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한, 그래서 용감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차고 넘쳤던 한 대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름은 박종철. 그는 짐승이라는 표현이 과히 모자라지 않는 경찰들에게 물고문을 당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는 무슨 사건의 범인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용의자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참고인’이었다. 그런 젊은이를 고문을 해서 생똥을 지리게 하는 고통 끝에 세상을 등지게 한 경찰들에게 ‘짐승’이라는 표현을 부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일이 아니리라.
87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누군가 꽁꽁 숨기려 했던 죽음의 머리카락이 세상에 삐져나왔던 기사를 보았다. 우리 집의 구독 신문이 중앙일보였던 것이다. 그 제목까지도 선연하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 쇼크사라는 단어에 따옴표가 쳐져 있던 게 특이했었다. 왜 따옴표를 쳤을까. 보도지침이 종횡으로 난무하던 시절 그 강조 따옴표는 마치 쇼크사란다 글쎄~~~ 하는 비아냥처럼 들렸던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밥상에서 신문 기사를 읽던 아버지도 비슷하셨나보다. “살다 살다 쇼크사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 보네.” 박종철의 이름은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그 며칠 후 한 줌 재가 되어 “언 강 바다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간” 박종철이.
그의 삶과 죽음은 한겨레 신문에서 그 아버지의 육성으로 복구되었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념되고 있으므로 따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죽음과 관련되어 내 주위에서 보고, 내 귀에 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해 보자. 그 첫 마디이자 첫 사람. “탁 치니 억”의 강민창.
그 이름을 기억하는 건 박종철 이전부터 어깨에 무지막지하게 큰 무궁화 네 개를 달고 허구헌날 방송에 출연해서는 원천봉쇄와 강경대응을 무표정한 얼굴과 기계음같은 목소리로 되풀이 읊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에는 ‘치한(恥漢 )본부장”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운동권들의 음모라고 읊던 사람이고, 10월 28일 건대항쟁 때에는 하루에 무려 1300명이 넘는 대학생을 일시에 구속시키는 일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아침 만원버스에서 라디오 뉴스에서 그 강민창의 “탁 치니 억”을 들으며 등교를 한 날, 첫 시간이 국어였다. 국어 선생님은 성큼성큼 들어오시자마자 갑자기 출석부를 교탁에 있는 힘껏 내리쳐서 엄청난 소리를 냈다. 평소에 난폭한(?) 선생님이 아니시기에 와 저카지? 기겁을 하고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선생님이 피식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탁 쳤는데 와 억 하고 안죽노.”
강민창은 추후 구속됐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믿은 것이냐고. 그래도 믿었다고 한다면 장유유서 경로사상 따위 무시하고 뺨을 때려 주고 싶다. 이 뺨은 당신의 어깨에 달렸던 왕별 무궁화가 때리는 것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당신의 제복이 부끄러워 내게 부탁한 것이라고 말이다.
박종철의 죽음이 발원지가 되었던 87년 6월이라는 장강의 물결은 나에게는 매우 괴로운 기간이다. 툭하면 교통이 마비되고 대중교통이 끊기는 통에 꽤 먼 거리를 하영 걸어서 귀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평생 가장 빨리 달렸던 기억 중의 하나는 최루탄 가스가 너무 숨이 막혀서 경찰에게 “이건 좀 심한 거 아잉교”라고 불평한 직후다. 쉬고 있던 너덧 명의 전경이 “저 새끼 잡아.”라고 일어섰고 나는 미친 듯이 도망갔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 왈 “무협지에 나오는 경공”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면 근처의 한 골목, 이른바 ‘백골단’이 그 앞에 버티고 서서 학생 하나를 짓밟으면서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놔 이 개새끼야 빨리 안 놔….”
유달리 사랑의 매(?)를 잘 들었던 선생님들 탓에 어지간한 폭력씬은 대수롭지 않은 처지였던 내가 기가 질릴만큼 그 구타는 끔찍했다. 사색이 되어 그를 지켜보고 있던 내 눈에 학생이 끌어안고 있던 물건이 포착되었다. 눈동자에 촛점이 나가고 입에서 피거품이 나올 지경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꽉 쥐고 놓지 않고 있던 것은 박종철 영정의 초상화 액자였다. 백골단은 빼앗으려고는 들지 않고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학생을 폭행했다. 아마도 항복을 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장장 15분 넘는 폭행 끝에 백골단은 액자를 손에 넣고 박살을 냈다.
박종철은 누군가를 잡아들이기 위한 참고인일 뿐이라고 했었다. 경찰들이 박종철로부터 뽑아내려 했고, 박종철이 목숨으로 그를 지키려 했던 그 누군가가 있었다. 박종운. 그는 한나라당의 지구당 위원장과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한나라당의 간판 아래 들었다고 하여 박종철을 배신했다고 지레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박종철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사람이라면 좀 다른 삶을 살아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내가 그의 인생을 한 낱도 모르는데 시시비비를 가릴 의사는 없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적잖이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돈으로 투표함으로써, 누가 소비자인 우리에게 더 봉사를 잘하는가, 또 더 만족스럽고 품질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누가 생산하는 것이 좋은가를 결정하는 자율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다. 맛없는 음식점에 가지 않으면 결국엔 그 음식점이 문을 닫게 되듯이, 휴대폰을 우리가 사주기 때문에 이건희가 부자가 되듯이, 시장경제는 정성이 부족한 자는 외면하고 충성심이 투철한 자에게 보상을 내릴 뿐이다. 또 부를 창출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체제다. 이보다 더 ‘인간 존중적인’ 제도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가장 잘 돌아가던 때는 다름아닌 전두환 때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른바 삼저호황이었고 정권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기업들이 땅 짚고 헤엄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젊은 날의 박종운이 그리고 박종철이 분노했던 것은 그 경제 호황을 위해 백짓장같은 얼굴로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감당하고 노조 결성 하나 하자고 일어섰다가 깨지고 짓밟히는 ‘천민 자본주의’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 ‘자본주의’는 잘못된 자본주의였으며, 그래서 내가 싸운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그는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성이 부족한 자는 외면하고 충성심이 투철한 자에게 보상을 내리는” 사회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 속에서 서서히 심장이 멎어 가면서도 입을 다물던 후배 박종철 앞에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최소한 굳이 그 이름을 굳이 운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의 ‘도바리’를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쥐어 주던 마음 착한 박종철의 이름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는 들먹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장 경제를 지키고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것이 종철이의 뜻을 올바르게 발전시키는 일이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변한다. 박종철이라는 이름으로 하여 내가 접하고 만났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쳐지는 폭력 앞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놓치지 않겠다고 빼앗기지 않을 것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 대학생의 모습은 눈물겨웠다. 그에게 그 사진은 왕년 노래 가사 모냥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으리라.
박종철이 죽은 직후 열린 서울대 추모 집회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학생들이 침묵시위를 벌였을 때, 영정을 들었던 학생 오현규는 용감하게도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도 그 영정은 내가 거리에서 마주했던 가련한 대학생의 그것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한나라당 구의원을 지냈고, 그 후 같은 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지금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를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그가 어떤 당적을 가졌다는 사실로 그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바라고 싶은 바는 그가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처럼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더 나이를 먹었을 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의 강민창처럼 터무니없이 망가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박종철을 위해서. 생전에 고인은 동료들에게 “종운이 형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고 곧잘 다짐했다고 한다. 이제 종철이 형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그를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될 거다. 박종철과 오현규를 포함한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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