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루의 과업을 수행해가며, 캘린더에 빼곡히 적힌 일정을 쳐내기 바쁘며 그러다 주말과 같은 휴식이 주어지면 피곤하고 지친 몸을 해소하기 위해 잠을 자기 바쁘다. 또한 잠자는 이외의 시간에는 역시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다. 아니, 해야만 한다고 느끼기에 바쁘다. 우리에겐 어쩌면 휴식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정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수십 년 생애 동안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요와 압박감에 짓눌려왔다. … [Read more...] about ‘안경’: 그냥 기다릴 뿐입니다, 흘러가 버리는 것을
영화
사람을 소비품으로 다룬 정부 : 「서산개척단」
1960년대 초, 5.16쿠데타의 성공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전국 140곳에 달하는 지역에서 간척 사업을 시작한다. 간척사업은 한국전쟁 직후이기에 제대로 된 중장비도, 기술도 없이 오로지 인력으로만 진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위해 길거리의 부랑아들을 교화시키고 자활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납치해 곳곳에 투입하여 맨손으로 땅을 개척하게 했다. <블랙 딜> 등 한국의 다양한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조훈 감독의 신작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 [Read more...] about 사람을 소비품으로 다룬 정부 : 「서산개척단」
끔찍한 고통을 안고도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위대함
할머니들의 일상은 소소하고 평범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자식들과 대화하고 손주들과 놀아주며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소박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만 꺼내면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말을 피하다가 화를 내기도 했고 눈물을 보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70년 전 새겨진 몸과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그들의 삶을 옥죄었다. 한중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22’는 중국에 남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2014년 촬영 당시 생존자 22명이 작품의 제목이 됐다. … [Read more...] about 끔찍한 고통을 안고도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위대함
필요한 이야기, 안일한 접근: 「플라스틱 차이나」
중국은 유럽을 비롯해 한국, 미국, 일본의 가장 큰 쓰레기 수입국이다. 왕 지우 리왕의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는 이러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어 산둥에 있는 어느 재활용 비닐 공장을 비춘다. 카메라는 사장인 쿤, 직원인 펭, 펭의 딸인 이 지에를 주인공 삼아 공장에서의 일상을 그려낸다. 한없이 쌓인 비닐 쓰레기 사이에서 노는 이 지에를 비롯한 아이들, 비닐 쓰레기들을 재활용해 다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일을 하는 쿤과 펭, 그리고 둘의 아내들. 쿤은 공장을 통해 번 돈으로 … [Read more...] about 필요한 이야기, 안일한 접근: 「플라스틱 차이나」
만화 원작 실사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따라간 「인랑」
※ 영화 <인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이 개봉했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연출한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명성과 화려한 캐스팅에 힘입어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됐었다. 재작년 개봉한 <밀정>으로 본인의 최고 관객 수 동원 기록을 경신한 김지운 본인에게도 <인랑>은 꽤나 중요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랑>은 … [Read more...] about 만화 원작 실사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따라간 「인랑」
‘쓰레기 악취’ 뒤에 숨은 ‘인간 착취’ 구조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중국 왕지우량 감독 작품 〈플라스틱 차이나〉가 다시 주목받았다. 2016년에 발표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지난해 제14회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국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전년도 수상작이 올해 대상 작품을 밀어내고 다시 우리 언론의 관심을 받은 건 최근 불거진 재활용품 수거대란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대개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중국의 쓰레기 수입 금지 조처를 이끈 영화’라는 평가로 시작해, 폐비닐 재활용 공장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 [Read more...] about ‘쓰레기 악취’ 뒤에 숨은 ‘인간 착취’ 구조
오늘만은 ‘레즈비언’이 주인공, 스크린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서울프라이드영화제와 손잡고 스크린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성 소수자를 뜻하는 ‘퀴어’를 소재로 한 영화, 그중에서도 ‘레즈비언’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오는 27~29일 사흘간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기획전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18’를 통해 장편 3개, 단편 5개 등이 상영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장편 3편은 △국내 최초의 퀴어 영화로 두 여성의 기묘한 동거를 그린 ‘금욕(1976, 감독 김수형)’ △소녀와 … [Read more...] about 오늘만은 ‘레즈비언’이 주인공, 스크린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1년에 1만 명, 한국 찾는 ‘난민’을 아시나요
3만 2,733건. 한국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3년간 접수받은 난민 신청 건수다. 같은 기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792명으로 전체의 2.4%에 불과하다. 지난 한 해 동안에는 9,942명이 신청했지만 121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전 세계 난민 인정률이 38%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난민 인정 부문에서 폐쇄적인 태도를 취한다. ‘난민’이란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자연재해,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을 … [Read more...] about 1년에 1만 명, 한국 찾는 ‘난민’을 아시나요
‘버닝’ 탁월함과 교차하는 무지함이 보여주는 자리
※ 이 글은 영화 〈버닝〉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면 이 글을 닫아 주세요. 서사를 감싸는 무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설가 출신의 감독이라 그런지 영화적 이미지가 문자에 끌려다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사 리얼리즘적 문예 영화의 업그레이드판이 왠지 이창동의 영화 같았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에서 영화가 소설과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알 수가 … [Read more...] about ‘버닝’ 탁월함과 교차하는 무지함이 보여주는 자리
영화 ‘독전’에 대한 이상한 변명
※ 이 글은 영화 〈독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면 이 글을 닫아 주세요. 〈독전〉의 초반부를 보며 뭐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있나 생각을 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었고 이야기는 단선적이었다. 연기가 전체적으로 적절하지 못했는데, 특히 중국 측 마약상 진하림(김주혁 分)과 그의 애인 보령(진서연 分)의 연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다. 폭발하듯 미친놈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몰입이 살짝 부족해 보여 오히려 더 보기 힘들었다. 조선족이라 … [Read more...] about 영화 ‘독전’에 대한 이상한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