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 살인사건>이었나, 그냥저냥 여름밤 납량특집으로 봤던 영화가 있었다. 실화라고 뻥을 치는 마케팅으로 화제를 낳았던 영화였는데 너무 피칠갑이 진해서 보기에 좀 편치 않았던 영화였다. 거기에 보면 영화의 주요한 복선 중 하나로 “이장이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 놨다.”는 쪽지가 등장한다. 그 정체는 임상실험용 약이었고 그 약의 부작용으로 환각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를 처참하게 난도질하며 죽어간다.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놓은 결과였다. 1948년 4월 3일 … [Read more...] about 4.3의 아픔: 수십만 명 민간인을 학살한 극한 대립의 탄생
안중근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일본인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가 아니고 안중근 의거 사형 선고일이다 등등의 분연한 소리가 들리길래 어 그런가 하고는 곧바로 혼잣말을 했다. 근데 왜. 중요한 건 날짜가 아니고 안중근이라는 사람의 행적일 것이고 그 일생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되돌아보는 일일 테고 모월 모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냐는 호통은 별반 영양가 없다. 영화 <한반도>에서처럼. 그래도 어쨌건 알게 됐으니 고맙게 몇 자 덧붙인다. 2월 14일 주로 매스컴과 담벼락에 등장한 인물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 [Read more...] about 안중근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일본인
강기훈의 무죄와 드레퓌스의 무죄
1894년 프랑스 정보 요원이 누군가가 독일 무관에게 보내는 기밀 문서를 훔쳐 내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정보국의 수사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스파이를 찾은 끝에 범인을 잡아냈는데 근거는 그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체 말고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는 빌어먹을 유태인이었다. 간첩과 필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참모 본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 증거를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 보다 확실한 증거의 공개를 요청하는 이들의 요청을 무시했다. 나아가 "이것은 … [Read more...] about 강기훈의 무죄와 드레퓌스의 무죄
우리가 <또 하나의 약속>을 봐야 하는 이유
영화 <변호인>과 노무현의 실제 모습 영화 <변호인>의 말미에 ‘송변’이 달려드는 전경들 앞에서 시민 동지 여러분을 부르짖으며 용감하게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송 변호사는 구속되고 그를 변호하고자 수십 명의 변호사가 출석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송변 (노무현)은 그날 구속되지 않는다. 1987년 2월 7일 부산에서는 부마항쟁 이후 최대를 헤아리는 인파가 고문으로 숨져간 부산의 아들 박종철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 [Read more...] about 우리가 <또 하나의 약속>을 봐야 하는 이유
경성을 뒤흔든 10일: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삶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날카로운 눈매에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한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도 일시에 숙연해졌다. 비장한 한 마디를 남긴 사람의 이름은 김상옥. 그가 말한 '거사'는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국내로 잠입하여 사이토 총독을 죽이겠다는 것. 그를 위해 마련된 권총 4정과 실탄 800발과 폭탄이 담긴 나무 상자를 매만지던 그의 머리 속에는 잡다한 … [Read more...] about 경성을 뒤흔든 10일: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삶
불에 탄 호루라기: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자살의 진실
원칙과 상식을 주창하는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때 이른 봄기운처럼 엄동의 겨울을 감싸고 있던 2003년 1월 9일 새벽, 경남 창원의 드넓은 두산중공업 공장 한 귀퉁이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출근도 하기 전이었던지라 불길은 태울 것을 마음껏 태웠다. 그 자리에서 발견된 것은 나이 쉰의 노동자 배달호의 검게 탄 시신이었다. 1월 9일 새벽 5시 그는 채 잠이 덜 깬 아내와 두 딸에게 뽀뽀를 하고서 출근해서 인적 없는 공장을 걸었다. 한때 잠바 … [Read more...] about 불에 탄 호루라기: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자살의 진실
박종철 그리고 사람들
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한, 그래서 용감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차고 넘쳤던 한 대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름은 박종철. 그는 짐승이라는 표현이 과히 모자라지 않는 경찰들에게 물고문을 당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는 무슨 사건의 범인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용의자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참고인'이었다. 그런 젊은이를 고문을 해서 생똥을 지리게 하는 고통 끝에 세상을 등지게 한 경찰들에게 '짐승'이라는 표현을 부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일이 아니리라. 87년 1월의 … [Read more...] about 박종철 그리고 사람들
1950년 12월 25일 거제도의 크리스마스
지방 출장 다니던 무렵, 별로 가기 싫은, 즉 걸리면 떨떠름한 지역이 있었다. 거제와 울산이다. 이유는 딱 하나, 물가가 턱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여인숙급의 여관에서 자려면 다른 지역의 호텔급 모텔비를 내야 했고 식비도 다른 지역에 비해 은근히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거제가 조금 더 심했다. (울산은 그래도 광역시라 좀 넓어서) “여기는 국민소득 3만불 지역이야.” 전국을 돌아다닌 경험이 많으신 기장님들의 푸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인심도 좀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 [Read more...] about 1950년 12월 25일 거제도의 크리스마스
2003년 10월 14일 신당동의 기적
누구에게나 좋은 기억은 있다. 힘겹거나 슬플 때 문득 눈을 감으면 홀연히 되살아나 어깨를 두드리고, 모니터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 놨다가 들춰 보며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하며 지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기억, 아무리 부대끼고 속시끄러워도 그곳 생각에 이르면 그냥 키득거려지고 다물린 입이 벌어지는 그런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재생산해 주는 지점들은 우리 뇌리 속에 도로변 ‘쉬어가는 곳’처럼 남아 있다. 2003년 10월 14일은 참으로 팍팍하고 겁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누가 휘두른 묻지 마 칼날에 … [Read more...] about 2003년 10월 14일 신당동의 기적
육영수 암살범, 문세광을 바꾼 것과 문세광이 바꾼 것
하던 얘기 계속하겠습니다. 1974년 8월 15일도 역시 광복절이었다. 그 해 광복절에는 경사가 하나 더 있었다. 1호선 지하철이 일부 완공됨으로써 서울의 지하세계(?)에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를 달렸던 지하철의 탄생은 당연히 장안의 화제였고 대통령 각하께서 그 ‘시승식’을 거행하는 것은 더욱 응당한 일이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다른 양복짜리들이 다 서 있는 가운데 각하 혼자서만 자리에 홀로 앉아 감회에 젖어 계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시간이 11시 10분경. … [Read more...] about 육영수 암살범, 문세광을 바꾼 것과 문세광이 바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