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중국 왕지우량 감독 작품 〈플라스틱 차이나〉가 다시 주목받았다. 2016년에 발표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지난해 제14회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국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전년도 수상작이 올해 대상 작품을 밀어내고 다시 우리 언론의 관심을 받은 건 최근 불거진 재활용품 수거대란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대개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중국의 쓰레기 수입 금지 조처를 이끈 영화’라는 평가로 시작해, 폐비닐 재활용 공장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충격을 표한 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자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 식이다. 이런 보도는 우리 동네 쓰레기 악취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이 영화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기호는 다큐 속 노동자와 가족의 삶을 비참하게 그리고, 환경오염문제를 부각하는 기능을 잘 수행한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면 다큐 속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질까? 이 영화에서 ‘쓰레기’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산업구조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배경이라는 게 역설적이지만.
플라스틱 줄이면 공장 아이들은 행복할까
관객에게 영화 속 장면은 비참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정작 폐비닐 재활용 공장 사장 쿤과 노동자 펭 가족에게 쓰레기는 별 게 아니다. 물론 종일 쓰레기 더미를 뒹굴다 보면 ‘더럽고 역겹기도’ 하지만, 쿤의 말처럼 어쨌거나 이 일은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이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해야 하는 일이다. 노동자 펭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는 아이들에게도 일상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펭의 아들 아쯔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폐비닐 더미를 덮으면 “따뜻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쓰레기가 담긴 구정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오염된 주변 하천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잡아 튀겨 먹는다. 쓰레기 더미에서 글을 배우기도 하고, 인형이나 장난감이 나오면 즐겁게 갖고 논다.
이들 가족을 정말 괴롭게 하는 건 쓰레기보다 돈이다. 영화는 가난한 사장 쿤과 더 가난한 노동자 펭, 두 가족의 삶을 번갈아 때로는 함께 비추며 돈과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 쿤이 일당을 30위안(약 5,000원)에서 50위안(약 8,300원)으로 올려달라는 펭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손찌검을 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둘은 4년간 쓰레기 재활용 공장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다. 펭의 아내는 쿤 어머니의 도움으로 넷째 딸을 낳고, 두 가족은 함께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한다. 쿤은 자기 아들 치치를 학교에 보내면서도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펭의 큰딸 이지에가 못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쿤도 쓰레기를 재활용해 국가에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신세다. 사장이지만 돈이 없어 낡은 봉고차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험한 노동으로 몸이 성한 데가 없어도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게 될까 봐 병원에도 함부로 못 간다. 쿤의 공장에서 재활용된 폐비닐을 매입하는 상인은 좀체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 쓰레기를 사 오는 값이 더 들 때도 있다.
자기가 부리는 노동자가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쿤의 모습은 수많은 갑질과 을질에 지친 ‘병’이 ‘정’에게 가하는 ‘수평 폭력’이다. 쿤은 실제로 제값을 쳐주지 않는 상인과 폐비닐 재활용으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국가보다 펭이 일을 잘하지 못해서 자신이 손해를 봤다고 여긴다.
강자는 늘 약자 착취 구조를 은폐한다
‘병’이 ‘정’에게 가하는 폭력은 누구의 잘못일까? 다큐는 가난한 쿤과 더 가난한 펭의 삶을 계속 대비한다. 펭의 딸인 열한 살 이지에는 학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는 아빠 사정을 알기에 속내를 감춘다. 쿤은 그런 이지에가 안쓰러워 치치 학교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펭은 이지에가 학교에 가면 더욱 열패감이 들까 봐 화를 내며 윽박지른다.
아이에게 성을 낸 게 못내 미안했는지 자기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며 애써 스스로 위안하다가도 이내 “자식들이 똑똑하고 사랑스럽다”며 돈이 없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아이들은 고향 쓰촨에 가자는 펭의 말에 신나 기차역으로 향하지만, 표를 살 돈이 없어 결국 되돌아온다. 이런 현실을 사는 이지에와 남동생 아쯔의 목표는 빨리 돈을 버는 것뿐이다.
살기 어렵기는 쿤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늘 ‘갑’의 삶을 꿈꾼다. 새 차를 사고 싶은 욕심에 가족을 데리고 찾은 모터쇼 현장. 쿤은 45만 위안(약 7,600만 원)짜리 지프를 보고 “이 차 사려면 10년은 걸리겠다”면서도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그는 당장 아픈 몸을 치료하러 병원에 갈 여유도 없지만 “제일 못사는 사람도 차는 있다”며 대출을 받아 빨간색 세단을 산다.
결코 갑이 될 수 없는 쿤과 쿤의 삶마저 꿈꿀 수 없는 펭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정신 승리’만을 강요한다. 평생 마오쩌둥을 보는 게 소원인 어머니를 데리고 베이징으로 간 쿤은 천안문 광장에 쓰인 현판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18대 당 대회 정신: 모두 샤오캉(小康) 생활을 누린다. / 샤오캉 생활은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다.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줄 나라를 찾는 한국, 일본, 유럽, 미국과 이를 긁어모아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중국.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을 부르짖는 이들 국가는 산둥성 5,000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쿤과 펭의 삶에 관심이 없다. 영화 개봉 당시 중국이 상영금지 처분을 내린 것도 국가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까 두려워서다.
이후 영화가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해외에서 주목받고 인터넷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산둥성 지역의 쓰레기 재활용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도록 장려했다.
쓰레기 공장을 떠나 새 일거리를 찾은 노동자들은 이제 희망을 얻고 행복해졌을까? 어쩌면 그렇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택시를 타고 베이징 시내를 둘러보던 쿤이 아들 치치에게 한 말을 곱씹어보면.
베이징은 고층 빌딩도 있고, 좋은 차도 많고, 부자들이 사는 곳이야. 점심 어땠어? 비싼 거라서 맛있었지?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 나중에 크면 베이징에서 살지. 공부 잘해서 베이징대를 들어가야 집이랑 차도 사고, 우리도 부자로 살 수 있어.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나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