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의 스포일러에 대한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영화란 거의 최후의 경험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에 대한 거부란, 나의 고유한 경험을 훼손하지 말라는 요구다. 그런데 이런 식의 요구는 우리 시대에 거의 영화에만 남게 되었다. 그 밖의 거의 모든 일에는 스포일러가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온전히 그 시간의 경험을 완벽하고 고유하게 누리고 싶다는 열망이 무척 강하다.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인스턴트식 혹은 대리적 경험이 성행하고 있다. 책을 요약해서 읽어주고 보여주는 콘텐츠들, 여행지의 세부적인 사진과 영상들에 대한 제공, 음식을 대신 맛보아주고, 전시회에 대해 미리 내용을 찾아볼 기회, 심지어 사랑조차 썸만 추구하는 등 세상 거의 모든 것은 ‘고유한 경험’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영화만큼은, 그 짧지 않은 두세 시간의 경험만큼은 완벽히 ‘내 것’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무척 강한 것이다.
이는 영화가 스토리텔링이 핵심인 콘텐츠라는 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야기는 그 서사를 스스로 따라가며 얻는 재미와 감동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우리가 기나긴 서사 속에서 얻는 감동, 경험 자체를 추구한다는 게 이 시대에는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게 ‘짤방화’되고 ‘세줄요약화’되고 ‘인스턴트화’되는 시대에도, 최후의 경험 영역만큼은 지니고 싶다는 인간적인 열망이 그나마 영화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스포일러에 대한 거의 필사적이고 절박한 저항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인간관계가 틀어지거나 연인이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스포일러는 ‘장난’ 따위가 아니다. 우리 삶을 걸고 누리고 싶은 경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바쁜 일상에서, 그나마 시간을 내어,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누리길 바라는 인생 최고의 순간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아이맥스 같은 거대 스크린에 대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집착과 성행도 우리가 얼마나 이 ‘영화적 경험’에 목을 매고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스포일러는 나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 삶에서 고유한 경험이 줄어들었기에, 이처럼 작품 한편을 온전히 감상하는 일에 그만큼 더 집착하고 몰두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현상을 둘러싼 일련의 반응들은 대단히 심각하고 진지하고 절박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며 영화에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