 여인들이 그녀의 모델이 됐지. 하지만 그 모델들은 우아하게 포장된 게 아니라 질릴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됐어. 아니 오히려 추하게. 왜 그렇게 모델을 예쁘게 그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추하게 표현하느냐는 질문에 로트렉의 대답은 냉소 그 자체. “실제로 추하니까.”
로트렉은 그렇게 여자들을 즐겨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 짧은 다리로 걷어차는 흉내를 내기를 잘했다. 자존심이었을까 자괴감이었을까.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한 여인이 있었어. 수잔 발라동, 그녀는 로트렉과는 정반대의 출신 성분이었어. 사생아로 태어나 청소부였고 직공이었고 심지어 곡예사까지도 두루 섭렵했으니 당시 사회의 맨 밑바닥을 쓰는 인생이었던 셈이지. 곡예 중 몸을 다쳐 새롭게 찾은 직업이 모델이었어.
거친 삶을 헤쳐나온 그녀는 화가들에게 뭔가 새로운 영감을 준다. 우아하지는 않으나 건강한, 아름답지는 않으나 강렬한 그녀의 모습은 드가나 르누아르나 로트렉, 심지어 반 고흐에게도 어필하게 됐지. 그리고 동시에 모두의 정부이기도 했다. 발라동은 사생아를 낳는데 그 아버지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그녀를 모델로 삼았던 모든 화가들이 들먹여지니까.
그런데 그녀는 모델 일을 하면서 데생을 익히게 되는데 꽤 재능을 발휘해. 화가 샤반의 경우 그녀가 건방지게 화가를 흉내 낸다고 엄청나게 화를 냈고 그녀가 르누아르에게 가게 만들지. 르누아르는 그녀를 참 예쁘게, 아름답게 그려낸 화가였어. 물론 애인이었고. 르누아르의 아내가 발라동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낼 때까지 말이지.
그리고 만난 게 로트렉. 발라동은 로트렉의 그림에서 또 다른 자신, 아니 자기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발견하게 돼. 우아한 무도회에서 춤추는 자기가 아니라 낡아빠지고 다 해진 옷을 입고 있으나 삶에 대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 피곤하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 눈동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민 강렬한 턱.
발라동은 로트렉을 사랑하게 돼. ‘몽마르뜨의 뮤즈’라고 불리울 정도로 뭇 화가와 음악가의 사랑을 받았던 이 미인은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의 여인은 로트렉에게 올인한다. 뭐랄까 묘한 동병상련도 느끼지 않았을까? 운명과 맞서 헤치고 나와야 했던 자신과 타고난 신분을 거슬러 살아야 했던 예술가를 보면서 말이지. 그녀에게 ‘수잔’의 이름을 붙여 준 것도 로트렉이었지. 수잔은 로트렉에게 청혼해. 그러나 로트렉은 완강히 거절한다. 심지어 수잔이 자살 소동을 벌여도 로트렉은 외면하지. 왜 그랬을까. 로트렉의 유일한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수잔, 그리고 뭇 화가들의 우상 같은 애인이었던 수잔을 왜 거절했을까…
많은 이들도 그렇게 여기지만 나 역시 자격지심이었을 것 같다.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여자와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여자의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행복할까.” 그 모든 대답에서 로트렉의 대답은 ‘농’이었겠지. 오히려 그녀를 사랑할수록 더 멀어지고 싶고 그녀를 사랑할수록 자신의 다리가 원망스러웠겠지.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 목이라도 부러지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추하니까” 추하게 그린다던 그는 어쩌면 남루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인들의 노골적인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르고 괴로움과 허전함이 뒤섞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술을 있는 대로 들이켰을 거야. 결국 알코올 중독과 폐결핵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가느다란 신음을 토하며 마지막이나마 아들 얼굴 보자고 찾아온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돌보고 사랑했던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로트렉은 이렇게 말하고 세상을 끝맺는다. “엄마. 당신밖에 없군요. 죽는 건 너무 괴로워요.”
후일 수잔 발라동 역시 화가가 됐고 (그녀의 그림을 본 드가는 “당신도 이제 우리 부류군!”이라고 환호했다지) 그의 사생아 역시 화가가 된다. 그 아들의 이름은 모리스 위트릴로라고 하는데 그는 10대에 벌써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막 나가는 친구였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붓을 든 후 화가로서 제구실을 하게 됐다고 하네.
그즈음 수잔이 남겼다는 한마디는 어쩌면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잇는 몽마르뜨와 물랑루즈에서 종횡무진으로 그어진 예술가들의 슬프고도 비루한 사랑과 예술을 잘 정리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로트렉의 유언에 댓구라도 되는 듯한 말이야. “예술은 우리들이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만든다.”
원문: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