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라는 것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다. 이 문제가 한 세대 혹은 한 시절의 문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개 청년 문제란 취업 문제로 수렴된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청년들이 취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20대까지는 취업을 미루면서 양질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많은 청년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 자리라는 게 처음 꿈꾸었던 것만큼 윤택하고 좋은 자리는 아닐지라도 몇 가지 부분들을 절충하며 그들 … [Read more...] about ‘청년 문제’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그래서 어딘지 괴기스러워 보인다. 흔히 청년 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개 절망과 포기로 수렴된다.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로 인해 우울, 좌절, 증오, 혐오 같은 현상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가 늘 문제시된다. 그런데 정작 청년 세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SNS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화려하다. 청년 세대에 대한 담론과 인스타그램의 간극은 마치 매트릭스의 밖과 안처럼 극명하다. 수많은 청년이 끊임없이 여행을 … [Read more...] about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삶에서 항상 붙들고 있어야 하는 세 가지 질문
삶에서 항상 붙들고 있어야 하는 질문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파리가 사자 꼬리를 쫓아다니듯이 살아가는 내내 삶을 쫓아다녀야 하는 파리 세 마리가 아닐까 싶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면 삶이 고장 나기 시작한다. 삶의 특정 시기마다 이 중에서 강조되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에만 집중해 나머지 둘을 잊고 지내면, 아무리 그 하나의 질문이 중요하더라도 그 사람이 … [Read more...] about 삶에서 항상 붙들고 있어야 하는 세 가지 질문
상처에 집착하지 않기, 기억에 고착되지 않기
삶에서는 나의 무언가가 부정당했다는 이유로, 그 무언가를 악착같이 지키려는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로부터 공격당한 나의 주장, 부인당한 나의 말들, 비난당한 나의 어떤 행동들이나 가치관들을 단지 내가 그러한 일을 '당했다'는 이유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내가 받은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를 복구하고 싶어서, 그 상처를 없던 일로 하고 싶어서, 다시 온전해지고 싶어서 그 상처에 집착한다. 가령, 내게 어떤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이 허무맹랑하다는 이유로 애인에게 이별을 … [Read more...] about 상처에 집착하지 않기, 기억에 고착되지 않기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아군과 적군으로 분열된다
갈수록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아군과 적군으로 분열된다. 누군가 어떤 말이나 주장을 하면 당장 '편 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이 몰려가서 그가 누구 편인지 규정부터 하고자 한다. 설령 그에게는 굳이 특정 진영에 설 의지가 없더라도, 각 진영에 있는 이들이 그를 '우리편' 혹은 '적편'으로 알아서 규정한다. 이럴 때 실수로 몇몇 부분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할 경우, 양 진영 모두로부터 적으로 낙인 찍히는 일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손쉽고도 자극적이며 강렬한 방법은 이분법적으로 … [Read more...] about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아군과 적군으로 분열된다
청년 세대의 담론: 이 시대에는 더는 조언이 없다
이전까지 청년 세대에 대한 담론은 크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와 '88만원 세대' 류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바라보고 조언하는 관점이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조언은 대략 "청춘은 다 아픈 것이다, 그러니 참고 견디면 좋은 미래가 온다." 혹은 "꿈과 열정을 좇아라, 그러면 결국 삶이 그에 대해 보답을 할 것이다."처럼 결국 '꿈은 이루어진다'를 믿는 긍정적 인생관에 바탕을 둔 위로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조언들은 "아프면 환자다."로 대변되는 비판으로 … [Read more...] about 청년 세대의 담론: 이 시대에는 더는 조언이 없다
섹스는 단독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섹스리스에 관한 몇 가지 고찰
낭만의 상징과도 같았던 제시와 셀린느가 〈비포 미드나잇〉에서 섹스리스 부부로 나왔던 것이 오랫동안 기억난다. 여느 '비포 시리즈'처럼 이 영화 역시 둘의 여행을 다룬다. 두 딸을 데리고 그리스로 여행을 떠난 둘은 그곳에서 어느 그리스인 부부를 만나고 서로 여전히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말하자면 서로에게 정욕을 느끼는 부부의 낯뜨거움 앞에서 다소 어색함을 느끼고 멋쩍어한다. 그들이 '섹스리스'인 것이 명확히 드러나는 건 둘만이 호텔에 간 장면에서다. 그리스 부부는 그들에게 둘만의 시간을 … [Read more...] about 섹스는 단독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섹스리스에 관한 몇 가지 고찰
‘저녁이 있는 삶’이 주는 것들
저녁을 지켜내는 사람들 저녁 7시 반, 대학가의 작은 카페 앞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대부분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사무를 담당하는 회사원, 게임회사 기획자, 치과의사, 일러스트레이터, 중고등학교의 교사와 대학교수, 카페 사장도 있다. 모두 각자의 일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사람들이지만 한 달에 두 번 만큼은 이곳 카페로 모인다. 한 달의 반은 함께 정한 책을 읽기도 하고, 또 다른 반 동안은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 그렇게 모여서는 밤이 늦도록 책에 관해, 또 서로가 쓴 글에 관해 … [Read more...] about ‘저녁이 있는 삶’이 주는 것들
2019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청년 세대 남성’의 문제
청년 세대 남성의 문제는 결국 양질의 직장이 너무 적다는 것, 안정적인 주거 생활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남성들에게 단순히 '먹고 사는' 차원을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에게 안정적인 돈벌이, 즉 '능력'과 안정적인 주거환경인 '집'은 존재의 뿌리, 정체성의 근본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어떠한 실존적인 문제보다 남성에게는 존재의 핵심과 관련된 문제다. 이것이 해결되느냐, 해결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는 실패한 인생이나 괜찮은 삶, 절망이나 … [Read more...] about 2019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청년 세대 남성’의 문제
모든 삶의 화신, 프레디 머큐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무대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으면 틀리려 해도 틀리지 않아.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 있거든. 무대 위에 올라설 때, 그는 꿈꾸던 사람이 된다. 오래전부터, 어느 골방에서부터, 부모의 억압과 사회라는 장벽 안에서 집요하게 꿈꾸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 있다. 자신을 억누르던 현실을 견디게끔 했던 환상, 오랜 나날들을 이겨내게 해주었던 그 꿈이 어느덧 현실을 몰아냈다. 그 순간, 그는 꿈과 하나가 되어 있고, 자기 앞에 펼쳐진 수많은 군중은 그 꿈의 등장인물이다. 조연들이 그의 … [Read more...] about 모든 삶의 화신, 프레디 머큐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