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는 나의 무언가가 부정당했다는 이유로, 그 무언가를 악착같이 지키려는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로부터 공격당한 나의 주장, 부인당한 나의 말들, 비난당한 나의 어떤 행동들이나 가치관들을 단지 내가 그러한 일을 ‘당했다’는 이유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내가 받은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를 복구하고 싶어서, 그 상처를 없던 일로 하고 싶어서, 다시 온전해지고 싶어서 그 상처에 집착한다.
가령, 내게 어떤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이 허무맹랑하다는 이유로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경우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애인이 그것을 부정했다는 이유 때문에, 더 악착같이 그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럴 때, 그 배신이 꿈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추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삶을 망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특히 표현에 예민한 사람들, 자기 정체성을 섬세하게 느끼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대단히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떤 글을 쓰거나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주류 지식사회로부터든, 다수의 대중으로부터든, 자신을 지지해주던 기존의 기성세력으로부터든 ‘상처받을 정도로’ 부인당한다. 이때의 대응은 몇 가지가 있을 텐데, 자기의 정당성을 믿고 고집스럽게 자기의 말과 주장을 밀어붙이는 경우와, 적당히 타협하여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경우, 그리고 그런 반응들을 무시해버린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청 떠는 경우 정도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건 ‘자기의 말과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다. 많은 경우, 그는 끊임없는 비판이나 부정을 경험할수록, 자신이 더더욱 어떤 진실의 수호자라고 합리화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신을 단단하게 철갑으로 두를수록,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자기가 과거에 했던 ‘말과 주장’에 집착하고, 그럴수록 그것은 더 강력한 독단이 되고, 타협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그는 스스로를 ‘절대 진리의 파수꾼’으로 여기게 되어간다. 이는 특히 글 쓰는 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생에 몇 번쯤은 나타나는 일인 것 같다.
이것은 또한 내가 가장 경계하는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진실을 추구하되, 스스로를 진실의 수호자로 격상시키기지 않기. 옳은 것을 향한 여정 대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몰두하지 않기. 나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과거에 고착된 채로 미래로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 ─ 그리고 이건 글쓰기에서뿐만 아니라, 아마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중요한 일일 거라고 짐작한다. 나의 어떤 욕망들, 어떤 고집들, 어떤 기억들에 고착되지 않기.
원문: 정지우 님의 페이스북