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는 생색내고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이상적인 관계에서는, 말없이 헌신하고, 묵묵히 인정하며, 각자 독립적인 어른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홀로 견디는 것은 때로 ‘멋진 사람’으로 칭송된다. 또 잘해주고도 내세우지 않으며 온전히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떠돌곤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일상에서의 감각은 그와 많이 다르다. 그보다는 잘해주는 것, 감내한 것, 수고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때론 생색내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배려해주는 것, 고생하는 것, 희생하는 것이 있으면 그에 관해서도 티를 팍팍 내며 인정해주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지나간 많은 일들이 결국에는 억울함, 손해 보는 느낌, 호의가 계속된 권리, 당연한 희생처럼 되어버린다.
종종 다큐멘터리나 예능 방송 같은 데서, 일터에서 고생하는 남편의 하루, 육아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 같은 것을 보여주면, 눈물 흘리는 부부들을 볼 수 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남편이나 아내가 고생하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걸 볼 때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가 얼마나 가정에 헌신하고 노력하는지를 모르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장의 무게라든지, 엄마의 헌신 같은 말들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면서, 고생을 감내하고, 묵묵히 인내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통념이 퍼졌지만, 사실은 그저 스스로 병들고, 관계가 무너지며, 삶이 엉켜나가는 것에 불과했던 건 아닐지 의심스럽다.
말하고 들어주기, 토로하고 위로해주기, 생색내고 칭찬받기. 이런 건 사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언술들이 반복되면, 서로의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다독여지며, 엉겨 붙어 병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치유되지 않나 한다. 그저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결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대화나 관계가 가능하려면, 늘 자신이 더 손해 본다는 피해 의식이나, 내가 항상 더 많은 걸 희생한다는 식의 왜곡된 우월감 같은 건 극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만큼 더 큰 인정이 돌아오는 상호적인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 인정을 나누려면, 실제로 서로에게 기여하고, 서로를 위해 실천하는 일들이 그만큼 있어야 할 것이다. 생색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실천이 전제된다면, 역시 그다음은, 서로를 아이 대하듯이 끊임없이 칭찬해주고, 또 고마워해 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원문: 정지우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