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좋은 기억은 있다. 힘겹거나 슬플 때 문득 눈을 감으면 홀연히 되살아나 어깨를 두드리고, 모니터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 놨다가 들춰 보며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하며 지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기억, 아무리 부대끼고 속시끄러워도 그곳 생각에 이르면 그냥 키득거려지고 다물린 입이 벌어지는 그런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재생산해 주는 지점들은 우리 뇌리 속에 도로변 ‘쉬어가는 곳’처럼 남아 있다. 2003년 10월 14일은 참으로 팍팍하고 겁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누가 휘두른 묻지 마 칼날에 목이 베일지 모르고 혹시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내 머리위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늘까지도 살펴야 하는 한국 사람 모두에게 살가운 추억이 만들어진 날이다.
그 추억은 지하철 역 안에서 일어났다. 네이버 블로거 jitow님의 사진과 기록을 통해 그날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밤 10시 20분 경이었다. 하루의 일과로 지친 사람들, 2차쯤을 거쳐 술냄새 풀풀 풍기는 취객과 여전히 참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는 학생들이 뒤섞인 인파가 지하철 2호선 객차를 메우고 있었다. 신당역에 들어선 열차가 급작스레 급정거했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정차였다. 이유인즉슨 한 남자가 선로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관사가 뛰어내려 상황을 살폈다. 남자는 천만다행히 열차에 치어 죽지는 않았지만 열차와 선로의 좁은 사이에 꼼짝도 못한 채 끼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사람들은 갑자기 벌어진 참상 앞에서 놀랐다. 여자들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발을 동동 굴렀다. 핸드폰으로 119를 부르는 이도 여러 명이었다. 많은 이들이 불행한 일을 당한 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내심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는 호기심으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떠나지 않는 열차에 퍼져 앉아 언젠가 가겠지 잠을 재촉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119를 부르기는 했지만 선로에 끼인 채 열차에 압박당하고 있는 피해자의 상태는 악화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 사람이 외쳤다. “밀어 봅시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수레 앞에 선 사마귀처럼 두 팔을 들어올리고는 전동차에 달라붙었다. 순간 그 주위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으리라. 저 사람 뭐냐?는 의아함부터 지금 전동차를 사람이 밀어서 움직이겠다고? 하는 실소, 그렇게라도 해 볼까? 홀로 용쓰는 아저씨의 어깨를 응시하던 안타까운 시선, 그냥 119가 올 때까지 가만 계쇼 하는 신중한 눈길까지 범벅이 된 잠깐의 침묵이었으리라.
그때 몇몇 사람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가만. 몇 명만 더 달라붙으면 이 칸은 어떻게 흔들어서 그 틈을 타서 깔린 아저씨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동네 헬스클럽 강사 아저씨는 문득 자신의 근육을 실룩거렸고 술 취한 대학생 몇 명은 눈빛으로 야 야 붙어! 를 교환했을 것이다. 몇 명이 더 전동차에 달라붙었다. 그러려면 무게를 줄여야 했겠지. 누군가 목청 큰 아저씨가 차 안에 소리를 내질렀을 것이다. “거기 다 내려요. 사람이 죽어간단 말이오. 아 빨리 안 내리고 뭘해?”
사람들은 부리나케 내렸고 플랫폼은 신당역이 목적지가 아닌 사람들로 갑자기 붐볐다. “한 번 밀어 봅시다. 다 내렸으니까.” 일단 몇 명이 달라붙자 긴가민가 하던 사람들도 손을 보탰고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용을 쓰게 됐다. 곳곳에서 외침이 터져나왔을 것이다. “안에 다 내리게 해!” “다 나와요!” 이럴 때 나는 듯이 움직이는 사람들 반드시 있다. 등화관제 때 집집마다 불 끄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어린아이들처럼. 그들은 온 칸으로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내리세요. 열차를 가볍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깔렸어요. 어르신 어서 나오세요. 학생 뭐해 빨리 튀어나와.” 몰려나온 사람들이 플렛폼에 섰을 때는 이미 꽤 많은 이들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또 부르짖었다. “보고만 있지 말고 밀어요!”
깡마른 아가씨가 낑낑대며 전동차 밀기에 가담했을 때, 멀거니 쳐다보던 장정들이 불에 덴 듯 달라붙었고 머리 벗겨진 노인이 몸으로 전동차를 밀어대자 투덜거리며 계단을 오르던 고교생들이 돌아섰다. 삽시간에 수백 톤의 전철은 수십 명의 팔과 몸뚱이에 포위됐다. 누군가가 언성을 높였다. “그냥 밀지 말고 하나 둘 셋 하면 밉시다. 하나 두울….. 세엣” 그때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똥이 튀었다. 전동차가 움직인 것이다. 그때까지도 차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내렸고 힘을 쓰던 사람들의 어깨에는 새 힘이 솟았다. “다시 한 번…. 하나 두울 셋.” 이미 몇 명은 끼어 있는 사람의 팔을 잡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끌어올릴 수 있어요. 한 번만 세게 밀어 줘요. 그때 끌어올릴 테니까.” “하나 두울 세엣…..끙차……….”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은 힘을 냈을 때 전동차는 크게 기우뚱거렸고 불운한 남자는 플랫폼에 끌어올려졌다. 2003년 10월 14일 신당역의 기적이었다.
‘신당역의 기적’의 사진은 언제 보아도 감동이다. 전철이라는 거한에 매달린 올망졸망한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 어떤 천사와 여신의 전신상보다도 아름답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날 신당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기적을 이루고 맛보고 퍼뜨렸다. 동시에 그들은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초단시간에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다급하고 절박한 사정에 직면했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포기하고 외면하고, 또는 안타까이 지켜보는 것에 그친다. “내가 뭘?”이라고 자조하고 “나 바빠”하고 돌아서고 “119를 불러라.”고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그들이 힘을 합치면 전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 바위같은 현실에 누군가 계란을 던진다. “한 번 밀어라도 봅시다.”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킨 누군가가 없었던 적은 인류 역사에 한 번도 없다. 누군가 그에 동조하고, 또 누군가는 그를 전파하고, 안되는 일 같지만 한 번 해 보자고 팔뚝 걷어붙이는 이가 하나 둘 늘어갔을 때 전동차는 움직이고 기적은 이뤄졌듯, 역사는 그렇게 어제로부터 내일로 나아가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